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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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 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대하 26:5).

연약한 왕

아마샤가 무리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죽자, 백성들이 웃시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16세에 왕이 된 웃시야는 아마샤가 무너지는 모습을 다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마샤의 후대보다는 초기에 여호와께 정직히 행했던 모습을 닮고자 했습니다. “웃시야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4절).

왕이 된 것도 자기 힘이 아니었던 웃시야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선지자 스가랴를 통해 하나님을 찾았고 여호와께서는 그를 형통하게 하셨습니다(5절).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방 나라들을 물리쳤고 명성이 애굽까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7, 8절). 그는 여러 성읍을 건축했고 무역과 농사를 장려했고 군대를 키웠습니다. 웃시야 치하에서 유대 나라가 강성해진 것이 웃시야의 능력으로 그렇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15절).

강성한 왕

웃시야는 여러 일에서 성공을 거두며 강성해졌습니다(16절). 그러자 교만해졌습니다.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16절).

웃시야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들의 업무인 향단에 분향하는 일을 하려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일을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이전에 사무엘과 다윗은 제사장이 아닌데도 제사장들이 입는 에봇을 입고 여호와께 묻고는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겸손히 하고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를 원하는 가운데 주님께 묻고자 했습니다. 이에 비해 웃시야는 여호와 하나님과 긴밀히 교제하려는 열망은 없이 제사장의 권한만을 얻고자 했습니다. 웃시야는 강성해진 자신을 보며 절대왕권을 머릿속에 그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웃시야가 주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위해 분향단으로 나갔다면, 그는 제사장들이 말릴 때, 화를 내지 말고 자신을 돌이켜야 했습니다(19절). 그런 상황에서 웃시야가 화를 냈다는 것은 왕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분향했는지를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웃시야 왕이 화를 낼 때에 그의 이마에 문둥병이 발병했고, 그는 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불행이 반복되었습니다.

기도) 저의 연약함을 언제나 잊지 말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