19. 하나님의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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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율법의 위대한 원칙들은 십계명을 통해 구체화되고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예시되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고 인간의 행위와 관계들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의 표현이며 각 시대의 모든 인류가 지킬 의무가 있다. 이 교훈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과 세우신 언약의 기초가 되며 하나님의 심판에 있어서 표준이 된다. 성령의 활동을 통하여 그것들은 죄를 지적하며 구주의 필요성을 깨닫게 한다.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로 얻는 것이요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계명에 대한 순종이다. 이같은 순종은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계발시켜 주며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주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동료 인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의 증거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순종은 생애를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내며,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전도를 힘있게 해준다. – 기본 신조, 19.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산(山)에 집중되었다. 산꼭대기는 짙은 구름으로 덮여 있었으며, 구름은 더욱 짙어지면서 산 아래로 내려와 마침내 온 산을 신비 속에 감싸이게 했다. 어둠 속에서 번개가 치며 천둥소리는 계속해서 울려났다.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출 19:18, 19).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이같은 장엄한 계시는 너무도 엄청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다 떨었다.
갑자기 천둥과 나팔소리가 그치고 두려운 적막에 휩싸였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산에 서셨을 때 당신을 두른 짙은 흑암 가운데서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깊은 사랑에 감동되어 십계명을 선포하셨다. 모세는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신 33:2, 3).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셨을 때, 당신 자신을 위엄있는 우주의 최고 통치자로 계시하셨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백성들의 구속주로 나타내셨다(출 20:2). 그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과 저희 동료 인간들에 대한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간결하면서도 포괄적이고 권위있는 십계명을 순종하도록 요구하시는 것은 당신께서 구주가 되시기 때문이다(전 12:1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 20:3-17).

율법의 본질
십계명은 하나님의 품성을 반영한 것으로서, 도덕적이고 영적이고 포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원칙들을 포함하고 있다.

입법자의 성품을 반영. 성경은 그분이 율법 가운데서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처럼,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다(시 19:7, 8).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를 궁구하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시 119:151, 152). 참으로 “주의 모든 계명이 의”(시 119:172)롭다.

도덕적 율법.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제정하신 행동 양식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그분과 우리와의 관계와 동료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규정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율법을 유린하는 것을 죄라고 부른다(요일 3:4).

신령한 율법. “율법은 신령”(롬 7:14)하다. 그러므로 신령한 자들과 성령의 열매를 맺은 자들만이 율법을 순종할 수 있다(요 15:4; 갈 5:22, 23). 당신의 뜻을 행하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이다(행 1:8; 시 51:10-12).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우리는 그분께 영광이 될 열매를 맺는 데 필요한 능력을 받게 된다(요 15:5).
인간은 법은 명백한 범행에 대해서만 논하나, 십계명은 “심히 넓”(시 119:96)어서 우리의 가장 은밀한 생각과 욕망과 질투, 시기, 욕정 및 야심과 같은 정서까지 취급한다. 산상보훈에서 예수께서는 율법의 이같은 신령한 차원을 강조하시고 범죄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나타내셨다(마 5:21, 22, 27, 28; 막 7:21-23).

긍정적인 율법. 십계명은 짤막한 일련의 금지 조항을 나타내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원대한 원칙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 뿐만 아니라 해야 할 일까지 망라하고 있다. 우리는 악한 행동과 생각들을 삼가야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재능과 은사들을 선을 위하여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부정적인 금지 조항도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지니라”는 여섯째 계명은 “생명을 증진시킬지니라”는 긍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그들의 영향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복리와 행복을 증진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보다 심원한 의미에서,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에 대한 복음은 여섯째 계명에 구현되어 있는 긍정적인 원칙에 기초되어 있다.”*
십계명은 “자비의 측면보다 금지의 측면이 더 많이 부각되어서는 안 된다. 십계명의 금지 사항들은 순종할 경우 행복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된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여지게 될 때,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품성의 순결을 이루어준다. 그것은 순종할 때에 보호벽이 된다. 우리는 그 안에서 의의 불변하는 원칙들을 인간에게 계시하심으로 그들을 범법의 결과인 악으로부터 지켜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본다.”*

