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금요일 예수바라기] 낙심과 소망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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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낙심과 불안

영국의 대표적인 시인 키이츠는 “낙심은 절망의 어머니”라고 했으며, 파스칼은 불안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이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불안”은 소리를 내며 솟아오르거나 가라앉는 바다의 파도를 묘사할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시인의 영혼이 성난 파도처럼 이리저리 밀려다니고 요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낙심”은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합니다. 희망과 행복도 용해시켜 버립니다. 또, 낙심은 인생에서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해로운 요소입니다. 실패를 통해서는 우리가 배울 게 많지만 낙심은 아무런 경험적 재산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불안해하고 낙심하기를 반복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잊어버린 현대인의 숙명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갈급함

다윗도 사람들이 종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3절)라고 물을 때 그는 대답하지 못합니다. 다윗은 이전에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의 집에 갔던 일을 기억합니다(4절). 하나님이 역사하셨던 요단, 헤르몬, 미살 산에서 주님을 기억합니다(6절).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지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혼은 불안하고 낙심합니다.

다윗은 자기 영혼을 한 마리의 연약한 암사슴으로 비유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지 못하면 목이 말라서 죽을 지경이 되는 것같이, 살아계신 하나님(2절)을 찾지 못하면 다윗의 영혼은 불안하고 낙심하여 죽을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의 영혼이 주님을 갈망하지만, 이전에는 그렇게 잘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지금은 다윗을 잊어버리신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으십니다(9절).

내 영혼아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으신 듯 움직임이 없을 때, 다윗의 영혼은 불안하고 낙심도 했지만, 거기에 빠져서 하나님 없는 인생을 숙명처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기 영혼과 대화하듯이 호소하며 낙심과 소망 사이에서 소망을 선택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5, 11절). 그는 하나님께서 나타나 도우실 것을 믿으며 여전히 찬송하기를 선택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유일한 선택입니다.

기도) 주님을 갈망하오니 저의 소망이 되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