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모세는 왜 수건을 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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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출 34:30, 33).

왜 모세를 두려워하였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만나고 온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자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모세의 얼굴에 나는 광채를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합니다. 준비가 안 된 죄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뵙기를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모세는 얼굴에 수건을 썼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셨습니다. 그것은 연약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직접 드러내면 죄인들은 두려워 감당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형상으로 신성을 감추시고 말씀과 생애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드러내셨습니다. 결국 그분의 감추심은 연약한 우리에게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왜 모세는 수건을 썼는가?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고후 3:13).

바울은 이 사건을 재해석하며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은 사라질 것이기에 그것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우리가 사라질 영광이 아니라 지속될 주님의 영광을 보아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러기 위한 두 과정이 있습니다. 첫째,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고후 3:14) 입니다. 그리스도는 영광의 광채이시기에 그분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있으면 그분의 영광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성막 안에 있으면 지성소에서 나오는 영광의 빛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두 번째로 주의 영이 우리 생애에 역사하십니다.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6, 17). 본문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사라지지 않을 영광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고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영광에서 영광으로 이르며 그 사라지지 않을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제 얼굴에 있는 수건을 벗게 하소서(고후 3:14). 주님의 선하심을 바라봄으로 완고함에서 벗어나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