단순한 율법. 십계명은 심오하면서도 단순하게 이해된다. 그것들은 너무도 간단해서 아이일지라도 재빨리 암기할 수 있다. 그러나 매우 포괄적이어서 있을 수 있는 모든 죄를 다 망라한다.
“하나님의 율법에는 모호한 점이 없다. 모든 사람들은 그것이 구현하고 있는 위대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저능한 자라도 이 법칙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무지한 자라도 생활을 조절함으로 거룩한 표준을 좇아서 품성을 형성할 수 있다.”*

원칙적인 율법. 십계명은 모든 시대의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모든 올바른 원칙들의 요약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고 말한다.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 십계명-열가지 말 또는 십계명(출 34:28)-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친히 그 위에 기록하신 두 돌판에 나타나 있다(신 4:13). 처음 네 계명은 우리의 창조주요 구속주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며, 나머지 여섯 계명은 인간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규정한다.*
이같은 이중 구분은 하나님의 왕국이 그것에 기초하여 운영되고 있는 사랑의 두 가지 큰 기본 원칙에서 유래한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 신 6:4, 5; 레 19:18 참조). 이 원칙들을 따라 사는 자들은 십계명과 완전한 조화를 이룰 것이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이 원칙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첫째 계명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만 경배할 것을 지시한다. 둘째 계명은 우상 숭배를 금한다.* 셋째 계명은 불경과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 거짓 맹세함을 금한다. 넷째 계명은 안식일의 준수를 촉구하며 참 하나님을 하늘과 땅의 창조주로 인정한다.
다섯째 계명은 자녀들이 당신의 계시된 뜻을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대리자들인 그들의 부모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신 4:6-9, 6:1-7 참조). 여섯째 계명은 생명을 신성한 것으로 보호한다. 일곱째 계명은 순결을 요구하며 결혼 관계를 보호한다. 여덟째 계명은 재산을 보호한다. 아홉째 계명은 진실을 수호하며 위증을 금한다. 그리고 열째 계명은 타인에게 속한 것을 탐내지 말도록 함으로써 모든 인간 관계의 핵심에 이른다.*

독특한 율법.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들이 듣도록 말씀하신 유일한 말씀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신 5:22). 하나님께서는 이 율법을 인간의 잊기 쉬운 정신에 맡기지 않고, 당신의 손가락으로 두 돌판에 새기셔서 성막의 증거궤 안에 두어 보존하게 하셨다(출 31:18; 신 10: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을 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당신에 대한 그들의 관계와 그들 상호간의 관계를 상술하는 부가적인 율법들을 그들에게 주셨다. 이 부가적인 율법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이스라엘의 민사 업무(민법)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다른 것들은 성소 봉사의 의식들(의식법)을 규정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중보자 모세를 통하여 이 부가적인 율법들을 백성들에게 전달하셨으며, 모세는 그것들을 “율법책”에 기록하여 “언약 궤 곁”(신 31:25, 26)에 두되,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인 십계명의 경우처럼 언약궤 안에 두지는 않았다. 이 부가적인 율법들은 “모세의 율법책”(수 8:31; 느 8:1; 대하 25:4), 또는 단순히 “모세의 율법”(왕하 23:25; 대하 23:18)으로 알려졌다.*

즐거운 율법. 하나님의 율법은 영혼에게 활력소가 된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환란과 우환이 내게 미쳤”을 때에라도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라고 하였다(시 119:97, 127, 143).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요일 5:3)다. 율법을 범하는 자들은 율법을 괴로운 멍에로 생각하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죄된 마음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롬 8:7) 없기 때문이다.

