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수요일 장년 교과] 약속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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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들을 대접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손님 접대를 위한 모본이 되며, 이 땅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대하게 한다.

마지막에 등장한 할례의 모습은 이스마엘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집에 있는 모든 남자를 포함했다(창 17:23~27). “모든”을 뜻하는 콜(kol)이라는 단어가 네 번 반복된다(창 17:23~27).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모두를 포함하는 배경 속에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이삭”)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 나타나신다.

창세기 18:1~15과 로마서 9:9을 읽어 보라. 손님들을 맞이한 아브라함의 모습 속에서 손님 접대에 관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가? 아브라함의 환대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비록 아브라함이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행동했을지라도, 아브라함이 그 나그네들이 누구였는지 알았는가 하는 것은 분명하지 않다(히 13:2). 아브라함은 “날이 뜨거울 때에…장막 문에 앉아” 있었다(창 18:1). 사막에서 손님을 만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아마 그는 손님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99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 나그네들을 향해 뛰어갔다(창 18:2). 아브라함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주여”(창 18:3)라고 불렀는데, 그 호칭은 주로 하나님께 사용되는 것이었다(창 20:4, 출 15:17). 그는 그들을 앉힌 후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급히 움직였다(창 18:6, 7). 그는 그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즉시 돕기 위해 그들 옆에 서 있었다(창 18:8).
하늘에서 온 손님들을 향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손님 접대를 위한 훌륭한 모본이 된다(히 13:2). 아브라함의 공손한 태도는 손님 접대의 철학을 나타내 보여준다. 나그네에게 존중과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저 보기 좋은 예의 바른 행동이 아니다. 성경은 그와 같은 행동이 마치 하나님께 행하듯이 해야 하는 종교적 의무임을 강조한다(비교, 마 25:35~40).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성경에서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 배고프고 가난한 외국인으로 묘사된다.

<묵상>
하나님께서 나그네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것의 중요성은 무엇입니까?

(이어서)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으로 들어오신 것은, 인류를 향한 그분의 은혜와 사랑을 나타내 보여 준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류에게 다가가기 위해 사람의 종이 되어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대하게 한다(빌 2:7, 8). 이곳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은 그분의 약속의 확실성을 보장한다(창 18:10). 하나님께서는 “그 뒤”에 숨어 있는 사라를 보시며(창 18:10), 그녀의 가장 깊은 생각까지 아신다(창 18:12). 하나님께서는 사라가 웃었음을 아셨고, ‘웃음’이라는 단어가 그분께서 하신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의 회의적인 태도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자리가 된다.

<교훈>
나그네들을 대접한 아브라함의 행동은 손님 접대를 위한 모본이 되며, 이 땅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모습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대하게 한다.

<적용>
그대는 오늘 하루 어떤 나눔과 섬김을 통해 부지중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섬겼다고 생각하십니까?

<영감의 교훈>
하늘의 손님을 대접한 아브라함 – “그는 이와 같은 친절을 단순한 여행자, 곧 지나가는 나그네로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사람들에게 나타냈다. 그러나, 접대는 끝나고, 그의 손님들은 정체를 드러냈다. 그는 하늘의 천사들뿐 아니라 그들의 영광스런 사령관, 그의 창조주요 구속주이며 왕이 되시는 분께 봉사하였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계획이 공개되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고 불리어졌다”(증언보감 2권, 568).

<기도>
우리 곁에는 우리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는 많은 이웃이 있습니다. 그들을 모른 척하지 않게 도와 주시고,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베풀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