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지붕을 뚫는 믿음을 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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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섭 목사는 코로나 시대 이후, 온라인·비대면 활성화에 대처하는 지역교회의 선교적 변화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코로나 시대 이후, 온라인·비대면 활성화에 대처하는 지역교회의 선교적 변화 필요성과 전망

김동섭 목사(대구국제교회 담임)

지난 2월 18일 자정이 가까워져 가는 시간, 선교수련회를 다녀온 딸이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아빠! 이번에 수련회에 같이 갔던 후배 엄마가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로 판정되었어!”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우리와 상관없을 것 같았던 생소한 이름의 바이러스가 우리 일상을 완전히 바꾼 사건이 된 출발점이…

말 그대로 순식간에 대구 전체가 패닉(Panic)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성도들의 지인이 연이어 확진자로 판정되면서 예배 문제에 의견차이로 인한 혼란이 발생했다. 하지만 합회, 연합회의 자문을 통해 가까스로 금요일 오후에 이르러 2월 22일 안식일부터 선제적으로 가정 및 온라인 예배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어 정부에서 내려진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와 종교 집회 금지라는 행정 명령으로 인해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일선 지역교회들은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다양하고도 복잡 미묘한 문제들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특히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불러낸 사람’이라는 ‘선교적 교회’의 중요한 고백과 진술과는 다르게 여전히 굳건한 건물과 공간 중심의 종교 생활양식 속에서 각 가정에서 온라인 등의 비대면으로 드리는 예배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앞으로 심도 있게 다뤄야 할 중요한 과제가 대두됐다.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퇴락을 가속화 시키고, 이미 대세가 되어버린 유투브(YouTube) 등과 같은 쌍방향 소통 중심의 미디어에 익숙하지 못한 기존 세대를 위한 대비와 변화된 선교 패러다임을 대처하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On-line platform)을 준비할 수 있을 정도로 IT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지 못한 목회 현장의 한계 또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에 팬데믹(pandemic)이라는 초유의 비상 상황에서 마치 <안네의 일기>처럼 숨 가쁘게 고민하면서 기록한 목회 일기의 한 꼭지였던 ‘지붕을 뚫어 중풍병자를 고친 사건’이 기록된 마가복음 2장을 토대로 이전과는 분명하게 달라질 코로나19 이후의 선교 패러다임의 변화의 필요성과 전망을 나누고자 한다.

첫 번째로 중풍병자를 고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메워 온 네 사람의 믿음을 보셨다는 점이다.

이것은 코로나19 이후의 선교적 패러다임의 변화의 대처에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점검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신앙의 본질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의 필요성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가 혼란스러워질수록 가짜 뉴스가 신속하게 양산됐다. 이것은 중세 유럽의 인구 60%를 휩쓸고 간 죽음의 역사를 배경으로 쓴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전염병보다 더 빠르게 사람들을 전염시키는 것이 거짓 정보였다.

이번 코로나19를 통해서도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가짜 뉴스에 의한 정보 전염병(Infodemic)이 얼마나 창궐했는가?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더 강력한 것이 공포와 불안 심리 바이러스이다. 이 두려움이 만들어낸 거짓 정보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근거 없는 소문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공포를 증폭시킨다. 희망을 빼앗아 가며 결국 혐오와 배제와 분노로 사회의 신뢰가 무너지고, 관계가 깨어져 공동체를 망하게 만든다. 이런 알고리즘은 실제로 마스크 대란을 일으켰고 몇몇 나라에서는 물, 화장지 등의 생필품을 사재기 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앞으로 우리가 가장 힘을 기울여 회복해야 할 과제는 바로 신뢰회복이다. 먼저 목회자와 성도 모두가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건강한 종말론 및 재림신앙 정립 등 하나님과의 신뢰회복을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과 비대면 접촉이 활성화된 예배 현장에서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술적으로나 내용면으로나 전문적으로 잘 준비된 목회자들의 설교를 들은 성도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앞으로 설교의 중요성은 더 강조될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예배와 특별히 설교준비에 고민을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예배 중단 사태와 탈교회적 예배의 경험이 개인 신앙은 물론, 교회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약화시키고 결국 외형적인 교회의 쇠락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회 현장에서 목회자가 IT분야에 전문적인 기술 준비도 필요하지만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로 균형지고 정확한 진짜 정보와 진짜 믿음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를 보다 심도 있게 준비해 목회자 스스로 신뢰회복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 교회와 내가 속한 사회 공동체와의 신뢰 회복문제가 선교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필요성에서 매우 무게감 있게 다뤄야 할 주제가 될 전망이다.