율법의 목적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을 주신 것은 백성들에게 풍성한 축복을 제공하고 그들을 인도하여 당신의 구원의 관계를 맺도록 하기 위함이다. 다음에 언급한 특별한 목적들을 주목하라.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한다. 하나님의 품성과 사랑의 표현으로써, 십계명은 인간을 위한 그분이 뜻과 목적을 계시한다. 그것은 완전한 순종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약 2:10)기 때문이다. 생애의 법칙인 율법에의 순종은 우리의 구원에 중요하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고 말씀하셨다. 이같은 순종은 오직 내재하시는 성령께서 제공하시는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언약의 기초이다. 모세는 십계명을 다른 설명적인 율법들과 함께 언약서라고 불리워지는 책에다 기록하였다(출 20:1-24:8).* 나중에 그는 십계명을 “언약의 돌판들”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영원한 언약의 기초로서의 율법의 중요성을 지적해 준다(신 9:9, 4:13 참조. 언약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알고자 하면, 본서 7장을 참조하라).

심판의 표준이 된다. 하나님처럼, 그분의 “모든 계명이 의”(시 119:172)롭다. 그런고로 율법은 의의 표준을 제시한다. 우리 각자는 우리의 양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 의의 원칙들에 의해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전 12:13, 14; 약 2:12 참조).
인간의 양심은 변한다. 어떤 양심들은 “약하”고, 다른 양심들은 “더럽”고 “악하”며 “화인(火印) 맞”았다(고전 8:7, 12; 딛 1:15; 히 10:22; 딤전 4:2). 시계처럼, 그것들이 아무리 잘 작동할지라도, 가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정확한 표준에 “맞추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의 양심은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이 올바른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하나님의 위대한 표준-그분의 율법-에 맞추어져 있는 양심만이 우리를 죄에 빠지지 않게 할 수 있다.*

죄를 지적한다. 사람들은 십계명이 없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도, 그들 자신의 죄도, 회개해야 할 필요성도 정확하게 볼 수 없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상태도,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보혈의 필요성도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율법은 사람들이 자신의 참 상태를 볼 수 있도록 거울과 같은 구실을 한다(약 1:23-25). 그것을 들여다 “보는” 자들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품성에 비추어 자신들의 품성의 결점들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율법은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롬 3:19)이므로 그분께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함을 나타낸다.
“율법으로 죄를 깨달”(롬 3:20)음은 “죄는 불법이”(요일 3:4)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롬 7:7)리라고 말했다.
죄인들로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함으로써,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있으며 영원한 사망의 형벌에 직면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그것은 그들로 자신들이 전적으로 무력함을 깨닫게 한다.

회개케 하는 도구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성령께서 우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도구이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시 19:7). 우리가 자신의 참 품성을 알고 난 다음에, 자신이 죄인이며 죽음의 대열에 서 있는 소망 없는 사람임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구주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때, 복음의 좋은 소식은 진정으로 의미 있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를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그리스도를 지적해 준다.* 바울은 이같은 빛 가운데서 도덕적인 율법과 의문(儀文)의 율법 둘 다를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고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갈 3:24)이라고 언급하였다.*
율법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는 반면에, 그것은 결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물이 더러운 얼굴을 깨끗게 하는 수단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도덕적인 율법의 거울을 통하여 자신의 필요를 발견한 다음에는 “죄와 더러움”(슥 13:1)을 씻도록 열려 있는 샘으로 가서 “어린양의 피”(계 7:14)로 씻음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온 세상의 죄짐에 눌려 죽어가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계시될 때, 성령께서는… 그들의 범죄를 회개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를…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에 소망이 가득 차게 되며, 우리는 믿음으로 영생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는(요 3:16) 우리 구주께 손을 내뻗는다.

