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월요일 장년 교과] 무덤의 권세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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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들은 잠시 후면 사라져 버릴 세상의 부와 명예를 의지하고 살아가지만 지혜로운 자들은 세상의 것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바라본다.

시편 49편을 읽어 보라. 무엇이 시편 기자로 하여금 부활의 소망 없이 죽는 자들과 달리 자신의 최종적인 부활에 대하여 확신을 갖게 했는가?

시편 49편은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며(시 49:6),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며(시 49:11), 자기 자신들의 유익만을 위해 사는(시 49:18) 어리석은 자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확신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의 집과 영광이 영원할 것인 양 착각하며 살아간다(시 49:11, 17).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그들의 영예가 사라지며, 그들 또한 짐승들과 같이 멸망하리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시 49:12).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시 49:14).
수 세기 전 욥이 말했던 것과 같이 그들 또한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욥 1:21, 딤전 6:7). 시편 기자는 어리석은 자나 지혜로운 자나 할 것 없이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시 49:10) 떠날 것임을 지적한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한쪽에는 스쳐 지나가는 재물과 업적에서 확신을 찾으려고 하지만 결국 멸망하게 되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다. 반대로, 지혜로운 자들은 인간이 이루어 낸 것들과 무덤이라는 감옥 너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준비하신 영광스러운 상급을 본다(벧전 1:4). 시편 기자는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확실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로다”(시 49:15).
이 말씀은 시편 기자의 영혼이 죽는 순간 하늘로 올라간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소망에 관한 구약의 다른 구절들과 일치하는 표현이다. 시편 기자는 단순하게 자신이 무덤에 영원히 머무르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나님께서 죽음에서부터 자신을 구원하시어 하늘 궁정으로 데리고 가실 때가 올 것이었다.

<묵상>
자신들의 부와 업적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십자가에 시선을 고정하며 사는 것이 그들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우리를 어떻게 보호해 주나요?

(이어서) 다시 한 번 소망과 확신을 주며, 현재의 삶에 의미를 더해 주는 미래의 부활에 관한 확실성이 묘사되었다. 지혜로운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 이 땅에서의 짧은 생애 동안 자신들을 위해 거둬들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영광스럽고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교훈>
어리석은 자들은 잠시 후면 사라져 버릴 세상의 부와 명예를 의지하고 살아가지만 지혜로운 자들은 세상의 것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바라본다.

<적용>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자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혜로운 자의 길을 걷게 해달라고 기도해 보세요.

<영감의 교훈>
소망은 인내로 버티게 해 줌 – “우리들의 가장 간절했던 소망이 가끔 꺾이는 때가 있다. … 우리는 영원히 잠든 저들의 눈을 감겨주며 무덤에서 장사하고 다시는 저들을 못 보게 된다. 그러나 소망은 우리들의 정신을 버티게 한다.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 안에서 잠든 사랑하는 식구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저들은 원수의 땅에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2권, 260)

<기도>
세상의 부와 명예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것들을 향한 욕심을 내려놓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나라에 저를 위해 준비해 놓으신 것들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며 그것들에 참된 소망을 두고 살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