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느헤미야에게 배우는 역할 변화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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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홍팔 목사는 코로나 시대,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여러 각도로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 시대 이후, 목회의 환경변화 전망과 목회자의 역할변화 필요성

하홍팔 목사(전 삼육대 신학과 교수)

21세기를 살고 있는 사람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천재지변이 많이 있어 왔지만 대부분 국지적이었고, 세계적인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일깨워 준 사건이었다. 우선 눈에 보이지 않게 그 전염성이 대단하고, 사망률 또한 적지 않아 실로 공포의 대상이 됐다. 과거 사스나 메르스가 왔을 때도 지금처럼 두려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저 강 건너 불 보듯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는 생활 전반에서 많은 것을 변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너무나 급작스럽게 말이다. 예를 들면, 매 안식일마다 습관적으로 교회에서 드렸던 예배가 코로나로 거의 두 달을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니, 성도들을 만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목회환경에도 급작스런 변화가 왔다고 본다. 어쩌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목회자의 기본이 되는 예배나 가정방문이 거의 불가항력적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목회의 환경변화와 목회자의 역할 변화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 생소했다.

왜냐하면 나의 평생 사역이 대학이었기 때문에 주어진 주제와 거리가 꽤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일선목회를 해 본 것이 있다면 1970년대에 그것도 부산위생병원(현 삼육부산병원)에서 전도사로서 병원 원목의 일과 교회의 일을 겸임했던 것이 전부였다. 나는 삼육부산병원, 시조사, 삼육대학교, AIIAS, 북아시아태평양지회, 그리고 일본삼육대학에서 봉사한 후에 은퇴를 했다. 말하자면, 목회와는 문외한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쓸 수 있는 소재가 조금 생겼기에 그 경험을 토대로 몇 자 적고자 한다.

일본삼육대학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조그만 시골교회를 맡게 되었다. 전체 교인 수는 대략 열다섯 명 정도이고, 그것도 80대가 주를 이루는 전형적인 시골 교회였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교회, 그것도 시골 교회를 맡는다는 것은 엄청난 환경 변화였다. 평생을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노인들 앞에 서니 우선 말문이 막혔다.

강의실에서 사용하던 단어들이 모두 바뀌어야 했다. 그들의 눈높이에 맞혀 설교를 해야 하니 한 동안 애를 먹었다. 할 수만 있으면 전문적인 단어는 피해야 했고,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했다. 그럼에도 더 잘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어 고심하던 중 설교에 파워포인트를 활용했다. 그날의 성경 구절에 맞는 그림이나 사진을 성경구절과 함께 파워포인트에 올려 설교를 했다.

그들 중에는 겨우 한글을 깨칠 수 있는 분도 있었고, 또 어떤 분은 난청에다 보청기를 사용해도 잘 듣지를 못하는 분도 있었다. 그래서 그림이라도 보고 오늘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를 알리고 싶었다.

어찌 되었건 매주 설교 한 편을 작성하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었다. 매주 어디에서 무엇을 주제로 설교해야 할지 암담하기도 했다. 평생을 강단에서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이 위대하게 보였다. 처음에는 성경 여기저기서 설교 소재를 찾아 헤매다가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생애를 시리즈로 설교하기 시작했다. 복음조화 179회 중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145회를 다루고 있다.

열다섯 명 앞에서 설교를 하다 보니 아쉬움이 컸다. 그러던 차에 인근에서 조그만 시골교회를 맡고 계신 은퇴목사님이 설교를 녹음해 자기에게 보내주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말씀이 조그만 시골 교회에 국한되지 않고 지경을 넘어 먼 곳까지 필요한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녹음기를 하나 장만해 매 안식일 설교를 녹음하여 보내드렸다. 그 목사님은 그것을 또 본인이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 있는 사위가 설교를 동영상으로 녹화하여 유튜브에 올리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유튜브에는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많은데 나 같은 사람이 할 수 있을까 하고 주저했다. 그러다가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동영상을 찍다 보니 빔 프로젝트가 희미하여 동영상으로 내보내기에는 바람직하지 않아 모니터를 교체하기로 했다.

시골 교회의 재정이래야 뻔하지 않는가. 영남합회 ‘디딤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일부 지원을 받고, 또 아는 지인들(미국과 한국)에게 호소해 마침내 75인치 대형 모니터를 준비했다. 또 필요한 다른 영상장비를 미국의 사위가 보내주어 촬영할 준비가 된 셈이었다. 녹음과 달리 카메라 앞에서 설교를 하려니 떨리기도 하고, 말의 실수도 많이 했다.

