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배려, 함께 극복하는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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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는 성실하고 착하기만 하던 아들이 어느 날 반항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도 당황하였기 때문에 아버지의 권위를 세우려고 저의 방식대로 아이를 다그쳤습니다. 아이는 입을 다물어 버렸고 툴툴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이와 대화하려고 노력해 봤지만 아이는 그 일에 대해서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 일은 잊혀졌지만 또 다른 일들이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내 아이를 잘 양육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녀가 사춘기를 겪게 되면서 지금의 양육 방식에 변화가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춘기는 병이 아니다
사춘기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짜증, 반항, 성장, 변화 등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떠오르는데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느끼는 감정은 불안과 염려, 걱정 등 부정적인 감정이 많습니다. 저도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로서 갑자기 감정의 변화를 겪는 자녀의 모습을 보며 당혹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에 내 아이에게는 사춘기가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다른 부모들이 사춘기 자녀로 인해 걱정할 때 흔히 책에서 조언해 주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줄 것이다. 원래 다 그런 것이다. 그냥 참고 적당히 협상하며 살아라.”와 같은 무의미한 조언들을 해 줄 뿐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내 아이가 사춘기를 겪는 모습을 보니 그때 저의 조언들이 그 부모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춘기를 겪는 학생들은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본인들조차 자신들이 왜 그런 감정을 겪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다만 그렇게 반항하고 짜증 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지내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지칭하는 중2병이라는 말이 사춘기 아이들의 반항과 일탈, 무례함을 당연시하고 방임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하지만 사춘기는 병이 아니기에 약을 처방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둘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자녀가 사춘기를 잘 보내고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사실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다만 함께 노력해 나가는 것뿐입니다.

사춘기의 반항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대부분 자녀들과 갈등을 겪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 갈등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갈등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갈등의 시작은 자녀의 반항 또는 부모가 좋아하지 않는 어떤 말이나 행동들로 인해 시작됩니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의 말을 잘 듣던 자녀가 어느 날부터인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부모가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고 부모가 조언을 할 때 대들거나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립니다. 부모는 자녀와 대화하려 하지만 자녀는 부모와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초등학생을 대하듯 훈육하고 행동에 제재를 가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통하던 방식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중학생에 맞는 방식으로 자녀를 훈육할 수 있을까요? 사실 훈육한다는 것이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자녀들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초등학생 때는 부모의 세계관에 따르던 자녀가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하면서 두 세계관이 충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세계관을 존중해 주지 않을 때 자녀는 화가 납니다. 그리고 그 화를 그대로 표출하거나 아니면 자기만의 공간(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립니다.

사춘기 함께 극복할 수 있다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던 한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그때 왜 그랬던 것 같아?” 그러자 대학생이 된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도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화가 나고 짜증이 났어요. 그런데 지금 제 동생이 저와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한 대 때려 주고 싶어요. 나 때문에 엄마가 많이 힘드셨겠구나 싶고요.” 짧은 대화였지만 사춘기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사실 사춘기를 겪는 자녀들이 화를 내지만 그 화가 진심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화를 당하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진심으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바로잡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감정의 상처를 입다 보니 부모 역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해결책이 되지 않음을 금방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어느 정도 위안이 되거나 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장 그 힘든 순간을 지나기에는 무책임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춘기를 겪는 자녀들이 진심으로 부모와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나 자신이 원하는 것들은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다만 부모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자녀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아가면서 그 변화에 맞춰 생각이나 행동들이 빠르게 변화하는데 부모는 그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버겁기만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좋아하는 대중문화라는 것이 부모의 입장에서 썩 달갑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부모(나)의 입장만 생각하고 내 생각 속에서만 살아가려 한다면 결국 자녀와 대화하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 모릅니다. 어쩌면 사춘기를 겪는 자녀의 문제는 변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부모(나)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자녀가 한 발짝 물러서려 할 때에 부모는 한 발짝 다가서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만 그 발걸음은 내 세계관이 아닌 자녀의 세계관에 맞는 발걸음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한 걸음 다가오려고 하면 부모는 그 자리에서 자녀를 있는 모습 그대로 안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서로 보조를 맞춰 걷다 보면 칠흑같이 어둡던 사춘기의 터널을 지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김윤호
사춘기 자녀를 둔 아빠, 충청합회 청소년부장

2024 가정과 건강 2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