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례 요한이 처형되어 그의 목소리가 사라질 때 제자들이 큰 소리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뚜렷한 대조를 보이면서 그분의 부활과 평행을 이룬다.
마가복음 6:1~6을 읽어 보라.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배척했는가?
보통 작은 마을의 사람이 유명해지면 고향 사람도 함께 영예를 나눈다. 나사렛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이 교사이자 치유자로서 성공하신 것에 대해 불쾌해하고 당황해했다. 노동자라고 여겼던 그분이 선생이 되신 것을 그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듯하다. 또 대부분의 기적을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것에 대한 반감도 있었을 것이다(눅 4:23). 게다가 그는 자기 가족들과도 섭섭한 일이 있었지 않은가(막 3:31~35).
마가복음 6:7~30을 읽어 보라. 열두 사도의 사명은 침례 요한의 참수와 어떻게 대조되는가?
마가복음의 세 번째 샌드위치 구조의 이야기가 나타난다. 예수님의 기별을 온 세상에 전하는 열두 사도의 사명은 침례 요한의 투옥, 처형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간소한 여장으로 다니라는 지침을 받는다. 이 전략은 실제로 선교사들을 그들이 섬기는 사람에게 의존하게 만들고 그들이 기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헤롯과 그의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그런 유대감을 만들 수 없었다. 헤롯의 양면성과 욕망을 이용한 헤로디아의 음모에 희생된 요한의 죽음은 충격적으로 자세히 묘사된다. 헤로디아의 딸은 침례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달라는 기괴한 요청으로 이 추악한 음모에 합세한다.
침례 요한의 광야의 소리와 같은 열두 사도의 회개하라는 선포가 울려 퍼질 때, 요한의 맑고 우렁찬 목소리는 사라지고 그는 참수당한다.
(이어서) 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표한다. 요한이 죽임당하고 장사된 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보고된(막 6:14~16, 29) 것은 예수께서 경험하실 일과 유사하다(막 15:, 16:). 이 평행구조의 이야기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 다가올 위기를 가리킨다.
<교훈> 침례 요한이 처형되어 그의 목소리가 사라질 때 제자들이 큰 소리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뚜렷한 대조를 보이면서 그분의 부활과 평행을 이룬다.
<묵상> 당신도 예수님처럼 거절을 당했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어떤 경험이었다고 생각됩니까?
<적용> 그런 경험을 통해 앞으로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때 도움이 될 만한 어떤 교훈을 얻었습니까? 당신은 다른 이의 어려움을 어떻게 도울 수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헤롯의 경솔한 맹세로 요한이 희생됨 – “헤롯은 자기의 맹세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다렸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그는 할 수 없이 선지자를 처형하도록 명령하였다. 요한의 머리가 곧 왕과 그의 손님들 앞에 운반되어왔다. 헤롯에게 죄의 생활에서 돌이키라고 충성스럽게 경고하던 입술은 영원히 봉하여졌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을 회개하도록 요청하던 그 음성은 들리지 않을 것이었다. 하룻밤의 환락이 가장 위대한 선지자 중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켰던 것이다”(시대의 소망, 222).
<기도> 광야에서 또 감옥에서 끝까지 충성한 요한의 삶을 기억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사라져도 제자들을 통해서 더 큰 목소리로 외치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뜻은 분명히 이루어짐을 기억하고 내게 맡겨진 일에 충성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