편집할 능력이 없어 그냥 그대로 내보냈다. 거의 혼자서 장비를 설치하고 일인다역의 일을 하려다 보니 70대가 하기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시도해 보지 않았더라면 열다섯 명 앞에서 끝났을 말씀이 사방에 전달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 이것을 시작했을 때는 목회자 없는 시골 교회, 말씀을 갈망하나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어 정규적으로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조회 수가 200-300을 오르내렸는데 어느 날 동영상 첫 화면에 “소남교회”(경북 어딘가에 똑 같은 이름을 가진 장로교회가 있었다)라는 이름 대신 “소남재림교회”라 했더니 조회 수가 확 줄어드는 것이었다. 이것을 시작한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아직 조회 수가 그렇게 많지는 못하다. 아직 미미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미국, 필리핀, 일본 등에도 보내지고 있다고 들었다.

나의 설교는 일선 교회에서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말 그대로 성경연구 시리즈다. 수준을 조금 높여야 했기에 이곳 교우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매우 죄송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접하면서 이런 때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 것은 아니었지만, 매주 설교가 유튜브에 업로드 되고 있었기에 신자들은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청할 수 있었다.

내가 이 교회에 와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깨달은 것 하나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 한계를 뛰어넘게 한 것이 유튜브였다. 이것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세 천사가 공중을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 모두가 주지하다시피, 유튜브는 국경을 초월하고 종파를 뛰어 넘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전천후 메신저이다.  

카이스트 이병태 교수는 코로나 사태 이후를 이렇게 예측했다.

“위생적인 생활이 몸에 밸 것이다. 디지털 경제가 늘어나 핀테크, 무인점포가 증가할 것이다. 유통은 오프라인에서 빠른 속도로 온라인으로 재편될 것이다. 대형 교회는 몰락할 것이고, 탈종교화가 가속할 것이다. 배달 사업은 번창하고 식문화는 크게 바뀔 것이다. 자동화가 생활화 될 것이다. 공연장, 찜질방, 영화관, 노래방, 스포츠, 단체여행 등은 사양길에 들 것이다. 술집보다 골프장, 등산 등 야외스포츠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 뉴욕 주 주지사인 쿠오모는 “우리가 일반적인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나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똑똑하다면, 대신 ‘뉴노멀'(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히브리대학의 교수이자 미래학자이며 역사가인 유발 하라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코로나의 위기는 우리 시대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사건이 될 가능성이 있다. 오래된 규칙은 산산조각이 나고, 새로운 규칙은 아직 쓰여 가고 있다. 앞으로 한두 달 동안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는 실제 조건에서 대규모 사회실험을 실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몇 십 년의 세계의 형태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다. 그러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반적으로 천재지변 등은 국지적이고 그것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진 반면, 이번 코로나19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침묵의 살인자이다. 이 같은 급격한 환경변화에 따라 우리의 역할도 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느헤미야의 경험에서 급격한 환경 변화에 따른 역할 변화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산발랏과 도비야의 방해가 있었을 때 느헤미야가 취한 행동이 그것이다.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 . .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을 하며”(느 4:16-18).

급작스런 변화에 부응하여 그 변화에 따른 조치를 취함으로써 마침내 예루살렘이 그 어려운 중에서도 중건됐다. 한 손에 건축 연장만 들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다른 한 손에 새로운 비책이 제공됐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도 이런 지혜가 필요한 때일 것이다.

나는 방문마저도 할 수 없는 이번 코로나19 위기에 직면하여 설교는 동영상을 통해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했다. 그나마도 동영상을 볼 수 없는 노인들을 위해서는 전화로 안부를 묻고, 전화로 그들을 위해 기도해 드렸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서두에서 말한 대로 나는 목회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어서 이런 글을 쓰기에는 역부족이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은퇴 후에 시골 교회를 만 4년 넘게 봉사하면서 경험한 것을 이 지면에 소개했다. 이런 급작스러운 변화에 대해 구체적인 어떤 비결을 말해줄 수는 없으나, 미래를 예측하고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여러 각도로 미리 준비하면 좋을 것이다. 유비무환의 교훈을 항상 염두에 두고 주님께 지혜를 구하면 위기의 때를 기회의 순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