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코로나19 시대,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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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목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지나는 성도들에게 고난과 시련을 성장의 기회로 삼은 요셉에게 배우는 지혜를 제시한다.
김정태 목사(베트남 PMM 선교사) / 상담심리사 1급, 가톨릭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 졸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바꿔 놓은 일상
K 형제는 요즘 신앙의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의 대면 예배 금지로 인해 오랜 기간 온라인 예배를 드려왔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처럼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인터넷 예배에 참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몸과 마음이 느슨해졌다. 한동안 모아 놓았던 십일금도 큰 금액이 되어 막상 드리려고 하니 마음이 흔들렸다. 교회에서 오는 예배 안내 전화나 문자 또는 안부 연락도 시간이 지나자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L 자매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온라인 수업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집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무리 사랑하는 자녀라지만,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 안에서 하루종일 가족들과 지내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쌓여갔다. 스트레스와 더불어 자녀나 남편에게 하는 잔소리도 늘어만 갔다. 남편 또한 아내의 잔소리 때문에 힘들어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의 현재 삶의 균형을 흔들면서 육체적, 정신적, 영적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실직을 경험하며 경제적인 위기에 놓여 있고, 어떤 이들은 가족을 잃고 상실감에 빠져 있으며, 어떤 이들은 활동의 제약 때문에 신앙과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면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어떤 이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기력증이나 우울증에 빠져 있다.

■ 교회 중심에서 가족 중심으로 전환된 시대
코로나19 사태는 단 1년 만에 우리의 영적 활동을 교회 중심에서 가족 중심으로 바꿔 놓았다. 우리의 가정은 기능에 따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되기도 하고, 학교가 된다. 또한 영적 기능을 담당하는 교회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정은 학교나 교회로서, 교사나 제사장의 역할을 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사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닥친 전세계적인 바이러스의 재난으로 인해 우리는 준비되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의 아들과 딸을 학생으로, 그리고 교인으로 양육해야 할 책임을 맡게 되어 버린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이 자녀를 육체적, 정신적, 영적 관리의 어려움을 겪는 주된 이유는 부모가 자녀들을 관리하고 양육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임상심리학자인 토니 험프리스(Tony Humpheys)는 “부모는 가족의 건축가”라고 말하면서 “건강한 가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부모가 모두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성숙하고 균형 잡힌 어른이 있느냐 없느냐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부모가 성숙하고 균형 잡힌 인격과 신앙을 계발하지 않으면 우리의 가정은 갈등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특히 활동의 제약이 많은 코로나19 시대의 지금 우리는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다. 이로 인해 갈등은 더 심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영적 상태
신앙인들의 심리적, 정서적 문제는 영적 문제로 이어진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방의 기쁨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전에 경험하지 못한 광야의 삶은 많은 시련으로 다가왔다. 그리 인해 심리적, 정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지도자인 모세와 아론,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다.

B 형제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교회에서 나름 열심을 보였던 집사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자신이 운영하는 가게의 매출이 급감하게 되었다. 경제적 위기와 스트레스 때문에 아내와의 갈등도 잦아졌다. 자녀들에게 잔소리도 늘었다. 집에 있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져서 아침저녁 예배드리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대면 예배가 온라인 예배로 전환된 후에 한동안 그는 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늦잠을 자거나 다른 일에 몰두하면서 예배를 등한시했다. ‘자신은 이렇게 힘이 드는데,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신 걸까?’ 하는 생각에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또한, 이렇게 힘든 시기에 목사님이나 교회 지도자들이 자신에게 관심과 위로를 주지 않는다며 서운해했다. 자신이 교회에서 소외된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직원회에서는 비논리적인 태도로 사사건건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의 의견에 반대를 했다. 결국, B 형제는 목사님과 교회에 불평과 불편을 쏟아내고 교회를 옮기겠다고 선언을 했다.

B 형제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다. 개인의 문제를 교회와 하나님 탓으로 돌리며 갈등을 야기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 개인적 시련과 고난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시야가 좁아져 개인의 문제를 하나님과 교회의 탓으로 돌리며 불평을 한다. 이런 사람은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과 같다. 고통과 시련 때문에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며 좌절하는 사람의 공통적인 특징은 쉽게 좌절하며 고통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낙관적인 사람은 고난에서 기회를 보고, 비관적인 사람은 기회에서 고난을 본다”고 말했다.

■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위기인가? 기회인가?
코로나19 팬데믹 위기는 많은 성도와 가정에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고통을 주고 있다. 시련과 위기에 빠진 가정은 교회의 기능을 하기 어렵다. 그들이 직면한 고통은 오히려 개인의 영적 건강마저 위협하고 있다. 교회에서 성도들과 교제와 접촉을 통해 유지해왔던 신앙이 비대면 시대에 흔들리고 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받기 위해 40일 동안 머물러 있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보이지 않자 몹시 불안해하고 흔들렸다. 그들은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눈에 보이는 신,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눈으로 대면할 때만 유지되는 신앙은 위기의 순간 흔들리게 되어 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 대신에 그들의 지도자를 의지해왔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은 고난과 시련이 올 때마다 신앙의 위기를 경험했다. 그들에게 고난과 시련은 신앙을 흔드는 위기가 되었다. 하지만, 성경은 모든 고난과 시련이 신앙의 위기가 아닌 성장의 기회로 삼은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요셉에게 고난과 시련은 성장을 위한 기회였다. 사랑받는 아들에서 노예가 되었을 때, 노예에서 죄수가 되었을 때, 그는 좌절하며 불평과 불만으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위기를 성장과 배움의 기회로 삼았다. 요셉이 그의 어려움을 성장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께 향한 신실함이었다.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유혹할 때 그는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향한 신실함을 잃지 않았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노예의 삶은 고단했다. 노예로서 애굽의 말과 문화에 적응해야만 했다. 어느 누구도 친절하게 안내하거나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디발의 모든 재산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요셉의 모습은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우리가 연구해 봐야 할 주제이다.

마침내 위기의 순간마다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성장의 기회로 삼았던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로 노예에서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고난을 통해 한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를 훈련시키셨다. 비록 그 훈련과정이 혹독하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신실함을 보여준 요셉은 모든 과정을 성장의 기회로 삼았기 때문에 그분이 예비하신 축복을 누릴 수가 있었다.

코로나19 시대에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우리는 이 고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시련과 고난이 누군가에게는 시험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