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천년기와 죄악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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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기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도들이 첫째와 둘째 부활 사이에 하늘에서 1,000년 동안 통치하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죽은 악인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지구는 완전히 황폐되어 산 거민들이 없고, 사단과 그의 사자들이 거처할 뿐이다. 그 기간의 끝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성도들과 거룩한 성과 함께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오실 것이다. 그 때에 죽은 악인들이 부활하여 사단과 그의 사자들과 함께 그 성을 포위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그들을 태우고 지구를 정결케 할 것이다. 이리하여 우주는 죄와 죄인들에게서 영원히 해방될 것이다.-기본 신조, 27.

각 시대를 통하여 지옥에 대한 공포감을 조장해서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만듦으로써 하나님을 경배케 하고자 시도하는 자들이 있어 왔다. 그렇다면 그런 유의 사람들은 그들의 신을 어떠한 신으로 묘사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어떻게 악을 제거하실 것인가? 사단에게는 어떤 일이 생길 것인가? 무엇이, 죄가 다시는 그 더러운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할 것인가? 어떻게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또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되실 수 있을까?

천년기가 시작될 때 있을 사건들
천년기, 곧 요한계시록 20장에서 말하는 1,000년의 기간에 지구에 대한 사단의 영향은 제한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성도들과 함께 통치하실 것이다(계 20:1-4).

재림. 요한계시록 19장과 20장은 함께 연결된다. 그 두 장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 그 두 장은 그리스도의 재림(계 19:11-21)과 재림 후에 바로 계속되는 천년기를 묘사한다. 그리고 그 일련의 묘사는 천년기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시작됨을-알려준다.
요한계시록은, 재림 직전에 그리스도의 사업과 그분의 백성들을 대적하기 위하여 세상의 나라들을 함께 모으는 세 세력을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계 16:13)라고 표현한다.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그분과 싸우기 위하여 모였을 때,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죽임을 당한다(계 19:19, 20). 그 다음에 계속되는 요한계시록 20장, 곧 천년기에 관한 장은 그 마귀의 삼중 연합의 세 번째의 정체인 용의 운명을 취급한다. 그는 사로잡혀서 무저갱에 던져져 1,000년 동안 그곳에 머물게된다.*
우리가 24장에서 연구한 바와 같이,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즉 이 세상의 나라들이 망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의 나라, 곧 영원히 존속할 나라를 세우실 때 있게 된다(단 2:44). 그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통치를 시작할 것이다.

첫째 부활. 재림시에 첫째 부활이 있게 된다. 의인들, 곧 “복이 있고 거룩”한 자들은 부활한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한다(계 20:6; 본서 25장 참조).

의인들의 승천. 죽은 의인들이 부활한 후, 그들과 산 성도들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기 위하여 끌어올려 진다(살전 4:17).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 하신 약속,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 3)고 하신 약속을 이루실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데려갈 장소를, “내 아버지 집”, 혹은 “처소”라는 말로 묘사하셨다(요 14:2). 여기서 예수님은 천년기가 끝나기 전에는 이 땅에 내려오지 않을 새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재림 시에 의인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될 때, 그들의 목적지는 하늘이지, 그들이 방금 떠난 이 지구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때에 당신의 영광의 나라를 지상에 세우지 않으신다. 그분은 천년기의 끝에 그렇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죽임을 당함.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재림을 대홍수 때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시의 사건에 비교하셨다(마 24:37-39; 눅 17:28-30). 그분의 비교는 두 가지 점에서 이루어진다. 첫째는, 멸망이 악인들에게 불시에 닥쳐왔고, 둘째는, 다가온 것은 멸망이었다. 홍수가 “저희를 다 멸”(마 24:39)하였다. 소돔 위에 내린 불과 유황은 “저희를 멸하였”(눅 17:29; 마 13:38-40 참조)다. 재림의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이름을 가지고 백마를 타시고 하늘에서 내려와서 세상의 반역한 나라들을 치실 것이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죽임을 당한 후에 사단을 따르는 자들 중 남은 자들이 죽을 것이며, 살아 남은 자들은 전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계 19:21)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묘사하면서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사 26:21)고 말했다.