아무리 온라인과 비대면 접촉이 활성화 된다하더라도 개인의 회심은 반드시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도가 지나칠 정도로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된 현재 한국 사회의 기독교에 대한 인식은 마치 용신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무리들이 장애물이 되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직접 데려 가지 못하는 형국처럼 느껴진다.

지난 3월 말 안식일 오후에 교회 선교회 주관으로 손청결제과 마스크를 주민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교회 주변 산책로를 찾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에서 베푼 호의에 감사하며 손 청결제와 마스크를 받아갔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교회에서 준다고 하니 거부하거나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손청결제를 보란 듯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바로 이 부분이 지역교회에서 더 심하게 겪을 현재 선교 패러다임의 한계와 장애물이다.

이것은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드러난 교회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의 문제이며,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도 죽음의 위기에 빠진 공동체를 위해 성직자들이 헌신하지 않은 결과로 교회의 위상이 낮아지는 역사를 고발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핫이슈였던 ‘신천지’는 폐쇄적 운영과 비합리적 선교 방식 등 이 종교집단의 ‘반사회적’ 특성이 있었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재림교회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신천지를 비판하거나 그들과 다르다는 것만 부각시키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교회 안에 있는 우상을 발견하고, 죄로 인해 죽어가는 영적 중풍병자를 직접적으로 예수님께로 데려가지 못하게 막고 있는 장애물을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스스로 진리교회라고 정통성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할 뿐, 자신이 속한 사회 공동체를 향해 어떤 사회적 규범을 제시하거나 공익을 위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적인 집단처럼 보이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지 않은지 우리 스스로의 자기반성을 위해 지금은 한 차원 더 깊은 질문과 그 대답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 교회는 이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두 번째로 중풍병자를 고친 숨겨진 포인트는 네 사람이 함께한 연대의 힘이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세계가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마치 노아 홍수의 위기를 겪고 난 후 쌓은 바벨탑처럼 하나님 없는 연합과 연대를 시도할 우려는 있지만 이미 알베르 카뮈도 <페스트>를 통해 ‘연대’가 글로벌 위기의 해결책이라고 제시했다.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도 에 기고한 ‘코로나 19이후의 세계(The World after coronavirus)’라는 기고문의 마지막 문장을 통해 이렇게 강조했다.

“인류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분열의 길을 걸을까요? 아니면 글로벌 연대의 길을 택할까요? 만약 우리가 분열을 선택한다면, 위기를 연장시킬 뿐만 아니라, 아마도 미래에 더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글로벌 연대를 선택한다면, 그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승리일 뿐만 아니라, 향후 일어날 21세기 모든 미래의 전염병의 위기에 대한 승리일 것입니다.”

필자도 이번 코로나19가 순식간에 퍼지면서 중요한 결정을 단기간에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경험했다. 이럴 때 혼자 이 모든 짐을 지고 선택하고 결정한다면 그것은 더 큰 재앙을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각 세대에서 잘 양육되고 훈련된 다양한 재능을 가진 성도와의 유기적인 협력, 합회와 연합회의 체계적인 도움과 지도, 여러 지역의 교회와 성도들이 어려울 때 보내주는 위로와 격려의 전화 한 통, 아낌없이 보내 준 마스크와 손청결제와 각종 구호품, 혼자라면 한참을 고민해야 하지만 같은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동료 목회자들이 SNS에 제시한 다양한 시도와 해결책 그리고 각종 아이디어… 이 모든 것이 당장 헌금 감소와 교회 존폐 문제 때문에 감염 위험에도 현장 예배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 독립 교회 등 다른 교단과는 달리 코로나19의 가장 뜨거운 관심지였던 대구에서 현재까지 버티고 이겨 낼 수 있는 힘이 됐다.

그러나 한 가지 제안은 지역교회가 이 거대한 도전에 홀로 맞서기는 분명 역부족이라는 인식이다. 남 탓과 냉소주의와 세대 간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선교조직의 힘을 효율화,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산학협력처럼 선교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대학교의 각종 전문연구소, 연합회의 선교연구소, IT 전문가 등이 협력해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에 선제적으로 대처하는 진정한 연대의 힘이 발휘돼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중풍병자를 고친 가장 혁신적인 포인트는 네 사람의 믿음이 지붕을 뚫는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이번 코로나19가 가져온 또 하나의 중요한 메시지는 생명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이다. 정치에는 이데올로기 보다 중요한 게 경제 문제라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경제 문제보다 더 우선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생명 종교이다. 법을 잘 지키고 윤리적으로 바른 생활하는 도덕적인 사람을 만드는 것이 우선인 종교가 아니다. 죄로 인해 죽어가는 영혼을 참된 의원이신 예수님을 만나 영원한 생명으로 살리는 종교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종교혁명의 각오로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못하도록 덮고 있는 지붕과도 같은 거추장스러운 것들은 뚫고 걷어내야 한다.

