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8일 월요일 장년 교과] 이방 궁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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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전혀 다른 페르시아의 문화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과 문화를 드러내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 페르시아가 세워진 이후 유대인들은 조상의 땅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모두가 귀환한 것은 아니었다. 그 중 일부는 그들이 한 세대 이상 살았던 이방 땅에 남았다.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면 에스더 이야기의 맥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자신의 왕국의 왕좌에 앉았고”(에 1:2).
성경의 기록이 진행되는 장소는 바로 아하수에로가 통치하던 페르시아 제국이다.
왕비 와스디는 왕의 총애를 잃었고, 왕은 탐탁잖은 와스디를 대신할 다른 왕비를 찾게 되었다. 이 대목에서 에스더와 그녀의 친척 모르드개가 처음 등장한다.

에스더 2:1~9을 읽어 보라. 이 구절들은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상황에 대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모르드개는 왕실 관리로서 궁궐 문에 앉아 있었고, 그의 사촌이자 수양딸로 입양한 에스더와 함께 수산 성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지위와 거주지 때문에 그들은 페르시아 문화와 영향력 가운데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에스더가 페르시아 왕에게 이끌려가서 선택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에스더도 왕궁으로 이끌려가서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의 수하에 속하니”(에 2:8).

에스더 2:10, 20을 읽어 보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모르드개는 왜 에스더에게 그런 명령을 하였는가?

이유가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것을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어서)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질적인 문화와 종교 가운데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은 적대적인 환경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가족과 민족에 대해서 침묵을 지킨 것은 현명한 일이었다.

<교훈> 에스더와 모르드개는 전혀 다른 페르시아의 문화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과 문화를 드러내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묵상> 신앙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되는 때는 어떤 경우입니까? 아니면 절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면 이유는 무엇입니까?

<적용> 나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의 신앙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롭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기도해 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말씀으로 밝히지 않은 문제는 침묵이 웅변임 – “말씀으로 밝혀진 것들은 우리와 우리 자녀들을 위한 것이지만 말씀으로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은 우리의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므로 침묵을 지키는 것이 곧 웅변이 된다. 이러한 이상한 생각들은 언급해서도 안 되며 더욱이 중요한 진리처럼 가르쳐서도 안 될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2권, 25-26).

<기도>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문화 가운데 생활하는 주의 종들에게 함께하여 주옵소서. 문화의 차이 때문에 고민하며 어떻게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제게 부족한 것이 있거든 방법을 알려주시고 지혜롭게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