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코로나 시대, 청년세대 선교방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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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반석 목사는 “요즘의 젊은 세대는 교회 자체에 불만을 가진 게 아닌, 교회답지 않은 모습에 불만이 있다”고 지적한다.
코로나 시대 이후, 청년세대의 인식변화 전망과 선교적 대처 방안

이 글은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각자 다른 사고방식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화합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도하며 작성했습니다.  

서반석 목사(ACT영남 지도목사 / 성지교회 담임)  

지난 한해 ACT영남의 지도목사를 맡으면서 필자는 아직 청년세대와 크게 어색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과 10년도 차이나지 않지만, 10년 전 필자가 교회를 다니던 때와는 사뭇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지금 이 시대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문화 속에서 자신만의 특징을 만들어 내기 위한 각 세대의 노력이 이러한 결과를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아무튼 이 글을 기록하며 필자도 청년세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 청년세대와 만나면서 느낀 감정과 그들이 무엇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무엇에 불편함을 느끼는지에 대한 간접적 경험을 정리하려 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또 한 번 급변하는 코로나19 시대 이후, 청년세대를 향한 선교적 대처 방안에 대한 고민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세계는 새로운 질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코로나19는 많은 일상을 변화시켰다. 매일같이 모여서 회의하고 수업하던 사회가 크게 위축되고 비대면 모임이 일상화됐다. 많은 교회도 비대면 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온라인 예배를 진행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 속에 빠르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급속도의 변화는 개혁의 이유가 아닌 생존의 문제가 됐다. 생존을 위해 각 국가는 국민의 이동을 통제하고, 이기적인 공동체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전세계가 함께 잘 살자고 하는 세계화에 반해 ‘우리라도 살자’라는 생존을 위한 싸움으로 번졌다. 모든 질서가 각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재정립되고 있다. 새로운 질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와 특히 앞으로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청년세대도 ‘포스트 코로나’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하나님께 매달려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사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부터 교회의 ‘위기설’은 계속 제기돼 왔다. 교회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축소됐다. 특히나 젊은 세대의 이탈은 교회의 위기에 가장 큰 고민이었다. 재림교회가 지니고 있는 보수적인 문화가 젊은 세대에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그들이 주체가 되기에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봉사와 헌신은 차이가 커보였다.

이러한 작은 문제들이 점점 교회와 젊은 세대의 거리를 멀어지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멀어진 거리가 이번 코로나19로 완전히 파괴됐다. 이는 교회와 젊은 세대가 가까워졌다는 말이 아니다. 젊은 세대와 가까운 거리에 있든, 먼 거리에 있든 질서가 깨졌다. 교회도 젊은 세대와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 파괴된 질서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해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판단된다.

젊은 세대는 진리에 충성한다.
어느 한 청년이 안식일 시험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교사를 꿈꾸고 있는 청년인데, 임용고시가 안식일에 있어 고민하고 있었다. 물론 삼육학교 임용고시도 있었지만, 너무 높은 경쟁률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고, 가정에서 홀로 신앙을 하고 있었기에 부모님도 이해를 해주지 않는 처지였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떤 말로 이 청년을 위로할 수 있을까.

평상시라면 부드럽게 개인의 선택을 중요시 여기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묵상을 하던 말씀의 영향인지, 이 청년에게 단호하게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행복을 위해 주신 날이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반드시 지켜야 하고, 개인의 흔들리는 마음이 해결되고 하나님께 맡길 때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말을 하면서도 마음에 양심은 잘했다고 하는데, 혹시 이 청년이 나의 말을 통해 비이성적이라 생각하고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됐다. 그런데 놀랍게도 청년은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이렇게 말해주지 않았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아마 누군가 확실하게 안식일에 시험을 보는 문제에 대해서 잘못이라고 확실하게 말해줬다면 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청년과 진행한 상담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됐다. 청년세대는 ‘성경에서 말하는 바를 그대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을 걱정하며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하며 듣기 좋은 말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닌,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달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청년세대는 인간이 만든 효율적인 위로, 전도, 활동보다 직접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제로 ‘하나님을 믿으면 복이 있습니다’라는 말보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가진 잘못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때, 복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말에 젊은 세대는 더 크게 공감하고 반응한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았을 때, 이제는 젊은 세대를 설득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말씀에 충실한 진리가 필요하다. 세상의 이론과 문화에 접목된 보기 좋고 편한 말씀이 아닌,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히브리서 4:12) 완전한 개혁과 능력의 말씀을 준비해야 한다.

젊은 세대는 교회 자체에 불만을 가진 게 아닌, 교회답지 않은 모습에 불만이 있다.
근래 들어 우리 사회에서는 기독교를 비하하고 비판하고 조롱하는 신조어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목회를 하다보면 신앙을 하지 않는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종종 있다. 각자 다양하게 기독교를 바라보지만,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예수님은 믿어도, 교회는 별로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 가슴 아픈 말이다. 때로는 교회가 주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예수님에 대한 복음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기독교를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생각은 기성세대가 가진 것보다 더 부정적이며 적극적이다.

필자는 그 같은 원인을 “교회가 교회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교회가 100% 긍정적인 모습을 유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느끼는 감정은 생각보다 더 교회답지 않은 모습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는 부조리한 조직과 기존 질서에 대단한 반감을 갖는다. 여기서 집중해야 하는 부분은 ‘부조리한 조직과 질서’다. 젊은 세대도 정당하고 합리적인 기존의 질서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납득이 가능한 질서 앞에서는 충성을 다한다.

필자도 착각한 부분이지만, 기성세대가 오해하고 있는 사실은 ‘청년세대는 반항적인 태도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미 세워진 사회질서에 무조건적으로 반항하며, 질서를 깨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하게 오해하고 있는 사실은 젊은 세대는 불합리한 질서에 싸우고 있는 것이지, 기존의 사회질서에 반기를 드는 게 아니다. 오히려 청년들은 기존의 사회질서가 합리적이라 생각되면 누구보다 큰 충성심을 가지고 권위에 복종한다.

교회는 현재 모든 사람이 납득할만한 ‘합리적이고 정당한 질서’를 갖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지 않는 가르침이나 모습이 교회에 있다면, 확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참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는 신념공동체다. 이익이나 즐거움을 위한 공동체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념을 가진 공동체다. 공동체원의 유익이나 편의를 위한 모습은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이 될 수 있다. 젊은 세대는 교회를 다니며 편안하고 개인의 유익을 위한 것보다 더 높은 신념을 교회에서 얻기를 바라고 있다.

젊은 세대와 함께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주도하려면
글을 정리하면서 젊은 세대를 위한 선교전략에 대한 주제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은데 본인의 연구가 턱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교회가 젊은 세대를 위한 연구에 더 깊이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젊은 세대가 무한신뢰를 보내는 대상은 없다. 끊임없이 관찰하고 비판하고 연구하며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모습이다. 국가도 교회도 교육기관도 젊은 세대가 보는 것은 합리적이고 정당한 목적대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가를 질문하고 평가한다.

이렇게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는 교회뿐 아니라 현재 사회도 많은 문제를 가졌고, 이것을 사회가 자생할 능력을 상실했다 생각한다.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고, 결국에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가장 옳은 것이라는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에 매료되어 살아간다.

이렇게 어떠한 것도 답이 되지 못하고 개인의 선택을 최소한의 위안으로 삼고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이제 교회는 합리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대안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