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시편 123편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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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123:1).

눈빛 대 눈빛

“하늘에 계시는”을 직역하면 “하늘에 좌정해 계시는”이며,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라는 표현은 다른 곳에 머물러 있었던 눈을 들어서 하나님을 향한다는 뜻입니다. 시인의 눈은 하나님을 향하기 전에 다른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보지 못할 것을 보고 듣지 못할 것을 들으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시인은 그런 사연들을 이렇게 간결하지만 강하게 표현합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3, 4절).

멸시가 “우리에게”,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시인은 심각한 멸시와 조소의 눈빛으로 인해 심히 피폐해진 듯 보입니다. 보통 이런 멸시에 찬 눈빛에 대해서 우리는 상대에게 애원하거나 혹은 똑같이 멸시하곤 합니다. 그러면 우리 영혼은 우울증이나 대인 기피증에 빠져버립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고 성전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새로운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받았던 멸시의 눈빛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의 눈빛으로 바꾸었습니다.

사랑스럽고 간절한 눈빛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2절). 종들은 멀리 있어도 항상 시선은 주인의 손을 향해 있습니다. 주인이 손으로 무엇을 지시하는지 항상 준비되어 있다가 순종합니다. 또 은혜를 바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주인이 무엇을 시키든지 따라 합니다. 시인은 많은 사람에게 멸시와 조소의 눈길을 받았지만 주인을 향한 순종과 기다림, 그 주인을 향한 사랑의 눈빛으로 자신의 영혼을 치유해 나가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눈빛을 결코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간절히 바라보던 삭개오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는 길이었는데도 삭개오의 집에 거하시며 멸시와 조소로 상처받았던 그의 마음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도 지나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받는 눈빛도,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는 눈빛의 의미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기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