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책 읽는 부모가 되어라, 이어령가(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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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일 퍼내 쓸 수 있는 상상력의 우물을 가지고 있다면, 또 언어의 저울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의 목소리로서의 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습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동서고금에 막히는 게 없을’ 정도로 박학다식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현존하는 독서광으로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꼽힐 정도다. 서울대 국문과 재학 시절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고 한다. 20대부터 술을 마시지 않고 그 시간에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그에게 붙어 있는 ‘언어의 마술사’라는 별명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독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어령 박사는 “나는 글자를 알기 전에 먼저 책을 알았다. 어머니는 내가 잠들기 전 늘 머리맡에서 책을 읽고 계셨고 어느 책들을 소리 내어 읽어 주시기도 했다.”라고 말한다. 이어령 박사는 어머니를 떠올리면 책이 떠오르고 책 읽는 소리가 묻어 나온다고 말한다. 그 어머니 덕분에 이 박사는 ‘책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감기에 걸려 신열이 높아지는 그런 시간에도 어머니는 내게 소설책을 읽어 주셨습니다. 겨울에는 지붕 위를 지나가는 밤바람 소리를 들으며, 여름에는 장맛비 소리를 들으면서 어머니는 나를 책의 세계, 상상의 세계로 데려다주셨습니다.”
   이어령은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그 환상의 책은 60년이 지난 지금 나의 서재에 수만 권의 책을 쌓게 했고, 수십 권의 책을 쓰게 했다.”라고 고백한다. “내가 매일 퍼내 쓸 수 있는 상상력의 우물을 가지고 있다면, 또 언어의 저울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의 목소리로서의 책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머니는 내 환상의 도서관이었으며, 최초의 시요,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었습니다.”

   이어령 박사가 ‘동서고금에 막히는 게 없을’ 정도로 박학다식하며 ‘언어의 천재’, ‘현존하는 최고의 문장가’로 통하는 것은 바로 독서 덕분이었다. 또한 이는 어린 시절부터 습관이 된 독서 때문이고 그것은 오로지 어머니 덕분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철가면』, 『몬테크리스토 백작』, 『천로역정』 등을 비롯한 고전을 아이 옆에서 읽으셨다고 한다.
   “우리는 3세 이전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3세 이전은 어머니에게 들은 거지요. 또 어머니는 자기가 관심 있는 것을 기억해 들려줍니다.” 이어령은 돌잡이에서 붓과 천자문을 잡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아이에게 틈만 나면 들려주었다. 이어령은 그 때문인지 법관이나 권력에 탐하지 않고 문학가의 길을 걸었다고 말한다. 이어령은 “그런 어머니를 통한 책의 기억이 나중에 귀환해 나의 책이 됐다.”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독서 습관 때문인지 훗날 독서광이 된 그는 문학 평론가, 소설가, 극작가, 언론인, 교수, 문화부 장관 등 문학의 모든 장르를 석권하고도 모자라 각종 분야에서까지 탁월한 천재성을 발휘해 왔다. 그는 88올림픽 개막식 때 ‘굴렁쇠 굴리는 아이’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누구보다 기발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랑하는 그의 모든 에너지는 바로 독서에서 기인한 것이다.

   에디슨의 명언처럼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이어령을 있게 한 것은 어쩌면 99%가 책 읽는 어머니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이어령은 나아가 “태교는 아이에게 뭘 가르치는 게 아닌, 엄마가 뭘 배우냐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자녀에게 무슨 책을 읽게 하는 것에 앞서 부모가 먼저 책을 읽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는 “독서도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부모가 문제”라고 단호하게 강조한다. 부모가 집 안에 작은 서재라도 만들어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면 자녀들은 절로 책을 가까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어령은 부모는 ‘사랑의 면허증’을 가지고 자녀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면허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 아이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주는 어머니는 다름 아닌 ‘사랑의 면허증’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면허증만이 아이를 지식 정보 사회에서 창조적인 추리력과 순발력으로 시대를 앞서나가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이어령은 강조한다. 그러나 그 사랑의 면허증은 따뜻한 사랑과 함께 냉정한 사랑이어야 자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어머니가 읽어 준 동화 한편과 어머니가 불러 준 동요 한 곡조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고 어른이 된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삭막할까요. 그런 가슴으로는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도 없으며 미래 사회의 리더로 우뚝 설 수 없을 것입니다.”

   이어령은 창조의 지식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나이에 비해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 활용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다. 서재 책상에는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7대의 컴퓨터가 있을 만큼 컴퓨터 활용은 전문가 수준이다. 그는 부모 또한 시대와 호흡하고 나아가 자녀 또한 시대를 앞서가는 인재로 키우기 위해서는 컴퓨터 활용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는 한석봉의 어머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어둠 속에서도 가래떡을 가지런히 써는, 숙련된 솜씨를 자랑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런 획일적인 반복 작업은 기계나 컴퓨터가 모두 대신해 주잖아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은 바로 로봇과 컴퓨터가 못하는 일들입니다. 생각하고, 느끼는 일, 그리하여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풍부한 상상력을 갖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어령은 8형제 중 5남으로 2남 1녀를 두었다. 자녀는 모두 미국 변호사, 영화감독, 교수 등으로 키워 냈다. 이어령 박사는 현재 암 투병 중인데 아직도 펜을 놓지 않고 있다. 수많은 책으로 둘러싸인 그의 서재 ‘영인문학관’은 이른바 ‘만권당’의 전형인데 그의 사후에 공개될 예정이다. 글을 읽을 줄 모를 때부터 책을 읽어 준 그의 어머니의 영향은 이 도서관에 화룡점정이 찍히고 있는 셈이다.

최효찬
자녀경영연구소 소장,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 교양 도서, 2008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 학술 도서 수상, 저서 『세계 명문가의 독서 교육』, 『현대 명문가의 자녀 교육』, 『세상을 뒤흔든 위인들의 좋은 습관』 외 다수

가정과 건강 4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