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은 지옥에서 영원토록 불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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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악인은 지옥에서 영원토록 불타는가?

“저희는 영벌[영원한 형벌]에, 의인들은 영생[영원한 삶]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46).

이 본문은 “영원한”이라는 말을 두 번 사용하는데, 첫 번째는 악인의 형벌에 적용되고 두 번째는 의인의 영원한 삶을 가리킨다. “영생”이 끝없는 삶을 의미한다면 “영벌”은 끝없는 형벌을 의미하면 안 되는가?

양과 염소: 마태복음 25:46은 양과 염소의 비유 또는 이야기의 결론이다(마 25:31-46). 이 이야기는 주께서 “모든 민족”을1 뚜렷한 두 무리 곧 양과 염소로 나누는 재림의 때를 묘사하고 있다. 양은 주의 오른 편에 있고, 염소는 왼편에 있다. 이 이야기에서 두 번 양은 의인으로 밝혀진다(37, 46절). 그러나 염소는 구체적으로 신원이 밝혀지지 않지만 양과 대립되는 무리임이 분명하다. 양과 염소는 모두 예수님을 주로 부르며, 이들은 사실상 자신들에게 주신 주의 말씀에 상당히 비슷한 대답을 한다.
예수께서는 양에게 먼저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복 받은 자들이라고 부르고 창세로부터 그들을 위해 예비된 나라에 들어가라고 초청하신다. 그들이 그런 초청을 받은 이유는 그들이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보살핌으로써 그분을 섬겼기 때문이다. 반면 염소는 저주 받은 자라 불리고,2 정죄를 받아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는 말을 듣는다(41절). 염소에게 가혹한 심판을 내린 이유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인데, 예수께서는 그렇게 한 것이 그분을 돕고 섬기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하셨다.

삶에 대한 두 가지 태도: 예수께서 현세의 삶에 대한 매우 다른 두 가지 태도에 근거하여 매우 대조적인 두 가지 운명을 제시하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기의 시간과 자원을 들여 다른 이들을 축복하고 도운 자들은 기쁘고 복된 영원한 나라로 들어간다. 그러나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게을리 한 자들은 지극히 작은 자들의 필요를 돌아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무시한 사실임을 깨닫지 못했다.3 예수께서는 이들이 하나님께서 결코 사람들에게 주기를 의도하지 않으셨던 것 곧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영원한 형벌[영벌]: 그러면 염소에게 지워진 이 “영원한 형벌”은 무엇인가? 여기에 사용된 “형벌”이라는 용어는 신약에 자주 나오지 않는 헬라어 콜라시스인데, 여기 마태복음 25:46과 요한일서 4:18에만 나온다. 이것은 “전정하다”, “불구로 만들다”, “벌하다”, “응징하다” 등을 의미하는 어근에서 나온 단어다. 이는 기본적으로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님께 형벌을 받는다는 것은 잘림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악인이 전능자에게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개념은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다(창 6-9장; 겔 18장; 롬 1장; 히 10:29; 벧후 2:9; 계 20장). 이런 형벌의 가르침은 영원토록 계속되는 형벌의 개념만큼 문제가 되진 않는다. 따라서 “영원한 형벌”이라는 구절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영원한”이라는 단어이다.
여기에 사용된 “영원한”이라는 용어는 헬라어로 아이오니오스이다. 구약에서 이 단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올람이다. 이 단어들은 다 같이 “영원한, 영속되는” 또는 “일평생, 생명이 지속되는 한” 등을 의미하지만, 의미는 그것들이 수식하는 말에 달려있다. 출애굽기 21:6에서 자기 상전을 사랑하는 종이 그를 “영영히”(올람, “평생”) 섬길 것이라고 말해진다. 유다서 7절에서 소돔과 고모라가 영원한(아이오니오스) 불의 형벌을 받았다고 되어있다. 소돔과 고모라가 지금도 불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 불은 결정적이고 지속적인 결과를 냈다는 의미에서 영원한 것이지, 그 불이 지금도 타고 있고 영원히 탈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에서 아이오니오스라는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질문하게 된다. 마태는 “영원한”이라는 용어를 여섯 번 사용한다(18:8; 19:16, 29; 25:41, 46[두 번]). 이 용어는 세 번 “생명”이라는 말과 연관되고(“영원한 생명[영생]”), 세 번은 “불” 및 “형벌”과 연관된다. 영원한 생명은 의인을 위한 보상으로, 끝없이 사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악인은 “영원한 불
굣형벌을 받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타는 지옥에서 끝없이 사는 것을 연상한다.

“소돔의 죄인들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다(유 7절). 이 구절은 ‘영원한 불’의 정의를 내린다. 그것은 죄인을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파멸시킨 하나님의 불이다.” (Edward W. Fudge, The Fire That Consumes [Houston, TX: Providential Press, 1982], 287).

영원한 불: 그러나 “불”이라는 말을 마태가 사용한 예를 자세히 살펴보면 다른 관점이 암시돼 있다. 마태는 “불”(헬라어 퓌르)이라는 단어를 총 열 두 번 사용한다.4 이 용례의 거의 모두가 심판의 개념과 결부돼 있다. 특히 침례자 요한(마 3:10-12) 및 밀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예수(13:24-30, 36-43)께서 사용한  농사 은유는 의미 있다. 이 두 경우에도 선한 것과 악한 것 사이에 구분이 있다. 좋은 것은 보존되지만 악한 것은 불로 태워진다. “불사르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타카이오인데, “소멸시키다”, “태워버리다”를 의미한다. 겨(3:10-12)와 가라지(13:36-43)는 꺼지지 않는 불(3:12)로 태워진다. 영원히 남는 것은 겨가 아니다. 겨는 가연성이기 때문에 연소된다. 그러나 불은 영원한 결과를 냈다는 의미에서 영원하다(죽지 않는 구더기와 꺼지지 않는 불을 언급하는 막 9:42-50과 비교하라).5 이런 점에서 예수께서 악인이 아니라 불을 영원하다고 하신 점을 주목하는 것이 유익하다. 악인은 영원한 불에 소멸될 것이고(겨나 가라지처럼), 그 결과는 영원히 계속하여 형벌을 주는 것(eternal punishi!
ng)이 아니라 영원한 형벌(eternal punishment)이다.

불멸의 문제: 위의 결론은 의인이 첫째 부활에서 불멸을 입게 될 것이라는 사실(고전 15:50-54)로 지지된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영생]”은 끝없는 삶이 될 것이지만(계 21:4), 불멸을 입지 못하는 악인들(전 9:5, 6; 살후 2:9, 10)은 멸해질 존재들이므로 영원히 고통을 받을 수도 없다. 그들의 형벌은 둘째 사망이다(계 2:11; 20:6, 14; 21:8). 의인은 영원한 축복의 삶을 고대하지만, 악인은 자신들을 태울 심판의 불을 기다린다(히 10:27).

요약: 모든 논의를 종합하면 위의 본문에서 악인이 받을 형벌은 그들 주변의 궁핍한 자들을 소홀히 여김으로써 자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마귀 및 그의 사자들과 한가지로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형벌은 불의 심판과 연관될 것이다. 그러나 그 불의 결과는 영원하지만 악인이 불멸의 존재가 아니므로 불 자체는 영원히 불타지 않을 것이다.

Tom Shephe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