땅이 황폐해짐. 의인들이 주님과 함께 지내기 위하여 승천하고 악인들은 그분이 나타나실 때에 죽임을 당하고 나면 지구는 한동안 거민들이 없이 지내게 된다. 성경은 그런 상황을 지적한다. 예레미야는,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렘 4:23-25)라고 말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라고 한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용어를 예레미야가 사용한 사실은 지구가 창조의 시작 때처럼 혼돈해질 것을 가리킨다.

사단이 결박됨. 이 때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이스라엘의 성소 봉사에서 대속죄일의 아사셀의 의식에 예표되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여호와의 염소의 속죄의 피로써 성소를 정결케 했다. 이 속죄가 완전히 이루어진 후에야 아사셀, 곧 사단을 표상한 염소에 관한 의식이 시작되었다(23장 참조). 대제사장은 그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레 16:21)었다. 그리고 아사셀은 광야, 곧 “무인지경”(레 16:22)으로 쫓겨났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성소에서 당신의 백성들의 완전한 속죄를 위하여 봉사해 오고 계시다. 그분께서는 오실 때 그분은 그들을 구속하고 그들에게 영생을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이 구속(救贖)의 사업과 하늘 성소의 정결을 완성하시면 당신의 백성들의 죄를 사단, 곧 악의 창시자요 선동자에게 전가시키실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사단이 신자들의 죄를 속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완전히 이루셨다. 사단은 그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범하게 한 모든 죄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그리고 “미리 정한 사람”이 아사셀을 무인지경으로 끌고간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거민이 없는 황폐한 지상으로 추방하실 것이다(본서 23장 참조).*
천년기에 대한 요한의 이상(異像)은 사단의 추방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는 1,000년이 시작될 때 용,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계 20:2)이 결박되어 “무저갱”(계 20:3)에 갇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핍박하고 기만하는 사단의 활동이 일시적으로 중단되어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되는 것을 상징적으로 알려준다(계 20:3).
요한이 사용하는 말 “무저갱”[헬라어, abussos(아부소스)]은 이 때의 지구의 상태를 적절히 묘사한다.*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내린 일곱 재앙으로 파괴되고(특히 계 16:18-21을 보라) 악인들의 시체로 뒤덮인 지구는 완전한 폐허 상태이다.
사단은 이 세상에 갇혀서 “환경”의 사슬에 결박된다. 지구에는 아무도 살아 있지 않기 때문에 사단은 유혹하거나 핍박할 대상이 없다. 그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에서 결박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천년기 동안의 사건들
그리스도께서는 구속받은 자들과 함께 하늘에 계심. 그리스도께서는 재림하실 때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하늘로, 그분께서 새 예루살렘에 그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신 처소로 데려가신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구속받은 자들은 감사함으로 충만해져서, 그들의 구원의 노래,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계 15:3)고 노래한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림. 그리스도께서는 이기는 자들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계 2:26)를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이루시는 것은 천년기 동안이다. 다니엘은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멸망당한 후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단 7:27)는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께서 첫째 부활 때 일으키신 자들은 그분과 함께 1,000년 동안 다스릴 것이다(계 20:4).
성도들이 하늘에 있고 모든 악인들이 죽었다면, 어떤 의미에서 다스린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통치는 그리스도의 다스림의 한 중요한 면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악인들에 대한 심판. 요한은 성도들이 천년기 동안에 심판에 참여할 것을 보았다. 그는,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계 20:4)고 한다. 이때는 성경이 말하는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심판 할 때이다(벧후 2:4; 유 6). 이것은, 바울이 성도들이 세상과 천사들까지도 심판할 것이라고 주장한 때이다(고전 6:2, 3).*
천년기의 심판은 누가 구원받을 것인지, 잃어버린 바 될 것인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재림 전에 그 결정을 하신다. 그 때에 부활하거나 승천하지 못한 모든 자들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다. 의인들이 참여하는 심판은 악인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의인들의 의문을 풀어주는 데 목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영생을 받은 자들이 그분의 지도를 완전히 신임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당신의 자비와 공의의 행사를 그들에게 계시하실 것이다.
그대가 하늘에 갔을 때 분명히 그곳에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사랑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거기에 없는 것을 발견했다고 상상해 보라. 그런 사례는 그대에게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의심을 품게 할지도 모른다. 그런 종류의 의심이 바로 죄의 기초가 된다. 그런 의심을 품을 어떤 기회도 영원히 종식시키므로 죄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천년기 심판의 살피는 기간에 이런 의문들에 대하여 대답을 하신다.
이 일을 통하여 구속받은 자들은 선악간의 대쟁투에서 중대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죄인들을 위해서도 참으로 열렬하고 꾸준하게 돌보신 것에 대하여 영원히 만족할 것이다. 그들은 죄인이 얼마나 무관심하고 완고하게 그분의 사랑을 배척하고 거절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은 외관상 경미한 죄인들까지도 그들의 구주의 가치 체계를 받아들이는 대신에 더러운 이기심을 은밀히 간직해 온 것을 발견할 것이다.”*