참된 자유를 제공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할 때, 우리에게는 자유가 없다. 그러나 십계명에 대한 순종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보장해 준다. 하나님의 율법의 테두리 안에 산다는 것은 죄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죄에 수반되는 것, 즉 계속적인 근심, 양심의 가책 및 생애의 활력을 시들게 하는 점증되는 죄의식과 후회로부터 자유롭게 됨을 의미한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시 119:45)라고 말하였다. 야고보는 십계명을 “최고의 법”, “자유케 하는 완전한 법”(약 2:8, 1:25)이라고 언급하였다.
우리가 이같은 자유를 얻도록, 예수께서는 죄의 짐을 진 채 당신께 오도록 우리를 초청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그것들 대신에 메기 쉬운 당신의 멍에(마 11:29, 30)를 우리에게 주신다. 그 멍에 자체는 율법이다. 곧 “에덴에서 계시되고, 시내산에서 선포되었으며 새 언약을 통하여 심령에 기록된 위대한 사랑의 율법은 인간의 하나님의 뜻에 붙들어 맨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멜 때, 그분께서는 무거운 짐을 져주시며 순종을 즐거운 것이 되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전에는 불가능하였던 일에 성공할 수 있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에 기록된 율법은 기쁨과 즐거움이 된다. 우리는 그분께서 명하시는 대로 행하기를 원하므로 자유롭게 된다.
만일 율법이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능력 없이 제시된다면, 죄로부터의 자유란 없다. 그러나, 율법을 무효화시키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는 죄에서 자유케 하는 능력을 가져다준다. 왜냐하면,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고후 3:17)기 때문이다.

악을 방지하며 축복들을 가져다준다. 세상을 휩쓸고 있는 범죄와 폭력과 부도덕과 사악의 증가는 십계명을 무시한 결과이다. 율법을 받아들일 때, 그것은 죄를 방지하며 올바른 행위를 촉진하고, 의를 세우는 수단이 된다. 그들의 법에 십계명의 원칙들을 포함시킨 나라들은 큰 축복을 경험하였다. 한편, 그 원칙들을 무시하게 되면 꾸준한 쇠퇴를 초래한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종종 당신의 율법에 대한 그들의 순종에 비례하여 국가와 개인들을 축복하셨다. 성경은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잠 14:34, 16:12)고 말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재난을 당하였다(시 89:31, 32).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잠 3:33; 레 26장과 신 28장 참조). 그 동일한 원칙은 오늘날도 동일하다.*

율법의 영속성
도덕적 율법인 십계명은 하나님의 품성의 반영이기 때문에 그 원칙은 일시적이거나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절대적이고 불변하며 인간에게 영원한 효력을 지닌다. 수세기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계속적인 효력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그것의 영속성을 굳건히 지지하였다.*

시내산 이전의 율법. 율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오래 전에 존재하였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시내산 이전에는 아무런 죄도 있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죄는 불법”(요일 3:4)이기 때문이다. 루스벨과 그의 천사들이 죄를 지었다고 하는 사실은 창조 이전일지라도 율법이 존재하였음을 증명한다(벧후 2:4).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율법의 도덕적인 원칙들을 그들의 마음에 심어주셔서 그들이 당신의 뜻을 당연히 행하도록 하셨다. 그들의 범죄는 인간 가족에게 죄를 가져왔다(롬 5:12).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그는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창 26:4)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모세는 시내산 이전에 하나님의 율례와 그분의 율법을 가르쳤다(출 16장; 18:16). 창세기를 연구하면 십계명이 시내산 이전에도 잘 알려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창세기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도 그것이 금하는 행동은 나쁜 일이라는 것을 백성들이 알고 있었음을 분명히 한다.* 도덕적인 율법에 대한 이같은 일반적인 이해는 하나님께 인간에게 십계명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 주신 것이 틀림없음을 보여준다.

시내산에서의 율법.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나라(출 5:2)인 애굽에서의 오랜 노예 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숭배와 부패 가운데 살았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순결과 도덕적인 원칙들에 대한 이해력을 많이 상실하였다. 그들의 노예 신분은 예배드리는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에 응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은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저희로 그 율례를 지키며 그 법을 좇게”(시 105:43-45) 할 나라로 인도해 들이심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이 “쇠 풀무”(신 4:20)에서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
그들이 해방된 다음에, 그분께서는 그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하셔서 그들에게 당신의 정부의 표준이 되는 도덕적인 율법과, 구원의 길은 구주의 대속적인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가르쳐주는 의문(儀文)의 율법을 주셨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분명하고 단순한 용어로 된 율법을 직접 주셨는데, 이는 “범법함을 인하여”(갈 3:19), “죄로 심히 죄되게 하”(롬 7:13)시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의 도덕적인 율법에 예리하게 초점을 맞춤으로써만 그들의 범과를 인식하고 무력함을 깨달으며 구원의 필요성을 볼 수 있었다.

