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구별하심과 눈치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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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가 이스라엘의 가축과 애굽의 가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가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사람은 그의 종들과 가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출 9:4, 20, 21)

구별인가 차별인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도 애굽 사람들도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가축과 애굽 가축은 구별하여 한쪽은 죽이고 한쪽은 살리십니다. 이것은 차별이 아닌가요?

주님은 언제나 피할 길을 주십니다. 무조건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고 하지도 않으십니다. 그저 하나님의 백성이 떠나게 보내주라고만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애굽에 남아있고자 한다면 그들도 재앙을 받을 것이고 애굽 사람들도 가나안으로 떠나고자 한다면 재앙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차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순종하게 됩니다. 그 사랑을 거부하면 순종하지 않게 되고 재앙을 받습니다. 피할 길을 주셨는데 거부하면서 차별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행동일 뿐입니다.

눈치보기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일곱 번째 재앙인 우박이 내릴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이 경고를 듣고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한 바로의 신하들은 가축들과 종들을 피하게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한 바로의 신하들은 가축들을 그대로 내버려 둡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이미 여섯 번의 재앙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내리는 것을 보았는데도 그들은 어떻게 여호와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도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의 눈치를 보았을 것 같습니다. 그의 권력이 무서웠을 것입니다. 또 여호와 말씀을 따르면 너도 이제 노예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느냐는 추궁을 당할 것을 두려워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눈치를 보는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이 그 마음에 머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마음에 머무는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순종합니다.

순종이 구별의 기준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말씀을 마음에 두고 순종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