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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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인생을 재해석하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5, 7절)라는 말을 요셉은 두 번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요셉은 자기 가족을 잊으려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잊어버리고 애굽에서 잘 살기를 바랬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을 만나고 자기의 꿈을 기억합니다. 형제들의 변화를 보며 자신의 인생을 예언의 시각으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합니다. 형제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자신을 시기해서 애굽에 팔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발견합니다. 그는 자신이 팔리는 사건을 구원의 사건으로 재해석합니다. 자신을 애굽으로 보낸 이는 형제들이 아니고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고 하나님이시라”(창 45:7, 8).

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나? 로마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직접 못 박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죽였습니다. 그것이 다일까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이해가 여기서 멈추면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이 죽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면, 이 일은 결코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 죄인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셨습니다. 사랑이 예수님을 못 박게 하였습니다. 그제야 원수가 이웃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세상의 사물과 사건을 하나님의 예언에 따라 보면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팔았던 형들에게 가서 입을 맞추고 안고 웁니다. 그제야 형들이 요셉과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다시 한 가족이 되기 시작합니다. 구원과 사명의 공동체가 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때 그제야 이런 것들이 우리 눈에 보입니다.

저희의 억울함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하소서. 그 일에서 저의 구원을 보게 하소서. 그 일로 인해 구원받을 영혼들을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