그리스도 재림 전의 율법. 성경은 하나님의 율법이 사단의 공격의 표적이며 그것에 대항하는 그의 싸움은 재림 직전에 그 절정에 달할 것임을 밝혀준다. 예언은 사단이 무수한 사람들로 하나님을 불순종하도록 유인할 것이라고 지적한다(계 12:9). “짐승”의 능력을 통하여 역사하므로, 그는 세상의 이목을 하나님 대신에 짐승으로 향하게 할 것이다(계 13:3; 이러한 예언에 대해 더 알고자 하면 본서 12장을 참조하라).
1. 공격받고 있는 율법. 다니엘서 7장은 이 동일한 세력을 작은 뿔로 묘사한다. 이 장은 네 큰 짐승에 대해 말하는데, 그리스도의 시대 이래 성경 주석가들은 그것들을 바벨론, 메데-페르시아, 그리스 및 로마 등 세계 강국들로 해석하였다. 넷째 짐승의 열 뿔은 그것이 멸망할 당시(서기 476년)에 있었던 로마 제국의 분열을 나타낸다.*
다니엘의 이상은 열 뿔 사이에서 나오는 무섭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세력인 작은 뿔에 집중되는데, 이는 로마 제국의 분열 이후에 일어나는 두려운 세력을 의미한다. 이 세력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키고자 시도할 것이며(단 7:25), 그 일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본서 19장 참조). 이 같은 공격은 그 자체가 구원의 계획에 있어서 율법의 계속적인 중요성을 말해 주는 증거가 된다. 이 이상은 이 세력이 율법을 근절시키는 일에 성공하지 못할 것임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재확인 시켜 주는 장면으로 끝나는데, 그것은 심판으로써 작은 뿔이 멸망될 것이기 때문이다(단 7:11, 26-28).
2. 성도들이 율법을 옹호함. 순종이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특징을 이룬다. 최후의 대쟁투에 있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드높이기 위하여 다시 모인다. 성경은 그들을 다음과 같은 말로 묘사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계 12:17, 14:12)지고 있으며 인내로써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한다.
재림을 준비함에 있어서, 이 사람들은 복음을 선포하며 주님을 창조주로 경배하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촉구한다(계 14:6, 7). 사랑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요일 5:3)고 요한이 말했듯이 그분의 말씀을 순종할 것이다.
3. 하나님의 심판과 율법.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마지막 일곱 재앙의 심판은 하늘에 있는 “증거 장막”(계 15:5)의 성전에서 시작된다. 이스라엘인들은 증거의 장막이라는 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모세가 세운 증거막(혹은 증거의 장막)(민 1:50, 53, 17:8, 18:2)을 가리켰다. 이렇게 불리워진 것은 증거의 장막에 “증거궤”(출 26:34)가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거기에는 “증거판 둘”(출 31:18)이 들어 있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증거하는 “증거”(출 34:28, 29)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5장 5절은 “하늘에(있는) 증거 장막의 성전”에 대해 언급한다. 모세의 것은 단지 하늘 성전의 모형에 불과하였다(출 25:8, 40; 히 8:1-5 참조). 십계명의 원본은 그곳에 보관되어 있다. 최후의 심판이 하나님의 율법을 유린하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십계명의 영속성에 대한 증거를 더해 준다.
요한 계시록은 또한 하늘 성전이 열리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하나님의 언약궤”(계 11:19)를 보여준다. 언약궤라는 말은 지상 성소에 있던 궤를 가리켰는데, 거기에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가 보관되어 있었다(출 34:28; 민 10:33; 신 9:9 참조). 하늘 성소의 언약궤는 영원한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의 원본을 간직하고 있는 원형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는 하나님의 최후 심판(계 11:18)의 시기는 십계명을 간직하고 있는 증거궤가 초점이 되는 하늘 성전이 열리는 일과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참으로, 하나님의 율법이 심판의 표준임을 강조하는 적절한 표현이다.

