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수요일 장년 기도력] 잊을 수 없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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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삼상 2:19)

엘렌 화잇은 가정과 자녀 교육에 대해 폭넓은 내용을 다루었다. 그러나 예언 사역을 맡은 그는 자신과 가족보다 하나님의 사업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큰 부담을 안고 살아야 했다. 1848년에 첫째 아들 헨리가 태어났다. 그러나 헨리가 만 1세 되던 해에 화잇은 아이를 하울랜드의 가정에 맡겨야 했다. 이에 대해 화잇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나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이번에도 자아를 부정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어린 헨리와 함께할 기회를 희생하며 우리는 사업에 투신해야 했다. …헨리가 심하게 아팠을 때 주께서 그를 살려 주셨다고 나는 믿었다. 또 만약 아이가 우리의 의무에 방해가 되도록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내게서 떼어 놓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홀로 주님 앞에서 슬픈 마음으로 눈물을 쏟으며 희생을 감수하기로 했고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남의 손에 맡겨야 했다.
…이별은 힘든 일이었다. 헤어질 때면 아이의 애처로운 작은 얼굴이 밤낮으로 내 앞에 어른거렸지만, 주님의 힘을 의지하여 자식 생각을 내려놓고 타인의 유익을 위해 힘써 일했다”(자서, 120).
원래는 헨리를 하울랜드 가족에게 잠시 동안 맡길 계획이었지만 몇 번을 제외하고는 5년이나 계속 그렇게 해야 했다. 한번은 헨리가 부모, 조부모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1850년 10월 25일 금요일에 하울랜드 가족이 아이를 메인주 고램에 데려왔다. 그때 화잇은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슬픔에 잠겨 일요일에 아이와 헤어져야 했다. 그래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믿음 안에 있으며 충실하게 살면 곧 다시 만나 결코 헤어지지 않을 날이 온다는 사실에 기뻤다”(발행 원고 15, 210). 1859년 초, 또 다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화잇은 기쁨에 젖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가족을 만났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는 다시 가정에서의 자리를 찾았다. 집처럼 소중한 곳이 없다”(원고 5, 1859.).
재림교인인 우리는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들과 영원히 함께할 영광의 그날을 고대하고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원상/김수경 선교사 부부(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 미래 지도자 양성과 장학 사업 확대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