우리 가운데 만연했던 비신앙적인 바이러스를 다 깨끗하게 소독하고 영적, 육적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교회의 본질적인 소명과 사명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제거해야 한다.

이번에 이런 취지로 바이러스 감염의 공포에 비대면으로 대처하는 다양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등장했다.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예배, 각종 온라인 예배, 실시간 화상 회의 및 교과공부 등 이전에 보지 못한 창의적인 방법들이 앞으로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몇 가지 문제점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교회의 규모나 재정적인 형편상 IT분야에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인력이 준비돼 있지 않거나 보안문제도 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이다. 교회는 다양한 연령대로 구성돼 있기에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한 세대와 새로운 기술에 적응력이 뛰어난 세대가 공존한다.

앞으로 새로운 기술적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교회와 예배에 대한 불편함과 소외감이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또 다른 문제는 예배가 인간중심적 편의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IT분야에 전문가가 아니기에 이 문제에 대한 대안과 해결책은 빈약하다. 그러나 일천한 목회 경험 속에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있다. 아무리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활성화가 대세라 하더라도 – 네모난 핸드폰의 능력은 실로 엄청나다는 것은 인정하나 – 분명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려면 먼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개인이 그 영혼과 직접적인 접촉이 선교현장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초불확실성으로 뒤덮인 현재의 지붕을 함께 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 우리 모두가 재정비해야할 과제가 바로 건강기별을 통한 선교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건강기별의 실천이 주관심사였다면 코로나19 이후에는 각종 장애물로 뒤덮인 지붕을 뚫고 이웃의 생명을 구하는 선교의 쐐기가 되도록 이 사역을 소수의 몇 사람에게 맡기지 말고, 교회 구성원 전체가 삶으로 실천하고 전하는 건강기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현재 섬기고 있는 교회는 국제교회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성도들이 출석한다. 한국에 합법적인 이주민이 약 230만 명 정도이고, 오는 2050년은 1000만 명이 될 전망이라고 한다. 이제 이주민을 선교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이웃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주민 선교를 넘어 이주민 목회의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그러나 재난 상황에서 정의와 공정은 항상 약자와는 거리가 멀다. 부자들은 피할 곳이 있지만 가난한 사람과 약자들은 직격탄을 바로 맞고 신음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외국인 성도들은 의료보험 문제로 인해 공적 마스크를 구입할 수가 없는 상황에 처했다. 급하게 수소문을 해 마스크를 확보하고, 몇 주 동안 위험을 무릅쓰고 외국인 성도들과 구도자와 노약자에게 전달했다. 먼 타국 땅에서 외롭게 두려움에 떨고 있던 외국인 유학생과 노동자들이 마스크를 받는 순간 감사와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설교를 음성으로 녹음하고, 온라인을 통해 비대면으로 예배를 진행하는 것도 지붕을 뚫는 혁신적인 시도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진짜 믿음에는 행동이 필요하다. 마음이 없으면 핑계거리는 수천가지다. 그러나 도와줄 마음만 먹으면 창의는 무한하며,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지붕을 뚫는 모험적인 결단과 창조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이제 예수님을 닮고자하는 제자들인 우리는 어떤 수를 내더라도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에 내몰린 영혼을 찾아가서 아날로그적인 터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변화된 선교 패러다임의 다양한 대처 방법 속에서도 선교의 정신과 본질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현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솔직히 나 자신도 당황스럽고 무기력하다. 그러나 이 폐허를 응시해 볼 때 지금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데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과 모든 사람이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용기와 평안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때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코로나19가 가져온 온라인, 비대면 활성화 등의 선교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혼란과 도전 속에서도 함께 그 지붕을 뚫을 수 있도록 기본으로 돌아가 이미 우리에게 약속하신 선교의 성공원리를 실천해 보길 기도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방법을 사용함으로써만 사람들을 접촉할 때 참 성공을 거둘 것이다. 구주께서는 사람들의 유익을 소원하는 분으로서 그들과 섞이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에 대한 당신의 동정심을 보여 주시고, 그들의 필요를 따라 봉사하시고, 그들의 신임을 얻으셨다. 그 후에 그분께서는 ‘나를 따라오라’고 그들에게 명령하셨다” <치료봉사,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