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수요일 장년 교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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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동시에 하늘로 먼저 올라가는 영혼은 없다. 땅속에 잠들어 있던 의로운 자들은 재림의 때 부활하여 살아 있는 의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영생이 재림의 때까지 살아 있는 자들에게만 허락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죽지 않도록 그리하여 저희 주께서 오실 때에 받으리라고 고대하던 축복을 잃지 아니하려고 저희 친구들의 생명을 주의 깊이 보호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하는 이들이 차례차례 그들을 떠나갔으므로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괴로움 속에 그 죽은 자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으며 감히 그들을 살아서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을 갖지 못하였다”(사도행적, 258).

데살로니가전서 4:13~18을 읽어 보라. 바울은 그들의 오해를 어떻게 수정해 주었는가?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살전 4:14)는 말씀을 본문이 이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영혼 불멸을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미 하늘에 올라가 있던 의로운 죽은 자들의 영혼을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이며, 그때 그 영혼들이 각자의 몸과 재결합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같은 해석은 이 주제에 관한 바울의 전반적인 가르침과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비재림교인 신학자가 이 성경 절의 참된 의미에 관해 설명한 것을 읽어 보라.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 그들 가운데 죽은 자들을 위해 슬퍼할 때 소망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데리고 오’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셔서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재림의 현장에 있게 하심으로 그들이 ‘그와 함께’ 있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이 어떤 형태로든 불리한 상황에 놓이지 않고 ‘그와 함께’ 있음으로, 살아 있는 믿는 자들과 동등하게 재림의 영광스러운 자리에 함께하게 될 것임을 보여 준다”(Jeffrey A. D. Weima, 데살로니가전후서, 베이커 신약주석, 319).

<묵상>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슬픔의 순간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과 다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어서) 만일 죽은 의인들의 영혼이 이미 주님과 함께 하늘에 있었다면, 바울은 최종적인 부활을 기독교의 소망으로 언급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의인들이 주님과 함께 이미 하늘에 있다고 설명하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는 대신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살전 4:14)이 최후의 순간 죽음에서 부활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최종적인 부활에 관한 소망은 슬픔 중에 있던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다. 죽음이 우리에게서부터 사랑하는 사람들을 빼앗아갈 때, 같은 소망이 우리로 하여금 가슴 아픈 순간들을 차분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교훈>
죽음과 동시에 하늘로 먼저 올라가는 영혼은 없다. 땅속에 잠들어 있던 의로운 자들은 재림의 때 부활하여 살아 있는 의인들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적용>
우리가 가진 확실한 소망이야말로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세상이 필요로 하는 소망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소망을 매력적으로 세상에 전할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의인들이 변화하고 승천함 – “살아남은 의인들은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 된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그들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였다. 그들은 이제 죽지 않을 몸으로 바뀌어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 천사들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은다. 어린아이들은 천사들에 의하여 어머니들의 팔에 안긴다”(각 시대의 대쟁투, 645).

<기도>
인간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싶습니다. 성경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심각한 오류에 빠지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성령으로 저의 마음과 생각을 인도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