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9일 월요일 장년 교과] 죽음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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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기자는 고난 중에도 치유보다 용서가 먼저 필요한 것을 알았다. 그것이 그분의 주권 가운데 온 것이면 은혜 또한 주실 것을 믿고 주께 간절히 기도했다.

시편 41:1~4, 88:3~12, 102:3~5, 11, 23, 24을 읽어 보라. 이 구절들은 어떤 경험을 묘사하고 있는가? 그대는 이곳에 언급된 내용의 어떤 점을 공감할 수 있는가?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간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들도 이 세상의 고통에서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시편 기자는 끔찍한 고통을 말한다. 그는 힘이 없고, 풀처럼 시들고, 먹지 못하고, 죽은 자들과 함께 취급되고, 무덤에 죽은 자처럼 누워 있으며, 친구들에게 어떠한 동정도 받지 못하고,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다. 그는 야위어 뼈가 피부에 달라붙어 있다.
많은 시편은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에 주께서 고난을 허락하셨다고 말한다. 죄가 질병을 가져온 것을 알고 있기에 시편 기자는 치유보다 용서를 먼저 말한다(시 41:3, 4). 그러나 시편 88편과 시편 102편과 같은 일부 시편은 이해할 수 없는 무고한 하나님의 백성의 고통 또한 엄연한 현실임을 인정하고 있다.
시편 88편은 기자를 죽음 직전까지 이르게 한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고 말한다(시 88:6~8). 그러나 주님이 그 주권으로 고난을 허락하신 것이라면 평안하게 회복하시는 것 또한 그분의 주권 아래 있으므로 대담한 불평을 쏟아 낸다고 하더라도 이런 탄식 또한 분명 믿음의 행위라는 점에 유의하자.
시편 기자는 무덤의 문턱에서 하나님의 경이로우심과 인자하심, 신실하심과 의로우심을 기억한다(시 88:10~12).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고통을 허락하신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 매달린다. 그는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하지 않으며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임을 알고 있다. 이러한 간구는 시편 기자가 고난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도 개인적이고 생생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이어서) 고난과 은혜는 무조건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고난을 허용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구원도 모두 그분의 궁극적인 주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역경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소망을 싹트게 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고난에 비추어 시편 88편을 읽을 때, 우리는 인류를 대신해서 기꺼이 죽음의 문으로 들어가셨던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에 경외감을 느낀다.

<교훈> 시편 기자는 고난 중에도 치유보다 용서가 먼저 필요한 것을 알았다. 그것이 그분의 주권 가운데 온 것이면 은혜 또한 주실 것을 믿고 주께 간절히 기도했다.

<묵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그분이 죄로 인해 겪으신 고난을 생각해 보십시오.

<적용>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셨다는 사실이 고난과 시련의 시간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영감의 교훈>
죄는 고난을, 순종은 치유를 가져옴 ~ “그리스도의 시련과 고난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인간의 죄가 얼마나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인간으로 그 율법에 대하여 회개하게 하며 순종하게 하고 또한 그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게 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의를 인간에게 전가(轉嫁)하여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도덕적인 수준으로 향상, 시키심으로 거룩한 율법을 지키려는 인간의 노력이 가납되게 하셨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73).

<기도> 고난이 가득함으로 더 기도하였던 선조들을 본받기를 원합니다. 고난의 시간이 힘겹지만, 이 또한 주께서 역사하시는 계기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모난 성품,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게 도와주시고 주의 은혜를 의지하고 감사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