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0일 수요일 장년 교과] 절망에서 소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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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으로 시작했다가 주님의 신실하심과 은혜를 경험하며 신뢰하고 변화되는 시편의 기록은 우리의 삶에서도 성령을 통해 경험하고 나타나야 할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아주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을 것이다. 때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시편 기자들도 분명 비슷한 일을 겪었다. 물론 내가 지은 죄 때문에 시련이 불가피한 것 같은 경우도 있지만,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시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때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누가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았겠는가?

시편 13편을 읽어 보라. 이 시편에서 어떤 두 가지 중요한 분위기를 분별할 수 있는가? 시편 기자의 전반적인 견해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결정은 무엇인가?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시 13:1). 비록 그 표현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누군들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았겠는가? 하나님, 정말 나를 잊으신 것입니까?
그러므로 시편 13편은 기도할 때 저지르는 또 다른 흔한 실수인 자신과 나의 문제에만 집중하는 실수를 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시편은 당신의 백성을 신실하고 변함없이 대하시는 하나님의 본성을 다시 확인해 우리의 기도를 바꾸게 한다.
애통과 불평으로 시작했지만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시편은 의도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신뢰하도록 이끌어(시 13:5), 두려움과 불안(시 13:1~4)이 점차 하나님의 구원으로 변하고 애통에서 찬양으로, 절망에서 소망으로의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시 13:5, 6).
그러나 시편 말씀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시편을 활용함으로 얻을 수 있는 본래 의도된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시편을 기도할 때 우리는 시편이 의도한 방법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

(이어서) 시편은 단순히 어떤 사실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자들의 인격과 행동을 변화시킨다. 시편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시편의 약속은 신자들의 삶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형성하게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보이시고 시편의 기도를 하셨던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의미이다.

<교훈> 애통으로 시작했다가 주님의 신실하심과 은혜를 경험하며 신뢰하고 변화되는 시편의 기록은 우리의 삶에서도 성령을 통해 경험하고 나타나야 할 일이다.

<묵상> 우리는 시련을 겪으면서도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습니까?

<적용> 시련이 어떻게 당신을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어떻게 주의할 때 이런 일을 넘어설 수 있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놀랍고 긍휼이 많은 사랑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소망 없고 타락한 상태에서 멸망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았다. 그분은 그들의 구원을 위해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 입히시고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아담이 실족한 땅을 건너가셨으며, 아담이 감당하는 데 실패한 시험을 이기셨다. 그분은 사탄의 모든 시험을 극복하셨으며 이렇게 해서 아담의 배은망덕한 실패와 타락을 구속하셨다”(교회증언 4권, 293).

<기도>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립니다. 마음을 누르는 무거운 짐과 상처 가득한 문제들 가운에서 주님께 무릎을 꿇습니다. 우리의 문제에 시선을 고정하지 않게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