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고리] 서중한 김종근 목사 육종암 ‘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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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외국인선교교회에서 사역하는 김종근 목사가 육종암으로 투병하고 있어 성도들의 기도와 도움이 절실하다.
손님이 왔다며 그가 아픈 몸을 이끌고 거실로 나왔다. 얼굴과 걸음걸이에서 병세가 확연해 보였다. 앉아 있기도 힘들어 침대에 누워 인터뷰를 진행했다. 배가 임산부처럼 불룩 나오고, 다리는 터질 듯 부어 있었다. 상반신은 근육 대신 뼈만 앙상했다. 한때 80Kg 가깝던 몸무게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다”며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재림교회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다며 눈물을 감췄다.    

서중한합회 포천 가산외국인선교교회에서 사역하는 김종근 목사가 육종암으로 투병하고 있어 성도들의 기도와 도움이 절실하다. 육종암은 뼈나 근육, 지방 등의 신체 조직에 발생하는 악성종양. 활동량이 많은 청장년층에서 많이 발병하는 희귀암 중 하나다. 현재 병세가 골수까지 전이된 상황이다. 최근까지 요양원과 쉼터, 병원 등에서 치료했으나 지금은 자택에서 자체 요양 중이다.

그가 처음 몸에 이상을 느낀 건 5년 전. 지방육종암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당초 4시간이면 될 거라던 수술은 무려 16시간이 걸렸다. 발병 지점이 안 좋았다. 결장과 직장 사이의 후복막 부위에 자리한 암덩이를 잘라내야 했다. 그러나 개복 후 시간이 너무 오래 경과돼 완전히 처치하지 못한 채 봉합했다. 병원에서는 “장기의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언제든 재발 가능성이 있다”며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다행히 이후로 얼마 동안은 예전의 건강을 되찾는 듯했다. 순수 채식과 운동을 하며 꾸준히 관리했다. 하지만 그 사이 몸속에서는 암세포가 계속 자라고 있었나 보다. 올 초부터 약간씩 통증이 시작되더니 3월부터는 골반치골이 눈에 띌 정도로 올라왔다. 부랴부랴 병원을 찾았다. 검사결과 2차 재발 판정이 나왔다. 이미 뼈까지 전이됐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얼마 전에는 서울의 한 대형 종합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했다. 하지만 의료진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행속도가 무척 빠르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천연치료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쩌면 그에게는 마지막 희망인 셈이다.
  
■ 아내도 관상내피암 판정으로 치료
게다가 그를 간호해야 할 아내마저 몇 해 전, 관상내피암을 앓은 전력이 있다. 2016년 초기 단계라는 진단을 받고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교회와 가정을 비울 수 없어 수술을 하진 않았다. 아직까지 특별한 재발 증상은 없지만,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자신도 어려운 처지면서 남편을 간병하느라 더욱 힘이 든다. 하지만, 믿음으로 꿋꿋하게 견뎌내고 있다.  

그런 아내를 볼 때마다 김 목사의 눈가엔 이슬이 맺힌다. “저 때문에 고생이 많죠”라며 말끝을 흐리는 그의 목소리에 미안함과 안타까움, 고마움과 회한 등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는 당장 치료비 마련이 어려운 형편이다. 개인보험을 들었지만, 이마저도 과거 병력 때문에 적용을 받을 수 없다. 교회건축을 위해 퇴직금까지 당겨쓰는 바람에 여유가 없다.

김종근 목사는 사실 개신교회에서 목회하다 진리를 발견하고, 목회에 뛰어든 개혁목사다. 선천적으로 지병을 안고 태어난 딸의 건강을 관리하다 재림교회에 다니던 친인척을 통해 한 재림교인으로부터 <기본교리>와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더라>를 받으면서 재림교회를 알게 됐다. 충남 천안시 신부동에 교회를 개척하고, 대학원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하던 때다.

“성경을 누구보다 많이 읽고, 안다고 자신했죠. 그런데 재림교회의 <기본교리>를 보면서 ‘중생’과 ‘성화’ ‘구원의 경험’ 등 너무나 명쾌하고 완벽한 진리기별을 깨달았어요. 신계훈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안식일’과 기독교 역사를 확실하게 이해했습니다. 그제야 빛을 발견한 듯 했어요. 재림교회야말로 하나님께서 인증한 교단이라는 확신이 섰습니다”

그는 스스로 개혁을 결심했다. 영혼불멸설 등 풀리지 않던 문제가 해결되자 ‘이젠 됐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 순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미련 없이 소속 교단을 탈퇴하고, 침례를 받았다. 1996년의 일이다. 그 뒤 문서전도 활동을 하다 2002년 삼육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2005년 재림교회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다. 의정부 호원동교회, 전곡전원교회, 부천중앙교회 등에서 교회와 성도들을 섬겼다.  

■ 진리 깨닫고 개혁 … 2005년 재림교회 목회자의 길로
현재의 교회로 임지를 옮긴 건 2012년이다. 거의 문을 닫았던 교회를 가정예배소부터 시작해 재개척했다. 교회가 있는 포천시 가산면은 외국인노동자가 많이 사는 지역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근로자가 1만 명이 넘는다. 이곳이 ‘특수 선교지’라고 생각하고, 외국인노동자 대상 선교에 힘을 쏟았다. 네팔, 러시아, 방글라데시 등 주로 무슬림국가에 온 사람들이 그의 친구이자 구도자였다. 한 해 수십 명이 침례를 받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왔다.

2015년. 합회는 이곳에 교회를 증축했다. 1층에는 지역아동센터를 세워 소외계층 어린이를 위한 봉사에도 손길을 뻗었다. 2층의 교회에는 매주 안식일마다 30여명의 외국인노동자가 찾아와 성경을 배웠다. 그렇게 의욕적으로 일하던 그 해에 1차 발병이 났다. 하지만 수술 후 곧바로 목회에 복귀할 만큼 열정이 넘쳤다.

최근 2년 동안은 법무부 주관 이민자사회통합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글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개인 시간을 따로 떼어 직접 수업을 하고, 재림교회 <기본교리>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했다. 그의 도움으로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키며, 침례를 받은 사람이 무려 200명이 넘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기승을 부리던 올 상반기까지도 가산외국인선교교회에는 죄사함을 입으려는 영혼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졌다.

그는 와병 중에도 외국인노동자들을 먼저 떠올리며 가슴 아파했다. 자신의 안위와 건강을 돌보기보다 세 천사의 기별을 모른 채 소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더 안타까워했다.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이 주변에 아직도 너무 많다며 늘 영혼에 대한 부담이 마음을 짓누른다고 했다. 그들이 여기에서 진리를 발견해 본국으로 돌아가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며 “사역을 생각하면 조바심이 나고, 무슬림 친구들을 생각하면 목이 멘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육체적으로는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려 한다. 희망과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겠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시편 50편15절 말씀을 암송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재림마을>과 <재림신문> <아드라코리아>는 김종근 목사 돕기 ‘사랑의 고리를 이어갑니다’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진리를 찾아 개혁하고, 복음전도를 위해 헌신하며 희생했던 그에게 성도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을 보내주십시오. 그가 다시 힘 있게 선교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 김종근 목사를 위한 ‘사랑의 고리’ 전용 계좌
우리은행 1005-502-054487(예금주: (사)아드라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