율법과 복음
구원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이르러오는 선물이다(엡 2:8). “율법의 그 어떤 행위도, 아무리 칭찬받을 만한 노력이나 선한 행위도 – 그것이 많든 적든, 희생적이든 아니든 간에 – 결코 죄인을 의롭게 만들 수 없다”(딛 3:5; 롬 3:20).*
성경 전편을 통하여 율법과 복음 사이에는 완전한 조화가 있다. 각각은 서로를 지지한다.

시내산 이전의 율법과 복음. 아담과 하와는 범죄했을 때, 죄와 두려움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창 3:10).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정죄하는 율법을 무시함으로써가 아니라, 그 대신 그들을 당신과의 교제와 순종에로 회복시켜 줄 복음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다.
이 복음은 여자의 후손인 구주를 통한 구속의 약속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분께서는 언젠가 오셔서 악을 물리치고 승리하실 것이었다(창 3:15).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분부하신 희생 제도는 속죄에 관한 중요한 진리를 그들에게 가르쳤다. 곧 용서는 피흘림-구주의 죽음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동물의 희생은 그들을 위한 구주의 속죄의 죽음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그들은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았다.* 그들은 은혜로 구원함을 받았다. 이 복음의 약속은 인간에게 제공된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의 언약의 중심이었다(창 12:1-3, 15:4, 5, 17:1-9).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창 18:18, 19, 26:4, 5), 하나님의 언약의 보증은 당신의 아들이셨는데, 그분은 복음의 초점으로서 “창세로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계 13:8, 구역)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즉시 작동하기 시작하였다. 다윗은 말하기를,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시 103:17, 18)고 하였다.

시내산에서의 율법과 복음. 십계명과 복음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례로, 율법의 서언(序言)은 하나님을 구속주로서 나타낸다(출 20:1). 그리고 십계명을 반포하신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단을 세우고 당신의 구원하는 은혜를 나타낼 희생 제사를 시작하도록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소 건축에 관계되는 의문의 율법의 대부분을 주신 것은 시내산에서였다. 하나님께서는 성소에서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며 당신의 축복들을 나눠주시기 위해 그들과 만나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었다(출 24:9-31:18). 시내산 이전에 존재했던 단순한 희생 제도를 이같이 확대한 것은 죄인들을 구속하고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와 거룩함을 옹호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 사업을 예시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는 지상 성소의 지성소 안에 있는, 십계명이 보관되어 있는 언약궤 상부 속죄소 위였다. 성소 봉사의 모든 국면은 구주를 상징하였다. 피 흘리는 희생 제물은 율법의 정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그분의 대속의 죽음을 가리켰다(본서 4장과 9장 참조).
십계명이 언약궤 안에 놓여져 있었던 반면에, 의문의 율법은 하나님께서 주신 민사 법률과 더불어 “율법책”에 기록되어 백성들에게 “증거가 되”도록 언약궤 곁에 두었다(신 31:26). 그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이 “증거”는 그들의 행위를 정죄하였으며 하나님과 화해하는 데 필요되는 세밀한 요구 사항들을 제공하였다. 시내산으로부터 그리스도께서 죽으실 때까지, 십계명을 범한 자들은 의문의 율법이 정하는 성소봉사를 통해 묘사된 복음 안에서 소망과 용서와 믿음으로 정결케 됨을 경험하였다.

