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소 잃기 전 외양간 고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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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라는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친 격이지만 암 수술 후에 생활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식탁의 변화입니다. 소화기 계통의 암이다 보니 먹는 것이 몸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대로 된 식탁이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가장 중요한 약이라는 것을 투병과 회복 과정에서 큰 교훈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징글징글한 사람과의 관계를 마무리하고자 할 때 우리는 흔히 ‘잘 먹고 잘살아라.’라고 마지막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정말 중요한 말이고 좋은 덕담이더라고요. ‘잘 먹는 게 먼저냐?’ ‘잘 사는 게 먼저냐?’라고 묻는다면 별나게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이거나, 원하는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전국 맛집들을 찾아다니는 미식가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잘사는 게 먼저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적어도 자신은 먹기 위해 살지는 않는다고 자신 있게 결론을 내릴 것입니다. 그런데 잘살기 위해선 먼저 잘 먹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고 삽니다.
   잘 먹는 법이 잘사는 법의 아주 중요한 핵심임을 우리 부부는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배웠습니다. 지난 10월 초, 남편의 정기 검진을 다녀왔습니다. 수술 후 6개월마다 혹은 해마다 하는 정기 검진입니다. 지난 7년 동안 우리 부부에게 정기 검진은 여러 가지 검사로 번거롭기도 했지만 혹시 안 좋은 쪽으로 결과가 나오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로 신경 쓰이는 중요한 연중행사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모든 것이 정상이고 건강해졌으니 이제부터는 검진을 2년 주기로 해도 된다는 말에 우리 부부는 많이 안도했습니다.
   결혼 20주년을 기념하듯 7년 전 남편은 직장암이라는 병을 얻었고, 7시간이 넘게 걸리는 대수술을 했습니다. 당시 고3과 대학생 아이를 둔 가장이었고 회사에서는 전무의 책무를 맡아 한창 일할 때였습니다. 암이라는 병이 발견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처음엔 두렵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그때까지의 삶을 되짚어 보고 우리의 생활 방식을 되돌아보게 된 인생의 전환점이고 새 생활을 시작하게 된 기회였습니다.
   암이라는 병은 생활 병이라는 말이 있지요. 병을 얻고 살펴보니 남편은 소화기 쪽 대장과 직장암에 걸리기에 아주 적합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건강을 자부하고 건강 생활을 설파하던 남편은 정작 자신의 건강 생활을 꼼꼼히 챙기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 남편의 생활은 회의와 잦은 출장 업무로 운동은커녕 규칙적인 생활조차도 못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물 한 컵 챙겨 마실 정신적인 여유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어야 했던 변비가 대장암의 주요 원인이었고 병증이었다는 것을 발병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치아가 좋지 않아 통곡물이며 채소들을 즐겨 먹지 않았던 것도 그 병의 오래된 이유였습니다. 아직 젊고, 건강하다고 자부하면서 작은 식습관, 생활 습관에 주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속담처럼 마치 외양간에 작은 못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암을 발견하고 수술과 치료, 회복기, 마음 졸이는 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치고 ‘건강’이라는 소를 다시 들였습니다.
   건강이라는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친 격이지만 암 수술 후에 생활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식탁의 변화입니다. 소화기 계통의 암이다 보니 먹는 것이 몸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대로 된 식탁이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가장 중요한 약이라는 것을 투병과 회복 과정에서 큰 교훈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물론 전에도 육식을 즐기지 않았지만, 제대로 된 채식 식탁을 꾸리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먹거리에 더 신경을 많이 쓰고 건강하게 먹기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채식하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건강 식탁을 꾸리기 위한 비결이랄까요? 단순하면서도 중요한 것이지만 미처 챙기지 못하고 살았던 것들이기도 하고요.

❶ 섬유질과 영양 면에서 떨어지는 흰쌀, 흰 밀가루, 흰 설탕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그 첫 번째입니다. 흰쌀 대신에 현미 잡곡과 통곡으로, 표백 밀가루를 대신해서 통밀가루와 메밀가루, 도토리가루 등을 사용하고 설탕을 대신해서 꿀과 과일즙을 사용합니다.

