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시편 122편 (2) 평안과 형통이 함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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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시 122:6).

심판과 평안

새 예루살렘 안에 심판의 보좌가 펼쳐져 있습니다. 그곳 중심에는 다윗의 후손이자 다윗보다 먼저 계신 이가 좌정해 계십니다. 구원받지 못한 이들에 대한 심판이 천년기 동안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심판의 자리에 함께합니다. 구원받은 줄 알았는데 받지 못한 사람들의 기록을 살펴봅니다. 구원받을 줄 전혀 몰랐는데 구원받은 사람들의 기록도 살펴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심판들에 대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품성에 대해, 한 점의 의혹도 없게 하는 천 년의 과정이 진행됩니다.

사탄과 그를 따르는 천사들에 대한 심판도 진행됩니다. 다시는 죄가 이 우주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들이 왜 영원히 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확인합니다. 주님을 거부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 이들이 왜 영원히 소멸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하나하나 확인합니다. 연약한 죄인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아 하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외침이 각 피조물의 마음과 입술에, 그리고 온 우주에 메아리 되어 울려 퍼집니다. 이제 새 예루살렘, 새 하늘에 평안이 임합니다. 온 우주는 이제 영원히 안전할 것입니다. “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5절).

평안과 형통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평안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합니다. 이제 새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지극해집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다시 돌아보고 피조물 간에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공고해집니다.

우리에게 이제 하늘은 영원한 기회의 땅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아무런 제약 없이 창조의 신비와 구원의 비밀을 기쁨으로 깊이 살피는 일에 형통할 것입니다. 실패, 패배, 낙심, 좌절, 절망과 같은 단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창조에 대해 창조주와 대화할 수 있으며, 구원에 대해 우리의 구원자와 담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6~8절)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영원한 행복 주택인 새 예루살렘을 위해서, 그곳의 거주자인 서로를 위해서 복을 구합니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9절)

기도) 하늘의 평안과 형통을 이 땅에서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