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코로나 임팩트’ 그 이후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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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봉 목사는 코로나 시대, 재림교회는 가장 안전하고 완전한 빛의 계시를 찾아 세상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인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변화 다양성 예측 ② – 신앙생활 영역을 중심으로

이학봉 목사(여수요양병원 원장)

신앙생활 영역
코로나19 상황에서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행정적 통제들을 경험하면서 종교인으로 공공예배의 규제에 대하여 당황스러움과 혼돈을 경험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물리적 거리가 정서적 거리를 밀어낼 때, 다가가야 할 사명적 명령은 어떻게 성취해 가야 할 것인가 개인생활이나 사회생활보다 신앙생활의 영역은 ‘포스트 코로나19’에서 재림교회와 재림성도로서 더 깊이 숙고해 보아야 할 영역이라 하겠다.    

1. 진정한 예배자가 되라
코로나19 상황 아래서 공공예배로부터 행정적 제재를 경험한 재림성도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면 변형된 예배에 대한 인식이다. 지금까지는 교회생활과 준비된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라고 여겨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특별한 상황에서 공공예배가 행정명령에 의하여 분산 혹은 대체 예배로 시행되자 불편함을 넘어 예배자로서의 예배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보아야 할 시점에 당면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예배는 무엇일까? 잘 준비된 순서에 따라 설교자의 설교를 듣는 것이 예배인가?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렸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인가? 산 예배와 충성된 믿음, 신앙인의 진정한 영적본질을 회복해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향후 가족단위의 신앙과 가족예배의 회복은 가장 소중히 간직해야 할 자산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예배처럼 함께 참여하는 신앙도 훌륭하지만 앞으로 격리상황에서 가족단위 혹은 홀로 서가는 신앙도 성령에 감동된 진정한 예배와 함께 경건한 신앙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두 한순간에 의미 없는 종교행위로 전락될 것이기 때문이다.    

간략하게 미래 신앙의 방향을 정리해 본다면, 우선 에녹과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수한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 되겠다. 요셉과 다니엘처럼 어느 곳에 있든지 자신의 직무에 철저한 성실성과 정직성이 보장된 생애를 살아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향후 현행법들이 신앙을 구속할 때 가장 위대한 답은 법적 해결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같은 진정한 품성을 끝까지 유지하며 삶이 예배가 되는 생애로 답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2. 사회적 프레임에 갇히지 말라
더욱 사회적 프레임에 갇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신천지는 속이고 감추는 종교집단으로, 보수기독교는 불법적 행동을 신앙으로 우기는 엉터리집단으로 인식되고 있고, 최근 한국 사회의 개신교는 ‘개독교’라는 비난을 넘어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의 주적 중 하나로 분류되고 있다. 도덕적 가치가 사라진 영성은 무의미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화석화된 신앙은 타인에서 불편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사회적 폭력을 불러오는 빌미를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향후 종교가 비난을 받고 폭력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처럼 위기 상황에 취할 수 있는 행동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한 종교집단의 신념과 신조도 ‘공공의 적’으로 인식된 후에는 ‘여론몰이’와 ‘놀이문화’로 포장되어 다뤄질 때 결정적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올 것에 대해서는 이미 예언의 글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불원간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고, 폭력의 대상으로 삼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변동과 재림신앙에 대해 더 깊은 성찰과 길들어진 생활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필요하다 하겠다.

새들백 교회 목사인 릭웨렌은 2005년 플로리다 키 웨스터에서 열린 한 종교 포럼에서 “(기독교 근본주의를 포함한)모든 종류의 근본주의는 21세기의 큰 적들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을 펼쳐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의 규정대로라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인류의 공존과 번영을 방해하는 ‘공공의 적’으로 분류되어 교화 내지 처단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영감의 글에는 ‘그들은 성경에서 흠을 찾아내고 가장 중요한 성경의 진리를 이론적으로 해석해 버리는 것이 그들의 우수한 학식과 재능에 대한 증거인 것처럼 생각한다. 많은 목사는 그들의 교인에게, 많은 교수와 교사는 그들의 학생에게 하나님의 율법이 변경되었거나 폐기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가 여전히 효력이 있으므로 글자 그대로 준수해야 한다고 하는 자들이 오히려 조소와 모멸을 당해야 할 것처럼 생각한다(쟁투, 583).’

코로나19 이후 신실한 믿음이 ‘공공의 적’으로 분류되는 일이 더 쉽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해 볼 수 있겠다.

  
3. ‘공공의 선’을 위해 협력하라
가톨릭은 코로나19에서 경험한 것처럼 한 국가나 집단이나 단체가 세계적 위기를 극복하고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런 지구적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가톨릭뿐 아니라 개신교를 포함한 다른 모든 종교와도 그리고 더 나아가 ‘선의의 사람들’이라고 정의한 모든 이들과 전염성질병과 같은 ‘공공의 적’에 대응할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공공의 선’을 위해 연합하고, 지구적으로 함께 공조하며 극복해야만 가능하다는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 일을 주도적으로 선도해 가고자 계획하고 다양한 영역의 지도자들과의 대화를 시작하고 있다.