❷ 남편이 아프고 나서부터 주방에서 식용유의 사용이 현저히 줄었다는 것도 큰 변화입니다. 기름이 주는 고소함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튀기거나 볶는 요리를 줄이고 찌거나 굽는 방법으로 바꾸었습니다. 기름을 사용해야 할 때는 건강한 기름을 최소한으로 사용합니다. 건강식 오븐 요리와 비건 요리를 배우고자 미국 ‘와일드우드’라는 요양원 주방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며 배운 것이 건강 조리법과 고기와 우유를 대체할 아이디어를 얻는 데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❸ 아픈 남편의 식사를 챙기면서 가공식품의 식품 첨가물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종류의 식품 첨가물이 우리가 먹는 식품에 포함된다는 사실은 그다지 새롭거나 놀랄 만한 일이 아니지요. 편리하다는 이유로, 맛있다는 이유로 쉽게 사용하던 가공식품 사용을 최소화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번거롭지만 자연 식자재를 사용했습니다.

❹ 우리 건강에 지나친 소금 사용의 유해함은 논할 이유가 없을 만큼 중요한 사항입니다. 김치를 빼고는 한국인의 식탁을 논할 수 없을 텐데요, 김치 대신 단순하고 저염의 드레싱을 곁들인 다양하고 먹음직스러운 샐러드가 식탁의 주인공이 된 것도 큰 변화입니다.

❺ 조리 과정을 아주 단순하게 바꾸는 것은 몇 가지의 유익이 있습니다. 먼저 조리 시간을 줄여 줍니다. 최소한의 양념, 소금과 마늘 정도의 최소한의 양념으로 단순한 조리 과정을 거치면 재료 본래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양과 건강 면에서 꼭 챙겨야 하는 것이 단순하게 조리하는 것입니다.

❻ 입을 즐겁게 해 주는 익숙한 각종 조미료와 소스들을 대신하여 천연 소스와 천연 양념들을 사용합니다. 토마토 캔닝 주스, 맛간장을 만들어 사용하고, 레몬즙, 사과즙, 양파즙, 여러 견과 가루와 버섯 가루, 기본 국물로 야채수를 사용합니다. 야채수는 그때그때 만들기가 번거롭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양을 우려 병조림으로 보관하여 장기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❼ 예전에는 마트에 가면 1+1이나, 동일 식품 중에서 저렴한 식품들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먹거리를 고민하다 보니 단가가 조금 비싸더라도 유기농 코너에서 식품을 사서 씁니다. 텃밭이 있어 건강한 먹거리를 직접 유기농으로 길러 먹을 수 있다면 더 큰 행운일 것입니다.

이렇게 몇 가지 원칙을 만들어 하나씩 개선해 나가다 보니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던 건강한 채식 먹거리에 대한 노하우라는 것이 나름 생기게 되었습니다. 잘 먹어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건강함을 위한 원칙을 지키는 것과 타협의 차이가 주는 결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끔은 안일함에 정해 놓은 원칙들이 느슨해지기도 하지만 잘 먹어야 잘살 수 있고 건강하게 잘살아야 육체적·정신적·영적인 면을 모두 아우르는 건강함이 완성되며, 비로소 먹고 사는 일에서 자유로워지고 삶의 질과 방향이 온전히 전환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잘사는 길의 첫 시작은 분명 먹는 법의 변화에서 오는 것임을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쳐 본 경험자로 건강한 ‘제대로 채식’을 하는 것이야말로 소 잃기 전 외양간을 보수하는 현명함입니다. 저에게 있어 여전히 고민하는 잘 먹는 법, 건강하게 먹는 법에 관한 연구는 우리 가족을 다시 일어서게 하고 소소한 식탁의 행복을 가져다준 즐거운 일상입니다.

박숙자
SDA 야당 킨더레스트 원장

가정과 건강 1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