사단의 깊은 사색의 시간. 천년기 동안에 사단은 심히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의 사자들과 함께 황폐한 지구에 갇힌 그는 그가 일생 동안 끊임없이 수행해 온 기만을 더 이상 할 수 없다.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반역한 결과를 살펴보도록 강요당한다. 그는 선악의 대쟁투에서 그가 담당했던 역할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그에게 책임이 있는 모든 죄악 때문에 당할 수 밖에 없는 무서운 형벌에 대한 공포를 안고 미래를 바라볼 뿐이다.

천년기 끝에 있을 사건들
1,000년이 지난 후에 “그 나머지 죽은 자들”-악인들-이 부활하게 되고, 사단은 갇혔던 무활동 상태에서 놓여날 것이다(계 20:5, 7). 그는 악인들을다시 한 번 속여서 “성도의 진”과, 이때쯤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왔을, “사랑하는 성(새 예루살렘)”(계 20:9)을 공격하게 한다.*

그리스도와 성도들과 성이 내려옴. 그리스도께서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하여 성도들과 새 예루살렘과 함께 이 땅으로 내려오신다. 그분은 천년기 심판의 결정을 집행하심으로 대쟁투를 끝내시고, 또한 지구를 정결케 하고 새롭게 하심으로 당신의 영원한 나라를 그위에 세우실 것이다. 그 때에 가장 완전한 의미에서,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슥 14:9)실 것이다.

심판의 부활. 이제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요 5:28) 온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이 완전히 성취되는 순간이 왔다. 재림시에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의인들이 무덤에서 첫째 부활, 곧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하셨다.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른 부활, “심판의 부활”(요 5:29)이 있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역시 이 부활에 대하여 말한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첫째 부활에 일어나지 못한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계 20:5).

사단의 감금이 끝남. 1,000년기 끝에 악인들이 부활하면 사단은 감금 상태에서 “잠간”(계 20:3) 놓이게 된다. 사단은 하나님의 정부에 도전하기 위한 최후의 시도에서 “땅의 사방 백성을 미혹”(계 20:8)하기 위하여 나갈 것이다. 악인들은 죽을 때에 소유했던 동일한 반역 정신을 가지고 일어나기 때문에 사단의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도성을 공격함. 세계의 나라들을 모으고 그는 사랑하시는 성을 공격하게 한다(계 20:8, 9).* “그리스도의 희생적 속죄의 공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에 들어가기를 완고하게 거절한 자들이 이제는 포위와 전쟁을 통해 들어가서 지배하고자 결정한다.”*
하나님께서 다시 악인들에게 생명을 주시자 그들이 즉시 그분을 대적하고 그분의 나라를 전복시키고자 시도하는 사실은 그분께서 그들의 운명에 관하여 내린 결정을 확고하게 해준다. 사단이 더럽히기 위하여 애써온 하나님의 이름과 성품은 이런 방법을 통하여 모든 사람 앞에 충분히 변호될 것이다.*

