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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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후회하지 않는 삶,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루하루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죽음 불안이나 죽음 공포가 적었던 환자들은 종교성 자체보다는 믿음의 확고함과 자신이 믿는 바를 생활에서 실천하는 일치성이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면 마음이 어떨까요? 오늘 아침까지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는다면 그 충격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얼마 전 직장 동료의 부친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다녀온 일이 있었습니다. 고인은 연합뉴스 기자로 은퇴 후 고향 충청도에 내려가서 아름다운 제2의 인생을 사셨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늘 환대하고 풍성하게 대접해 주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유기농 먹거리를 직접 재배해서 나눠 주시고 손주들이 방학 때 오면 마당에 수영장도 만들어 주시며 함께 놀아 주는 멋진 할아버지셨습니다. 아내에게는 가정의 대소사를 신경 쓰지 않게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 해결해 주는 자상한 남편이었습니다. 아들의 직장 동료들이 시골집에 놀러 온다고 하면 먹을 것을 잔뜩 사 놓으시고 집을 비워 주시는 넉넉한 마음의 어른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조문객들은 한결같이 고인에게 받은 사랑과 친절을 이야기하기에 바빴습니다. 조문객들 각자가 가진 고인과의 스토리를 들으며 남은 유가족들은 다시금 고인의 인품과 사랑을 생생하게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장에는 고인과의 추억이 담긴 비디오 영상들이 재생되고 있었는데 영상 속 고인의 모습은 손주들의 재롱을 보며 행복에 겨워 하시고 사랑 어린 시선으로 함께 기뻐해 주는 할아버지였으며, 자녀들에게는 인생의 어떤 문제라도 의논할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함과 위엄이 있는 아버지였습니다. 아내에게는 가려운 등도 긁어 주는 자상한 남편이었습니다. 비록 고인은 갑작스레 운명하셨지만 유족들에게 고인이 살아온 삶이 참 아름다운 것이었음을 가르쳐 주었고 부활의 소망으로 다시 그를 꼭 만날 것이라는 재림의 소망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죽음에 관한 진실 3가지
죽음에는 크게 3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절대적 진리는 ‘인간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인간이 겪는 통과 의례들은 다 본인이 직접 경험하고 기억하지만, 오직 죽음만큼은 자신이 체험할 수 없기에 타인의 죽음을 통해서 간접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막상 가족이나 나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면 당황하고 후회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 땅에서 백 년도 채 못 살 인생을 천 년 만 년 살아갈 것처럼 헛된 욕심과 두려움에 끌려 다니면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둘째,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태어남에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명절에 시댁 식구가 한 자리에 모이면 아버님께서는 언제나 자손을 다 모으시고 축복 기도를 하십니다. 그때 빼놓지 않고 기도하시는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죽음에도 순서가 있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아마도 자식을 먼저 앞세우고 싶지 않으시다는 아버님의 간절한 마음이 담긴 기도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사건과 사고, 대형 참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 중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는 어쩌면 기대 이상의 큰 선물이고 축복입니다.
   셋째, 아무도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죽는 바로 그 순간, 좋든 싫든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우리 삶에는 거짓이 잠시 통용될지 모르지만 죽음의 순간에는 자신의 존재가 남김없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죽는 시간과 장소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죽음이 갑자기 찾아올 때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 어떤 식으로 죽을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호스피스 운동을 창시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마지막 성장 단계”라 했으며 외과 의사인 히노하라 시케야키는 “죽음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엔딩을 꿈꾸며
여러분은 삶의 마지막 엔딩 장면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으신가요? 한 사람의 죽어 가는 과정과 그 죽음은 남겨진 유족들에게 엄청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도 선물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이끄는 전환점이나 방향이 될 수 있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야 합니다. 좋은 삶이 좋은 죽음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후회하지 않는 삶,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루하루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죽음 불안이나 죽음 공포가 적었던 환자들은 종교성 자체보다는 믿음의 확고함과 자신이 믿는 바를 생활에서 실천하는 일치성이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자아 통합감(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와는 상관없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삶의 의미를 통합하는 정신-심리 상태, 자신의 장점과 단점 모두를 수용하는 단계)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가치 있는 삶이었다고 생각하고 수용하면서,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낮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이 허비되었거나 무가치하다는 절망감을 갖게 될 때 죽음에 대해 매우 높은 불안과 공포를 보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호주의 브로니 웨어라는 여성은 쳇바퀴 같은 삶에 회의를 느끼고 10년간 일한 은행을 그만두고서 한 섬으로 들어가 유유자적한 삶을 보냈지만, 곧 인생을 즐기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영국에 가서 죽어 가는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돌보던 환자가 죽게 되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그렇게 그는 고향인 호주로 돌아가 호스피스 환자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고 환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임종 환자들이 후회하는 것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들을 정리하여 『죽어 가는 환자가 후회하는 다섯 가지』라는 책을 집필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기대에 맞춰 살았던 삶을 후회했습니다. 남을 의식하는 바람에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을 자책했습니다.
   둘째, 너무 열심히 일만 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대부분의 남성 환자가 이런 후회를 했는데,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셋째,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용기를 내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만 했던 것이 지금의 병으로 이어지진 않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넷째,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지 못했음을 후회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오랜 친구들이 보고 싶어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들의 연락처조차 알 수 없어 안타까워했습니다.
   다섯째, 많은 사람이 오래된 습관에 머물러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여러분에게 인생에서 후회가 남는 지점은 없나요? 겨울의 문턱에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앙상한 가지만 남긴 채 이파리를 다 떨구는 나무처럼 인생의 사계절, 우아한 엔딩,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요? 우리의 정신이 온전할 때, 삶을 정리해 보는 것이 인생의 지혜일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선물 같은 삶을 낭비하기보다 더욱 풍성하게 살기 위해 남은 인생을 다시 설계하고,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다시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 볼 수도 있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해서 하나씩 이루어 보는 것도 삶에 큰 활력을 줄 것입니다. 우아한 엔딩을 위하여!

전영숙
서중한합회 가정봉사부장, 가정 문제 상담사

2023년 가정과 건강 12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