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 일요일 장년 교과] “나를 따라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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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예언적으로 기록한다. 이는 부르시는 예수님의 능력과 제자들의 따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마가복음 1:16~20절을 읽어 보라.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신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마가복음 1장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의 기록하지 않지만, 이후에 ‘베드로’라고 불리게 될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 이 두 어부에게 하신 말씀은 마가복음 1:17에 기록되어 있다. 두 사람은 갈릴리 호수가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다.
배나 다른 어업 도구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두 사람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하게 한다. 마가복음 1:19, 20에서 아버지와 하인들과 함께 배를 타고 있는 것으로 기록된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와 안드레보다 재정적으로 더 부유한 것처럼 보인다. 누가는 베드로가 배를 가지고 있었으며 사실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와 안드레의 동역자라고 알려준다(눅 5:1~11). 그러나 마가복음은 그들의 차이를 표현함으로 예수께서 빈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으시는 것을 말하기 위해 두 형제 집단을 대조적으로 묘사하였을 수 있다.
이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부르심은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예언적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라, 즉 제자가 되라고 부르신다. 그리고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한다면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사람들이 왜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막 1:16~20) 예수님을 따랐는지 깊이 생각해 보라.

요한복음을 통해 우리는 이 장면을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요 1:29~42). 이 형제들은 침례 요한의 추종자들이었고,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라는 요한의 선포를 들었던 것 같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났고 요단강 근처에서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어서) 따라서 그들이 예수님의 사역의 부름을 받아들인 것은 우발적이거나 도피가 아니었다. 그들은 제자가 되는 것을 충분히 생각했었다.
그러면 마가는 왜 이런 내용을 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아마도 예수의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예수께서 부르실 때, 방금까지 어부였던 사람들이 기꺼이 응답함으로 그들의 삶과 그들의 세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교훈> 마가복음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예언적으로 기록한다. 이는 부르시는 예수님의 능력과 제자들의 따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묵상> 당신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라는 요청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적용> 그대는 무엇을 포기하기로 선택하였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그대에게 어떤 의미인지 묵상해 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참 선교사에 대한 정의 – “마가복음 8:34에 언급된 그대로 그리스도를 좇는다는 것은 하나의 구실, 하나의 어리석은 흉내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당신께서 참으신 것처럼 참고, 당신께서 고통받으신 것처럼 고통을 받고, 당신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하므로 당신의 발자취를 가깝게 따르기를 기대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추종자로 공언하는 자들이 자기희생의 정신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자 열렬하게 기다리고 계신다”(교회 증언 8권, 209).

<기도>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제자들의 모본을 닮기 원합니다. 주님을 따른다 하면서 주저하고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종을 용서해 주옵소서. 주님을 따르며 하늘 나라를 이 땅의 어떤 것보다도 소중히 여길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