크고 흰 보좌앞 심판. 요한은, 하나님의 원수들이 성을 둘러싸고 공격할 준비를 갖추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크고 흰 보좌를 설치하신다고 알려준다. 모든 인류는 이 보좌 주위에서 만나는데, 어떤 사람들은 성 안에서 안전하게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성 밖에서 심판자의 임재 앞에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마지막 단계를 집행하실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눅 13:28)고 말씀하신 때이다.
이 심판의 집행 부분을 실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기록책들이 펼쳐질 것이다.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그 때에 하나님께서 운명의 선고를 하신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게 하셨다가 다시 죽게 하시는가? 천년기 동안에, 구속받은 자들은 우주에 있는 모든 지성적 존재를 취급하시는 일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를 살피는 기회를 가져왔다. 이제는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포함하여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길의 공의로움을 인정할 것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고 한 바울의 말이 성취되는 것은 이 큰 보좌의 심판에서이다. 거기에서는 타락하지 않은 자들과 타락한 자, 구원받은 자와 구원받지 못한 자를 총망라한 모든 자들이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심을 고백한다(빌 2:10, 11; 사 45:22, 23 참조). 그 때에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의문은 영원히 해결될 것이다. 영생을 받는 자들은 그분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죄가 다시는 우주를 훼손하지 않을 것이며 그 거민들을 황폐케 하지 않을 것이다.

