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실명 ‘녹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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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손상된 시신경은 다시 되돌릴 수 없지만 초기에 진단하고, 의사와의 신뢰 속에 정기적으로 상태를 점검하며 병의 진행을 늦추고자 하는 노력을 이어 가면 실명을 예방할 수 있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불편한 증상이 없으면 안과 검진 및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하지만 최근에는 건강 검진 항목에 안저 검사가 포함된 경우가 많아서 안과적 이상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안과 진료를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필자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어 안과 검진을 권유하였고, 여러 가지 다양한 안과 검사 후에 녹내장 중기 진단을 하고 녹내장 안약을 처방하며 경과를 관찰 중이다. 필자의 주변 지인들 중에도 녹내장 환자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소리 없는 실명을 부르는 질환으로 알려진 녹내장은 특이 증상이 거의 없어 위험한 단계까지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녹내장을 방치하면 실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무엇보다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야가 좁아지다가 실명에 이르는 녹내장 환자가 매년 10%씩 증가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한 2017년 우리나라 실명 인구는 약 70만 명이고, 그중 약 38%가 녹내장이 원인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녹내장에 대한 정보는 많이 부족한 상황이며, 한 해 동안 치료를 받은 녹내장 환자 수는 전체 환자의 3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70%는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80~90% 이상 손상될 때까지 증상을 못 느끼는경우 많아
녹내장은 시신경이 점차 손상되는 질환으로 다양한 원인에 의해 신경이 점점 약해지면서 시야가 좁아지는 질환이다. 대표적인 위험 요인은 높은 안압(눈의 압력)이지만, 안압이 정상 범위라도 시신경이 상대적으로 약하면 녹내장이 생길 수 있다.
이외에 고령(40세 이상), 심한 근시 또는 원시, 가족력 등도 위험 요인이며, 당뇨·고혈압·고지혈증 등의 전신 질환, 포도막염·백내장 등의 여러 다른 안과 질환이나 염증 질환, 장기간 스테로이드 약물 사용으로 인해 녹내장이 생길 수도 있다. 특히 가족력이 있는 경우 부모가 녹내장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녹내장 발병 확률이 2~3배 높고, 형제가 녹내장 환자이면 5~7배 높다.

   녹내장은 크게 급성과 만성으로 나눌 수 있다. 급성 녹내장의 경우, 갑작스런 안압 상승으로 인해 구역질, 구토, 두통, 안통, 시력 저하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녹내장은 만성으로 서서히 진행하고 중심 시력보다 주변 시력을 담당하는 시신경이 먼저 손상되기 때문에 병의 초기 및 중기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위험하다. 녹내장을 ‘소리 없는 실명’이라 부르는 이유다. 말기에는 터널 속에서 밖을 보듯 주변 시야가 좁아져 중심부만 보이게 되는데 환자가 이런 정도의 시야 손상을 느낄 정도면 이미 시신경이 많이 손상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녹내장의 진단
안압은 녹내장 진단에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안압이 높지 않은 녹내장(정상 안압 녹내장)의 분포가 상대적으로 높다. 따라서 간단한 검진을 통해 안압이 정상 범위로 나왔더라도 녹내장에 대해 안전하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녹내장은 안압 측정, 세극 현미경 검사, 시야 검사, 빛간섭단층촬영검사(OCT) 등 다양한 장비와 검사를 통해 진단하며, 녹내장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소견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을 느낄 때는 손상 심각, 정기 검진만이 최선
녹내장의 예방은 정기적인 안과 검진이 최선이다. 특히 40대 이상은 녹내장 고위험군으로 연 1회 이상 정기적인 검진이 필수다. 젊은 층이라도 녹내장 발병 위험 인자가 있으면 특별한 증상이 없어도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시신경 손상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장비들이 개발되고 있으므로 조기에 발견 후 지속적인 치료로 녹내장에 따른 실명 확률을 낮출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미 손상된 시신경은 회복이 어렵다. 따라서 손상되지 않은 시신경을 보전하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다. 치료는 안약, 약물 복용, 레이저 치료, 수술 등의 방법으로 안압을 조절하여 시신경의 장애를 최소화한다. 주로 약물 치료를 가장 많이 한다.

   약물 치료에 부작용이 있거나 약물만으로 안압을 충분히 떨어뜨릴 수 없는 경우엔 레이저 치료나 수술을 하게 된다. 최근에는 레이저의 발달로 녹내장 수술의 많은 부분을 레이저로 대치하여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그러나 100% 완치되는 것은 아니며 수술 후에도 안압 재상승 가능성이 있어 지속적으로 정기 검진이 필요하다.

   정기 검진 이외에 녹내장 예방 생활 수칙으로는 금주, 금연, 카페인 음료 절제, 당뇨·고혈압·고지혈증 관리, 물구나무서기와 같이 머리로 피가 몰리는 자세 피하기, 변비 및 윗몸 일으키기와 같이 복압을 증가시키는 자세 피하기 등이다. 또 어두운 곳에서 TV 시청과 독서, 컴퓨터 사용을 오랫동안 하지 말아야 하며, 엎드린 자세로 장기간 스마트폰 사용은 피해야 한다. 한 번에 물을 너무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 좋고, 넥타이 느슨하게 매기 등도 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녹내장으로부터 눈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꾸준한 치료
치료를 받더라고 좋아지지 않는 녹내장이라는 질환은 환자의 인내를 요구한다. 약물 치료 등의 녹내장 치료를 시작하면 오히려 눈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어 스스로 치료를 중단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 조기 검진을 통해서 녹내장 치료를 적절하게 시작하였더라도 중간에 치료를 중단했다가 이후 시간이 흘러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녹내장이 많이 진행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한 번 손상된 시신경은 다시 되돌릴 수 없지만 초기에 진단하고, 의사와의 신뢰 속에 정기적으로 상태를 점검하며 병의 진행을 늦추고자 하는 노력을 이어 가면 실명을 예방할 수 있다. 녹내장 진단을 받는다면, 증상이 심각하지 않을 때 꾸준히 치료를 받는 것이 녹내장으로부터 눈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하고 꾸준히 치료를 받길 권한다.

김인혁
스카이서울안과 대표 원장

가정과 건강 7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