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와 선지자>, 44~51 ‘창조’, 111~116 ‘글자 그대로의 주일’을 읽어보라.
“비교학, 문학, 언어학 및 모든 고려 사항을 바탕으로 누적되어 있는 증거는 여러 면에서 단 하나의 결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창세기 1장에서 ‘날’이라는 뜻의 명칭 ‘욤’은 일관성 있게 문자적으로 24시간의 하루를 의미한다.
창세기 1장의 기자는 문자적인 하루라는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가 선택한 방식보다 더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다른 방식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Gerhard F. Hasel, “The ‘Days’ of Creation in Genesis 1: Literal ‘Days’ or Figurative “Periods/Epochs’ of Time?” Origins 21/1 [1994], pp. 30, 31.
“가장 위대한 정신을 가진 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되지 않으면, 과학과 계시와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하는 그들의 시도에서 혼란에 빠진다. 창조주와 그분의 업적을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이런 것들이 천연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이유로 성경의 역사는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선포된다”(교회증언 8권, 258).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➊ 바로 위의 인용문을 보십시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성경의 가르침보다 과학적인 주장을 선택함으로 성경의 역사를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➋ 성경의 가르침과 유신론적인 진화론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대가 유신론적인 진화론을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을 안다면, 아담의 타락과 죽음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에 대해 기록한 바울의 설명(로마서 5장 참고)에 비추어서 십자가의 의미를 어떻게 그에게 설명하겠습니까?
➌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눈이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 위대한 진실에 열려있지 못한 것입니까? 하나님이 계시하신 성경의 진리에 마음을 열었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꽉 막힌’ 사람들로 오해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무신론적이고 물질적인 세계관이 그리스도인의 세계관보다 얼마나 편협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