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월요일 장년 교과] 젖뗀 아이의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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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자신을 속이고 그 너머를 볼 수 없게 하기에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실재를 볼 수 없다. 의인은 겸손한 아기처럼 눈을 들어 그분을 의지하고 바라본다.

시편 131편을 읽어 보라. 이 시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하나님의 백성은 신실한 자들을 괴롭게 하는 유혹과 고난으로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시편 기자를 위로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자기의 삶을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생생한 확신이다. 그는 자신의 교만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고백한다. 교만은 사람을 속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만들어 자신 너머를 볼 수 없게 한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더 높은 실재를 볼 수 없다.
반면에 의인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본다(시 123:1, 2).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인정하기에 겸손해지고 이기심과 헛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큰 일”과 “너무 높은 일”을 구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시 131:1, 흠정역). 이 일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한다. 현대 과학은 “가장 단순한” 것조차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적어도 현재로서는 우리의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놀라운 역설이 있다. 물리적 세계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우리 앞에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더 많이 펼쳐진다.
시편 131:2에 기록된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는 모습의 은유는 평온을 찾고 하나님의 품에 안긴 사람을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이는 어린 시절의 아이가 다양한 단계에서 어머니와 맺는 사랑의 관계를 가리킨다.
실체 없는 야망과 교만의 젖을 떼게 하시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요 4:34, 히 5:12~14)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단한 음식”의 더욱 풍성한 영양을 제공해 주신다. 젖뗀 아이와 같다고 표현한 시편 131편의 신뢰는 사실 삶의 고난을 통해 시험과 시련을 겪으며 하나님이 신실하시고 당신의 말씀에 충실하신 분임을 발견한 성숙한 믿음이다.

(이어서) 마지막 부분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백성의 안녕을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님의 교회를 든든하게 하는 데 활용하도록 부름받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선하심에 대해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을 여러 같지 않은 이유로 여전히 신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증거는 교회 안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교회 안에도 여전히 그리스도를 알아야 할 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입니까?

<교훈> 교만은 자신을 속이고 그 너머를 볼 수 없게 하기에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실재를 볼 수 없다. 의인은 겸손한 아기처럼 눈을 들어 그분을 의지하고 바라본다.

<묵상>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는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적용>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나는 이 말씀의 뜻을 어떻게 따르고 있습니까?

<영감의 교훈>
하늘에서 큰 사람 ~ “하나님의 나라에서 크게 되려면 겸비에 있어서, 믿음의 단순함에 있어서, 그리고 사랑의 순수함에 있어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모든 교만은 멸절되고, 모든 시기는 극복되고, 최상권을 위한 모든 야망은 버린 바 되고, 어린이의 온유와 신뢰가 권장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가 그들의 보호의 반석이요 그들의 강한 망대임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은 그분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것이며 그분께서는 그들을 결코 실망 시키지 않으실 것이다”(교회증언 5권, 130).

<기도> 저에게도 어린아이와 같은 기쁨과 믿음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때로 복잡한 문제와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불신과 낙망에 빠지기도 하니 제 마음을 지켜 주옵소서. 어린아이처럼 온전히 신뢰하며 기쁨으로 주님 만날 날을 기다리며 살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