우려하는 것 중 하나가 “어느 종교이든지 그 종교가 갖는 공동체의 형식과 신조가 여타 다른 종교와 충돌하거나 자신만의 우월을 주장하며 신조에 집착하게 되거나 ‘거룩함’이라는 이상에 갇힐 때 여타 종교와 차별화 하게 되고”, “결국 받은바 빛에 충성됨이 구별하는 사명으로 변질될 때 차츰 분리주의로, 고립과 폐쇄적 공동체로 변질되어 가면서 보편적 가치인 연합과 평화와 같은 공공의 가치를 간과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하는 점이다.

창조주의 뜻은 ‘다양함이 함께하는 조화로움이요, 깨끗함과 거룩함이요. 행복과 공동 번영임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공동체의 이념화된 폐쇄성이나 집단 이기적 본성에서 타락한 야욕에 결탁하거나 체제를 위한 결속만을 강화하며 연합과 평화의 위협요인이 되어갈 때 이것을 하나님의 교회가 가지고 있는 죄’라고 정의하고 있다.            

어느 종교든지 ‘독선적이며 우월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진정한 경청의 자세를 잃게 하며 개방적 사고를 견지하며 사회적 정의와 평화를 위해 연합해야 하는 일에 무관하게 된다. 결국 사회적 교류보다는 내부의 지배와 패권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인간의 발전과 완성이라는 큰 뜻을 저버리게 된다. 또한 그 결과는 소속된 한 개인도 그 존엄한 존재로서 가치의 소중함은 간과된 채 그 집단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자원이 되고 만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처럼 세계적 질병이나 재난의 위협에 직면할 때 이런 다양한 견해와 주장들이 설득력 있게 들려질 수 있을 것이며 그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재림교회와 성도는 이 부분에서 분명한 이해와 구별이 있어야 한다. 불필요한 충돌은 엄격히 자제해야 하며 ‘공공의 적’에 대한 ‘공공의 선’은 이유 불문하고 함께 공조해야 하고,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행동에 동참하는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

이는 종교를 떠나 가장 기초적이며 지속적인 입장이어야 하며 희생과 헌신을 필요로 할 때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 인간의 완성이 선행을 통해서 완성되며 인간을 지으신 이에게 대한 합당한 영광과 찬양이 되기 때문이며 선악의 대쟁투에서 내 안에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 곧 생명과 사랑의 주라는 사실을 그 분의 품성의 실행을 통해 온 우주 앞에 보여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4. 성서의 계시로 희망을 비추라
코로나19보다 더 광범위하고 치명적 위기의 상황이 종교적 충돌을 빚어낼 때 가장 안전한 성서적 제안은 개인적 기도생활이다. 인간의 사상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그분의 뜻과 계획을 경청하며 한 인간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가운데 완전한 인간으로 서 가도록 하나님께 경청하는 일이야말로 위기와 재난의 국면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생명의 주를 영접하고 그분의 뜻이 자신의 삶에서 완성되도록 경청하며 성령이 세미한 음성에 순종하는 삶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삶이라 하겠다.

‘포스트 코로나19’가 어떠한 변동의 세상을 가져오든지 재림교회와 재림성도가 더 집중해야 할 영역이 있다면 미리 기록한 역사인 예언의 빛으로 더 가까이 나가가 ‘더 빨리 왕래’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이 혼돈과 어두움의 절망 속에 미래를 잃으며 자연재해는 더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인간의 폭력성은 법이 제어할 수 없을 만큼 무자비해져 갈 때 19세기 초 유토피아의 이상이 디스토피아의 혼란 속에 빠져들어 갈 즈음 윌리엄 밀러의 성서연구를 통한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새로운 희망의 빛을 세상에 비춰주었다. 당시의 재림에 대한 희망은 단순한 교리적 발전이 아니라,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빛이 되어 세상을 희망으로 설레게 했다.

21세기 세계적 전염성질병의 위협과 광범위한 자연재해의 공포들이 엄습할 때 세상은 더 부도덕함과 폭력으로 물들어 갈 것이다. 재림교회와 재림성도가 해야 할 사명적 본분이 있다면 성경과 영감의 글에서부터 그 세상에 희망의 빛이 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찾아 19세기의 재림운동보다 더 밝게 온 세상을 비출 수 있는 희망의 빛을 찾아내는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라 하겠다.

재림교회와 재림신앙은 포스트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를 희망으로 설레게 할 성서적 생명과 희망을 찾는 일에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텐포드대학 졸업 축사에서 인용한 말(Stay Hungry Stay Foolish)처럼 ‘어리석다 할 만큼 그만큼 갈망해야’ 한다. 성경과 예언연구를 통한 가장 안전하고 완전한 빛의 계시를 찾아 미래 세상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드러내는 일이 재림교회와 재림신앙의 존재 이유와 진정한 정체성이며, 세상을 향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