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일요일 장년 교과] 창조의 하나님

163

창세기에 1장과 2장에 기록된 창조 기사는 우리에게 능력 있고 위대하시며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호소한다.

시편 100:1~3을 읽어 보라.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반응은 무엇이며 왜 그런가?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창조 기사의 첫 번째 기별은 “하나님”이다. 성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태초에 하나님이”(창 1:1). 창세기 1:1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그 절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으며, 히브리인들이 예배 시간에 암송하는 찬양에서도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가장 강한 어조로 암송함으로 하나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창조에 관한 기록은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강조로 시작된다.
창세기는 두 가지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소개하며 시작한다. 첫 번째 창조 기사(창 1:1~2:4)에서는 하나님을 사람과 완전히 다른 초월적인 존재, 곧 모든 것보다 우월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이름인 엘로힘(Elohim)으로 나타낸다. 엘로힘이라는 이름은 탁월성과 힘을 나타내며,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복수의 형태로 기록된 것은 위엄과 초월성의 개념을 표현한다.
두 번째 창조 기사(창 2:4~25)에서는 하나님을 더없이 친밀하고 개인적이며 우리 가까이 계신 야훼(YHWH) 하나님으로 나타낸다. 야훼라는 이름은 친밀함과 관계를 나타내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즉, 창조 기사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참다운 경배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분의 능력을 깨닫고, 동시에 그분께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는 그의 것”(시 100:3)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많은 시편이 예배와 창조를 연관 짓는 이유이다(시 95:1~6, 139:13, 14, 비교, 계 14:7).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하나님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예배할 때 하나님께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존경,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향해 갖고 계신 친밀함과 용서, 사랑에 대한 기쁨과 확신은 따로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시 2:11).

<묵상>
온 우주를 붙들고 계신 동시에 우리와 매우 가까이 계실 수 있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와 같은 사실이 놀라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어서) 하나님의 두 가지 모습을 나타낸 순서조차도 의미가 있다. 하나님의 친밀하심과 가까우심을 경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한 후에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달은 후에야 비로소 우리 삶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랍고 사랑스러운 임재를 감사할 수 있다.

<교훈>
창세기에 1장과 2장에 기록된 창조 기사는 우리에게 능력 있고 위대하시며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호소한다.

<적용>
온 우주의 창조주 되시는 위대한 하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시며 돌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그대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어떤 도움을 주나요?

<영감의 교훈>
위대한 창조주의 솜씨를 드러내는 천연계 – “오늘날 우리가 바라보는 천연계의 사물들은 에덴의 아름다움과 영광에 관하여 다만 희미한 개념만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럴지라도 아름다운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천연계는 능력이 무한하시고, 자비와 긍휼과 사랑이 많으신 분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생명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비록 망가진 상태일지라도 만물은 위대한 대예술가의 솜씨를 드러낸다”(교회증언 8권, 256).

<기도>
온 세상을 창조하신 능력 많고 위대한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저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저의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런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경배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