십자가 후의 율법과 복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관찰해온 대로, 성경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의문의 율법을 폐지한 반면, 도덕적인 율법의 계속적인 유효성을 확증해 준다.* 그 증거를 주목하라.
1. 의문의 율법.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분께서는 희생 제도의 예언적 상징을 성취시키셨다. 모형은 원형과 만났으며 의문의 율법은 종지부를 찍었다. 수세기 전에 다니엘은 메시야의 죽음이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단 9:27; 본서 4장 참조). 예수께서 돌아가셨을 때, 성전의 휘장은 초자연적인 힘으로 위에서 아래로 둘로 갈라졌으며(마 27:51), 그것은 성전 봉사의 영적 의미가 끝났음을 가리켰다.
비록 의문의 율법이 그리스도의 죽음 이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지라도, 그것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히 10:1)에 불과함으로서 많은 면에서 불충분하였다. 그것은 일시적인 목적을 위해 봉사하였으며 “개혁할 때”(히 9:10; 갈 3:19 참조)가 오기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과되었다.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참 어린양으로서 운명하실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셨을 때, 의문의 율법의 효력은 끝났다. 그분의 속죄의 희생은 모든 죄에 대하여 용서를 제공하였다. 이 행위는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골 2:14; 신 31:26 참조)셨다. 그 때, 어떤 경우든 죄를 없이하거나 양심을 깨끗게 할 수 없는 세밀한 의식들을 행하는 일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히 10:4, 9:9, 14). 소제와 전제, 각종 절기 의식(유월절, 오순절 등), 월삭 또는 절기 안식일들에 관한 복잡한 요구 사항들과 더불어 의문의 율법에 관해서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골 2:16; 히 9:10 참조). 그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골 2:17)에 불과하였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체의 반영일 뿐인 그림자를 더 이상 취급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제 그들은 구주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몸(실체)은 그리스도의 것이”(골 2:17)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해석대로, 의문의 율법은 그들과 다른 나라들 사이에 장벽이 되었다. 그것은 세상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밝게 비추어야 할 그들의 사명에 큰 장애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였으며, “십자가로… 한 몸”이 된 믿는 자들의 새로운 한 가족을 이루기 위하여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중간에 막힌 담”을 헐었다(엡 2:14-16).
2. 십계명과 십자가. 그리스도의 죽음이 의문의 율법의 효력을 종식시킨 반면에, 십계명의 권위를 확립시켰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저주를 제거하심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을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케 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 그렇게 하신 사실이 율법의 폐지를 뜻하거나 우리에게 율법의 원칙들을 범할 자유를 주셨다는 의미는 아니다. 율법의 영속성에 관한 성경의 많은 증거들은 그 같은 견해를 반대한다.
칼빈은 그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율법의 권세에서 자유케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건하고 거룩한 생애를 위한 영원한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처럼 불변해야 한다.”*
바울은 구원하는 은혜의 복음과 순종 간의 관계를 묘사하였다. 믿는 자들에게 거룩한 생애를 살도록 호소하면서, 그는 그들 자신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촉구하였다. 이는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3, 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죄에 더욱더 깊이 사로잡힌다는 사실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이 율법 아래 있는 한 그는 죄의 지배 아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율법은 사람을 정죄나 죄의 세력,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은 정죄로부터 놓여날 뿐만 아니라(롬 8:1) 그것을 정복할 힘을 얻게 된다(롬 6:4). 그리하여 죄는 더 이상 그들 위에 군림하지 못할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고 첨언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그분은 의를 얻는 방편으로서의 율법의 끝이 되심을 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는 죄인이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분의 입혀주시는 의를 통해서 의인이다.*
그러나 은혜 아래 있다는 사실이 믿는 자들에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롬 6:1)할 허가증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은혜는 순종과, 죄에 대한 승리를 가능케 하는 능력을 공급해 준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롬 8:1, 4)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을 확대시켰으며 그것의 보편적인 권위를 드높였다. 만일 십계명이 변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그분께서는 죽으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율법은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부과하는 형벌을 치르기 위하여 죽음이 요구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이 요구를 충족시키셨으며 당신의 놀라운 희생을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에게 영생이 가능하게 하셨다.