사단과 죄인들이 멸망함. 사단과 그의 사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선고가 내리자 즉시 형벌을 받는다. 그들은 영원한 죽음을 당해야 한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계 20:9) 구원 받지 못한 모든 자들을 소멸한다. 성 바깥의 지구의 표면은 녹아지는 것처럼 보이고,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벧후 3:7)을 위하여 하나의 큰 불못이 된다. 주님께서 그분의 원수들을 멸하시는 “비상”(사 28:21)한 일을 하시는 “여호와의 보수할 날”(사 34:8)이 이르렀다. 요한은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계 20:15)고 말했다. 마귀와 그의 동료들도 같은 운명을 당한다(계 20:10).
성경 전체의 문맥에서 보면 악인들이 당하는 이 “둘째 사망”(계 21:8)은 그들의 완전한 멸망을 의미한다. 그러면 영원히 불붙는 지옥에 대한 관념은 무엇인가? 자세히 연구해 보면 성경은 그와 같은 지옥이나 고통이 있다고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1. 지옥(hell). 성경상으로 볼 때 지옥은, “하나님을 거절하고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구원의 선물을 거절하는 자들이 둘째 사망을 당할 때 영원한 불에 의하여 형벌과 멸망을 당하는 장소와 상태”이다.*
성경의 영어 번역판들은 히브리어 “스올(sheol)과 헬라어 “하데스”(hades)를 번역하기 위하여 “지옥”이라는 단어를 빈번히 사용한다. 이 용어들은 일반적으로, 죽은 의인들과 악인들이 꼭 같이 무의식 상태에서 부활을 기다리는 무덤을 언급하고 있다(본서 25장 참조). 지옥에 대한 오늘날의 관념이 이 히브리어와 헬라어가 의미하는 바와는 너무도 크게 다르기 때문에 현대의 많은 개역판들은 “지옥”이라는 단어를 피하고 그 히브리어를 “스올”로, 그 헬라어를 “하데스”로 단순히 음역(音譯)한다.
반대로, 신약의 영어 개역판들이 또한 “지옥”이라는 낱말로 번역하는 헬라어 게엔나(geena)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위한 불 형벌의 장소를 나타낸다. 이와같이 성경에서 “지옥”은 반드시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 특성을 깨닫지 못하므로 가끔 큰 혼란이 야기되었다.
게엔나는 히브리어 게 힌놈(Ge Hinnom) 즉 “힌놈 골짜기”-예루살렘의 남쪽에 있는 골짜기-에서 온 말이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어린 아이들을 불사르는 이교의 의식을 행했다(대하 28:3, 33:1, 6). 예레미야는 이 죄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 골짜기를, 이스라엘의 시체가 더 이상 묻힐 장소가 없을 때까지 묻히는 “살륙의 골짜기”로 만들 것이라고 예언했다. 나머지 시체들은 새들의 밥이 될 것이었다(렘 7:32, 33, 19:6; 사 30:33). 예레미야의 예언은 의심할 여지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게 힌놈을 악인들의 심판의 장소, 혐오와 형벌과 수치의 장소로 여기게 했다.* 후기의 랍비의 전통은 그것을 시체와 쓰레기를 태우는 장소로 간주한다.
예수님은 흰놈의 불을, 지옥의 불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셨다(마 5:22, 18:9 참조). 그러므로 흰놈의 불은 마지막 심판을 태우는 불을 상징했다. 그분은 그것이 죽음 후에 경험이며(눅 12:5) 지옥은 몸과 영혼을 다 같이 파멸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0:28).
지옥 불의 특성은 어떤 것인가? 사람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는가?
2. 악인들의 운명.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의인들에게만 영생을 약속하신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 지옥에서의 영생이 아니다(롬 6:23).
성경은 악인들이 “끊어질 것”(시 37:9, 34)이고 멸망할 것이라고 가르친다(시 37:20, 68:2). 그들은 의식을 갖춘 상태에서 영원히 살 것이 아니고 불태워 없어질 것이다(말 4:1; 마 13:30, 40; 벧후 3:10). 그들은 멸망당하고(시 145:20; 살후 1:9; 히 2:14), 소멸될 것이다(시 104:35).
3. 영원한 형벌. 악인들의 형벌에 관하여 이야기하면서 신약은 “영원한”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헬라어 아이오니오스(aionios)를 번역한 것이며, 사람에는 물론이요 하나님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아이오니오스가 상대적인 말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 의미는 그것이 수식하는 대상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므로 성경이 아이오니오스(영원한)를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할 때는 그분께서 무한히 생존하시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불멸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나 멸할 수 밖에 없는 사물에 대하여 사용할 때는, 그 사람이 사는 동안, 혹은 그 사물이 존재하는 동안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유다서 7절은 소돔과 고모라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도시들은 오늘날 계속 불타고 있지 않다. 베드로는 불이 이 도시들을 재가 되게 했고 멸망의 형벌을 받게 했다고 말했다(벧후 2:6). “영원한” 불은 탈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타고는 꺼져버렸다(렘 17:27; 대하 36:19 참조).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악인들을 “영원한 불”(마 25:41)에 들어가게 하실 때, 악인들을 태울 불은 “꺼지지 않”(마 3:12)을 것이다. 그러나 탈 것이 더 이상 남지 않았을 때 그 불이 꺼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영벌”에 대하여 말씀하셨을 때(마 25:46) 영원히 계속되는 형벌의 의미로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영생'(의인들이 누릴)을 영원무궁한 시대를 통하여 계속될 것으로 말씀하셨고, 형벌(악인들이 받을) 역시 영원한 것이라고 하셨지만 그 형벌은 영원한 기간 동안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형벌이 완전하고 최종적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셨다. 이렇게 고난당하는 자들의 종국은 둘째 사망이다. 이 죽음 후엔 어떤 부활도 없을 것이고, 있을 수도 없다는 관점에서 볼 때 그 형벌이 영원한 것이다.”*
성경이 “영원한 속죄”(히 9:12)와 “영원한 심판”(히 6:2)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그것은 끝없는 속죄와 심판의 과정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고 속죄와 심판의 결과가 영원하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영원한 형벌에 관하여 말할 때도 그 형벌의 과정이 영원한 것이 아니고 결과가 영원한 것을 의미한다. 악인들이 당하는 죽음은 최종적이요 영원할 것이다.
