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일요일 장년기도력] 울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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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울고 있느냐?”(요 20:15, 쉬운)

그들[제자들]은 이 말을 자주 되뇌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마음이 외롭고 아픈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사랑하는 선생님이 당하신 운명이 언젠가 자기들의 운명이 되리라 생각하며 그들은 다락방에 함께 모여 문을 굳게 잠갔습니다.

구주가 다시 살아나실 줄 알았다면 그들은 늘 기뻐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동산에서 울며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곁에 가까이 계신데도 말입니다. 눈물이 눈을 가려져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은 너무도 큰 슬픔에 빠져 천사들의 기별이나 그리스도가 친히 하신 말씀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이 제자들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마리아의 절망적인 부르짖음을 되풀이하는 이가 참 많습니다!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라고 하신 구주의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그분은 그들 곁에 가까이 계십니다. 하지만 눈물 범벅이 된 눈으로는 그분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분이 말씀하는데도 그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아, 수그린 고개를 들 수만 있다면, 눈을 열어 그분을 볼 수만 있다면, 귀를 열어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속히 가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그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고 말하라.”

…희망이 없고 도움 받을 수 없는 자처럼 슬퍼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살아 계십니다. 그분이 살아 계시는 까닭에 우리도 역시 살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과 거룩한 불이 닿은 입술로 ‘그리스도가 살아나셨다!’라며 즐거운 노래를 부릅시다! 그분은 살아서 우리를 중보 하고 계십니다. 이 소망을 굳게 붙잡으십시오. 그러면 그 소망이 영혼을 견고한 닻처럼 굳게 붙잡아 줄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시대의 소망』, 7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