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작은 그러나 제일 감동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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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 교수를 비롯한 유럽한인교회 봉사대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난민이 수용돼 있는 가정형 쉘터를 찾아 음악회를 열었다.
감미로운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고, 남성 성악가의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적막하던 쉘터(임시보호소)에 오랜만에 활기가 넘쳤다. 긴장과 피곤함에 절어있던 사람들의 표정에 일순 미소가 피어오르고, 불안해하던 눈빛에 생기가 감돌았다. 입가에는 웃음이, 눈가에는 이슬이 그렁그렁 맺혔다.

이번 아드라코리아(사무총장 김익현)의 우크라이나 난민 봉사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8명의 재림청년과 지도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위로음악회, 구호물품 포장 및 운반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때로는 자신의 달란트로 먹먹한 감동을 선사했고, 때로는 손과 발을 아끼지 않는 헌신으로 힘을 보탰다.

독일에서는 10시간을 훌쩍 넘겨, 상대적으로 가깝다는 오스트리아에서도 8시간을 꼬박 달려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이들은 불과 사흘 전, 유럽연합야영집회를 마친 터라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지만, 기꺼이 폴란드의 제슈프로 자동차 핸들을 돌렸다.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으로 간다고 하자 위험하다며 한사코 만류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의지를 꺾지 않았다. 오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움직였다.

지난달 23일 저녁 시내의 한 대형 쇼핑센터에 마련된 임시보호소에서 진행한 음악회에는 100여 명의 난민이 자리를 같이해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누렸다. 대원들은 40분 동안 ‘사랑의 인사’ ‘참 아름다워라’ ‘자비로운 주 하나님’ 등 성가와 클래식곡을 선사했다. 독창, 바이올린 독주, 피아노 독주 등 레퍼토리도 다양하게 꾸몄다.

귀에 익은 음악이 들려오자 ‘관객’들의 표정이 이내 환하게 밝아졌다. 고개를 끄덕이며 박자를 맞추거나 한쪽 손을 턱에 괴고 무대를 응시하기도 했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남기는 일은 기본이었다. 어린아이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했다. 임산부와 장애인의 즐거워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졌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그러나 제일 감동적인…

바리톤 김광일 교수가 자신들의 언어로 국가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를 부르자 분위기는 최고조에 다다랐다. 격정적 감정에 젖어 눈시울을 붉히는 이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몇몇은 마치 국기게양을 하듯 가슴에 손을 얹고 따라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환호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객석은 “브라보!”를 연발했다. 봉사단이 장비를 챙기고 건물을 나설 때까지 복도 끝에 서서 감사인사를 건넸다. 진심어린 표정이 이들의 마음을 대신 말해줬다.

앞서 이날 오후와 전날에는 가정형 쉘터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특히 제슈프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작은 마을 드라커비스카즈의 한 농가에서 진행한 음악회는 한동안 잊히지 않을 만큼 깊은 여운을 남겼다. 재림교인 난민들을 대상으로 꾸민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관객이 채 20명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음악회였지만, 세상에서 제일 감동적인 콘서트였다.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자비로운 주 하나님’ 등 재림교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곡으로 꾸몄다. 김광일 교수가 난민소녀를 즉석에서 초청해 함께 부른 ‘You Raise Me Up’은 지켜보는 사람도 절로 눈물이 흐를 만큼 울림이 컸다. 지그시 눈을 감고 무언가 깊은 상념에 빠진 듯한 얼굴도 보였고,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듯한 이도 있었다. 준비한 순서가 모두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할 정도였다.

난민 위로음악회는 이번 봉사일정 중 대원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이를 위해 때로는 식사도 거른 채 일정을 소화했고, 피곤한 몸에도 밤 11시가 넘도록 연습하는 등 정성을 들였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어서다. 그래서인지 음악은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서로를 향한 마음이 통하는 길이었고, 하늘과 연결되는 메시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그러나 제일 감동적인…

자신의 전공을 살린 재능기부뿐 아니라 직접 몸을 움직여 봉사하기도 했다. 이들은 도착 이튿날인 22일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인 라듬노의 한 물류창고에서 아드라인터네셔널과 함께 구호물품의 포장 및 운반 작업을 했다. 라듬노는 국경과 가깝고, 도로 등 제반시설이 잘 갖춰진 도시.

70인승 대형 버스 2대에 통조림, 파스타, 시리얼 등 먹을거리는 물론 매트리스, 유아용품, 위생용품 등 각종 생필품을 가득 실었다. 구호물품은 그 주 일요일인 24일 우크라이나의 서부 거점도시 리비우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현지 아드라를 통해 각 지역으로 배분되고, 돌아오는 차량편에 난민을 태워 나온다. 이렇게 일주일에 3~4차례 반복한다고.

아드라폴란드 직원 카시아 카트리나 씨는 “이 활동은 전쟁이 시작된 2월 말부터 진행했다. 인도주의적 구호물품을 실어나르는 차량은 국경을 오가는 데 문제가 없다”며 “아드라처럼 우크라이나에 직접 들어가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단체는 예닐곱 곳 정도로 그리 많지 않다. 오늘 한국인 봉사자들이 오셔서 평소보다 작업이 일찍 마무리됐다”고 고마워했다.

아드라폴란드 측은 “지금까지 아드라코리아에서 많은 지원을 해 주셔서 크게 감사하고 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을 부탁한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식료품이 부족해 굶거나 전력공급 중단으로 난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도로가 끊겨 기본적인 생필품 조차 제때 전달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그러나 제일 감동적인…
무거운 물건을 나르느라 구슬땀을 흘린 대원들은 “물품이 많아 그만큼 자원봉사자도 많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인력이 없어 깜짝 놀랐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서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이 크다. 모쪼록 이 물품들이 우크라이나에 가서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들은 오는 길에 유럽연합야영집회에서 특별모금한 3600유로(약 5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해 더욱 뜻을 깊게 했다.

아드라코리아 김익현 사무총장은 “여러분은 오늘 평생 잊지 못할 매우 의미 있는 활동을 했다. 구호물품에 여러분의 사랑과 응원의 마음이 함께 담겼을 것으로 믿는다. 앞으로도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신실한 재림청년이 됐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그날 밤, TV에서는 이번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2000명을 넘어섰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 우크라이나 돕기 특별 모금계좌: 우리은행 1005-002-152773 (사)아드라코리아
– 후원영수증을 원하시는 분이나 기타 자세한 사항은 아드라코리아 사무국(☎ 02-3299-5258)으로 문의하시면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