4. 세세토록 고통받음. “세세토록”(계 14:11, 19:3, 20:10)이라는 말을 성경에서 사용한 것은, 사단과 악인들의 형벌 과정이 영원히 진행될 것이라는 그릇된 결론을 내리도록 했다. 그러나 “영원히”라는 말과 같이 그 말이 수식하는 대상이 “세세토록”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결정한다. 그 말이 하나님과 관련될 때는 절대적이다. 하나님이 불멸의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관련될 때는 그 의미가 제한적이다.
에돔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에대한 성경의 묘사는 이런 용법에 대한 좋은 예증이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그 도성을 불못에 던지셔서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않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늘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고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사 34:10)다고 말한다. 에돔은 멸망되어 버렸다. 그것이 지금껏 불타고 있지 않다. “세세토록”은 에돔의 파멸이 완료될 때까지만 계속되었다.
성경 전편을 통하여 “세세토록”은 한계가 지어져 있음을 분명히 알려준다. 구약 성경은, 종이 그의 주인을 “영영히” 섬길 것이고(출 21:6), 아이 사물엘이 “영영히” 성막에 거할 것이며(삼상 1:22),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 “영영히”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욘 2:6) 말한다. 신약 성경도 이 말을 같은 방법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면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영원히”(몬 15) 영접하도록 권면했다. 이 모든 경우에 있어서 “영영히”는 “사람이 생존하는 동안”을 의미한다.
시편 92편 7절은 악인들이 영원히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 큰 불에 관하여 예언하면서 말라기는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말 4:1)라고 말했다.
단번에 악한 자들, 곧 사단과 악한 천사들과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뿌리와 가지를 막론하고 모두 소멸된 다음에는, 죽음, 혹은 하데스가 더 이상 쓸모 없게 될 것이다(본서 25장 참조). 이것들 역시 하나님이 영원히 멸하실 것이다(계 20:14).
그러므로 성경은 형벌의 과정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형벌의 결과가 영원한 것이며 그것이 곧 둘째 사망이라는 사실을 매우 분명히 알려준다. 이 형벌 후엔 부활이 없으며 그 결과는 영원하다.
윌리암 템플(William Temple) 대주교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옳다. “우리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영원한 고통의 교리는 결의에 의하여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개인의 영혼의 본질적 불멸성에 대한 헬라 사상과 비성서적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혹은 그들의 마음 가운데 이미 있는 생각들을 가지고 신약 성경을 읽지 않았을 것 같으며, 그들은 거기서(신약 성경에서) 영원한 고통이 아닌 완전 멸절에 관한 신조를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불 속에 던져지는 생명이 영원한 것이 아니고 불이 영원한 불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충분한 형벌이 집행되었음으로 공의의 요구는 충족되었다. 이제 하늘과 땅은 여호와의 의를 선포한다.
5. 형벌의 원리. 죽음은 죄에 대한 최종적 벌이다.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구원을 거절하는 모든 자들은 그들의 죄의 결과로 영원히 죽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극악하고, 악마와 같이 죄를 짓고,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비교적 도덕적이요, 평화로운 생활을 했고, 그들의 죄는 주로 그리스도께서 제공해 주신 구원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동일한 형벌을 받는 것이 공정한가?
그리스도께서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7, 48)고 말씀하셨다.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을 가장 많이 반역한 자들은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더 크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최종적 고통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둘째 사망”의 경험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거기서 그분은 온 세상의 죄를 담당하셨다. 그분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은 죄가 야기한 아버지와의 무서운 분리, 곧 형언할 수 없는 정신적 번민이었다. 구원받지 못하는 죄인들도 그와 꼭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이생에서 뿐만 아니라 최후의 멸망에 있어서도 그들이 뿌린 것을 거둔다. 하나님 면전에서, 그들이 범한 죄 때문에 느끼는 죄책감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한다.
그러므로 죄가 크면 클수록 고통도 크다. 죄의 교사자요 조장자인 사단은 가장 많이 고통을 받을 것이다.*

지구의 정결. 모든 죄의 자취가 사라지는 여호와의 날을 묘사하면서, 베드로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고 말했다.
악인들을 멸망시키는 불은 죄의 오염에서 지구를 정결케 한다. 이 지구의 파멸 가운데서,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게 하시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게 하신다(계 21:1). 정결해지고 새로 창조된 지구,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본향에서 하나님은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나 죽음이 영원히 사라지게 하신다(계 21:4). 마침내 죄가 빚어놓은 저주는 사라질 것이다(계 22:3).
죄와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이 멸절될 주의 날이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베드로는 모든 사람에게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약속에 희망을 두고서 그는,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1, 13, 14)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