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임순 집사 “힘들어도 하나님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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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사이 보금자리와 생활터전이 모두 침수된 서임순 집사는 “힘들어도 하나님 바라보며 다시 일어서겠다”고 말했다.
꼭 일주일 전이었다. 지리산 자락의 고즈넉한 마을은 하룻밤 사이 퍼부은 ‘물폭탄’에 처참한 피해지역이 되고 말았다. 동네를 끼고 흐르는 섬진강 지류 하천이 범람하며 마을은 순식간에 초토화됐다. 서임순 집사(구례교회)의 생활터전인 1600여 평 감나무 농장과 40년을 살아온 보금자리도 모두 물에 잠겼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옥삼마을. 인근에 수달관찰대가 있을 정도로 청정지역이다. 하지만 마을로 향하는 진입로는 폭우에 쓸려 곳곳이 움푹움푹 패였고, 아름드리나무와 전봇대는 힘없이 쓰러져 길을 막고 있다. 집집마다 문 앞에는 쓰레기가 잔뜩 쌓였고, 농작물이 쑥쑥 자라야 할 논밭은 뻘로 변했다.

엿가락처럼 휘어진 비닐하우스는 뒤집어 쓴 흙탕물이 말라붙으며 바람이 불때마다 먼지만 풀풀 날린다. 내리쬐는 뙤약볕을 등지고 복구에 한창이지만, 피해규모가 워낙 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하는 황폐화된 모습이 ‘참상’이란 말을 절로 떠올리게 했다.  

서임순 집사 역시 마찬가지다. 동구 밖 어귀로 흐르는 토지천이 넘치며 서 집사의 집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그는 이 마을에서 40년을 살았다. 1974년 당시 광양군 다압면의 관동교회에 다니던 남편 박도신 장로를 따라 구례로 이사 오면서 가정예배소로 시작해 재림기별의 씨앗을 뿌린 이들 가족이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악몽을 꾸는 거 같아요. 강물이 얼마나 세게 넘어오는지, 밤 11시가 조금 지나니까 이장님이 빨리 대피하라고 전화를 하데요. 그래서 겨우 몸만 빠져나왔죠. 순식간에 물이 불어 금세 허리까지 차올랐어요.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르포 – 서임순 집사 “힘들어도 하나님 바라보며…”

르포 – 서임순 집사 “힘들어도 하나님 바라보며…”

그 길로 인근 신기마을에 사는 전기로 장로 집으로 부랴부랴 피신했다. 그는 요즘도 전 장로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수도와 전기가 끊겨 집에 있을 수도 없는 처지다. 마당에는 지금도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다. 물에 잠긴 가전제품은 모두 고장 났고, 가재도구는 어느 것 하나 쓸 수 없게 됐다. 그나마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한 트럭 갖다 버린 게 이 정도다.

한 해 농사는 쑥대밭이 돼 버렸다. 흙탕물을 뒤집어쓴 감나무는 여기가 농장이었는지, 황무지였는지 모를 정도로 아직도 뿌연 먼지가 뒤엉켜 있고, 채 영글지 않은 감은 땅바닥에 떨어져 썩어가고 있다. 그나마 나무뿌리가 상하지 않았으면 다행인데,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자칫 뿌리가 해를 입었으면 앞으로의 생계까지 타격이 불가피하다. 당장 내년까지는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나뭇잎의 먼지를 툭툭 털어내던 서 집사는 “어쩔 수 있나. 지켜봐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불과 200m 남짓 떨어진 대형 축사가 무너지며 피해가 더 커졌다. 빗물을 타고 떠내려 온 가축분뇨와 폐기물이 온 집안과 농장을 휩쓸었다. 집안에는 아직도 마르지 않은 물기와 습기가 가득하다. 발을 디딜 때마다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나마 많이 나아진 거라는데, 조금만 있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도저히 사람이 살던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거 같다. 차라리 다 헐고 새로 짓는 게 더 빠르고 낫겠다 싶을 정도다.  

물살에 떠내려간 5톤 무게의 저온저장고를 옮기는 것도 문제다. 쌀이며, 채소며 안에 넣어두었던 먹거리는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도 없다. 급한 대로 수리를 했지만, 신통치 않아 걱정이다. 5톤 규모 지게차를 빌려 제자리에 갖다 놔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일단 집수리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르포 – 서임순 집사 “힘들어도 하나님 바라보며…”
상황이 이런데도 보상은 막막하다. 서 집사는 “감농사로만 한 해 평균 30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얻었는데, 겨우 200만 원 정도 준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큰아들과 손자가 며칠 전, 교통사고까지 당했다. 홍수가 나자 안동에 사는 아들 집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빗길에 차가 미끄러지며 사고가 났다. 서 집사는 다른 차에 타고 있어 화를 면할 수 있었지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큰아들은 타박상을 입고, 손자는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당분간은 수술도 할 수 없어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 병원에 아들과 손자를 입원시키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형편이 이런데도 서 집사는 의연하다.

“나만 당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니까요. 처음에는 너무 황망해서 잠도 안 왔는데, 이제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예기치 않은 시련과 고난을 겪지만, 그래도 그 와중에 저의 목숨을 지켜주시고 우리 귀한 자식들을 천사의 팔로 보호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빙글빙글 돌 정도로 위험한 사고였는데, 그만하길 천만다행 아닙니까?

힘은 들더라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의지하며 다시 일어서야죠. 다만 부탁드리기는, 하루아침에 큰 피해를 입고 실의에 빠진 우리 수재민이 떠오르면 재림성도들께서 잠시 기도해 주시고, 위로와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해보는 데까지는 해보려 한다며 다시 흙먼지가 범벅된 가재도구를 정리했다. 언제쯤 예전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믿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려 한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마른 바람이 매캐한 먼지와 함께 다시 감나무 잎사귀 사이로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