율법에 대한 순종
사람은 자신의 선행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순종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열매이다. 그분의 놀라운 은혜, 특별히 십자가에서 나타난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죄의 형벌과 저주로부터 해방시키셨다. 비록 그들이 죄인일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영생의 선물을 제공하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셨다.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은 회개한 죄인으로 하여금 반응하도록 일깨우는데, 그것은 그처럼 풍부하게 주어진 은혜의 능력을 통하여 사랑으로 하는 순종 가운데 나타난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과 순종의 축복들을 이해하는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도록 크게 고무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율법. 그리스도께서는 십계명으로 된 율법에 최고의 존경을 나타내셨다. “스스로 있는” 위대하신 분으로서, 그분께서는 하늘 아버지의 도덕적인 율법을 시내산으로부터 친히 선포하셨다(요 8:58; 출 3:14; 본서 4장 참조). 세상에서 그분께서 행하실 사명의 일부는 “그 교훈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사 42:21)는 것이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에 대하여 적용하고 있는 시편의 말씀은 율법에 대한 그분의 태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 히 10:5, 7 참조).
그분의 복음은 십계명의 유효성을 굳게 세우는 믿음을 가져다주었다.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장엄함과 영광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며 그것을 어떻게 취급해야 할는지에 대하여 실례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와 거룩함을 옹호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을 따르는 자들로서 그들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크게 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사랑에서 우러나는 순종의 생애를 사심으로써 당신을 따르는 자들도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그분께서는 영생을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질문을 받으셨을 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고 대답하셨다. 그분은 또한 이 원칙을 범하는 일에 대하여 경고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23)고 하셨다. 율법을 범하는 자들은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폐지함으로써가 아니라 순종의 생애를 통하여 친히 율법을 온전케 하셨다. 그분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마 5:18)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의 숭고한 목적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크게 강조하셨다. 그것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마 22:37, 38)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듯이 이기적이거나 감상적으로 서로를 사랑하지 않도록 경고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말씀하신 사랑을 설명하기 위하여 “새 계명”(요 13:34)을 주셨다. 이 새 계명은 율법을 대신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 “이전에 세상에서 결코 목격되어진 바가 없는 그와 같은 비이기적인 사랑이 진정 어떤 것인지에 대한 실례”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같은 의미에서 그분의 계명은 새 계명으로 묘사되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단순히 “서로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고 촉구하였다. 엄격히 말해서,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하늘 아버지의 율법을 어떻게 크게 하셨는지 그에 대한 증거를 하나 더 갖게 된다.”*
순종은 그같은 사랑을 드러낸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마찬가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요일 2:3)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써만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을 드릴 수가 있다. 그분께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 5)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위하여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며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고 바울이 기록한 바를 경험해야 한다. 이 같은 상태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새 언약의 약속을 성취시킬 수 있으시다.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

순종으로 말미암는 축복들. 순종은 그리스도인 품성을 계발시켜 주며 신자들을 “갓난 아이들”처럼 자라나게 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게 함으로써 행복감을 갖게 한다(벧전 2:2; 고후 3:18 참조). 이같이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증거 한다.
성경은 “여호와의 법에 행하”(시 119:1)여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시 1:2) 모든 자들을 “복되다”고 선언한다. 순종의 축복들은 많다: (1) 명철과 지혜(시 119:98, 99), (2) 평안(시 119:165; 사 48:18), (3) 의로움(신 6:25; 사 48:18), (4) 순결하고 도덕적인 생애(잠 7:1-5), (5) 진리의 지식(요 7:17), (6) 질병에 대한 보호(출 15:26), (7) 장수(잠 3:1, 2, 4:10, 22), (8)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확신(요일 3:22; 시 66:18 참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순종하도록 초청하시며 많은 축복들을 약속하신다(레 26:3-10; 신 28:1-12). 우리가 이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때, 우리는 그분의 “특별한 보화”-“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출 19:5, 6; 벧전 2:5, 9 참조)이 되며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할” 것이다(신 28: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