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레 16:31).
왜 괴롭게 해야 하나?
부정함이 영원히 사라지는 날에 우리에게 부정함이 남아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레위기 10-15장에서 부정한 사람이 정결하게 되는 길고 힘든 과정을 보았습니다. 부정한 사람은 희생제물을 드리는 일과 함께 몸을 씻고 옷을 빨고 털을 미는 일 등을 해야 합니다. 즉 우리도 진심 어린 회개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들의 희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과정입니다. 이날은 정결을 완성하는 즐거운 날이지만, 자신에게 부정함이 남아 있는지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스스로를 괴롭게 할 수 있나?
레위기 16장은 스스로를 괴롭게 하라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합니다(29, 31절). 절기를 정리해 놓은 레위기 23장에서는 속죄일을 언급하며 스스로를 괴롭게 하라는 말을 세 번이나 되풀이합니다(레 23:27, 29, 32). 괴롭게 하지 아니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지고 멸절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레 23:29, 30).
이사야 58장 3절은 금식과 마음을 괴롭게 하는 일을 평행절로 놓습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시 아니하시나이까?” 지금도 유대인들은 속죄일을 금식 안식일로 보내고 있습니다. 금식은 주님께 우리의 생명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행위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전혀 일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속죄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속죄에 집중하며 회개함으로, 나의 삶에서 부정함을 온전히 버리는 날입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을 새로이 정의합니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며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 7).
진실로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참된 금식은 우리의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림 전 심판의 시기라는 속죄일을 사는, 현대의 남은 무리에게 주시는 기별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괴로울 정도로 희생하지 않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라는 기별이기도 합니다.
진실로 저희 자신을 괴롭게 하소서. 회개하며 사랑하는 금식을 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