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미령 집사는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했다. 지난 삶의 궤적에서 어려울 때마다 함께 하신 하나님을 여전히 신뢰한다. 간혹 몰려오는 슬픔에 눈이 벌게지기도 했지만, 눈물만은 애써 삼켰다. 두 자녀를 위해서였다.
남편인 박승권 집사는 올 1월 발병 전까지 경기 안성의 한 공장에서 품질관리를 담당했다. 조선족이었기에 선입견이 작용할 수도 있었지만, 워낙 성실히 일했기에 안심하고 중책을 맡아 일할 수 있었다. 박 집사는 천성이 그랬다. 작은 흠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못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라도 어질러진 것이 있다면 정리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박 집사의 몸 한쪽이 이상했다. 잘 움직일 수 없었다. 마비가 온 것이다. 병원을 찾으니 뇌출혈이란 진단을 받았다. 여전히 열심히 일해야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은 왜 한꺼번에 오는 것일까. 어쩌면 사랑하는 아빠가 아파하는 모습 때문이었을까. 그 무렵 막내아이는 간질 증세를 보였다. 남편의 간호에 신경을 쏟아도 모자란데, 아이까지 아팠다. 너무도 큰 시련이었다. 열렸던 문이 쾅하고 닫힌 듯 답답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다른 문을 열어두셨다. 전라남도 진도에서 요양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앞길이 막막해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중국으로 돌아가도 뾰족한 수가 없었지만, 한국에서 박 집사 가족은 외국인이었으니 했던 선택이다.
진도에 내려오니 평화로운 환경에 박 집사도 곧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난 7월 그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쓰러져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지만, 최근까지도 의식이 없었다. 다행히 얼마 전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그러나 눈을 깜박이고 손가락을 까딱할 정도다. 그사이, 막내아이의 간질증세는 더 심해졌다. 함 집사가 아무리 굳게 맘을 먹어도 작은 체구의 여인이 견뎌내기엔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그러다 주영종 은퇴목사와 연락이 닿았다. 주 목사는 두 부부가 중국에 있을 때부터 인연이 있었다. 박 집사에게 침례를 베푼 이도 그였다. 그는 진도지역 교우들에게 간절히 도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어려움이 쉽게 나아지지 못했다. 주 목사는 20여 년 전 중국에서 보위부의 눈을 피해 가정집 자그마한 욕조에서 침례를 받았던 박 집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목숨을 걸고 침례를 받은 후 흔들림 없이 신앙을 지켜온 그가 지금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
함 집사는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중에도 수차례 눈시울을 붉혔다. 엄마의 시린 가슴을 아는 걸까. 아니면 울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대신 우는 것일까. 막내아이가 갑자기 엄마 품에 안겨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는 아이를 달랜 함 집사는 “언제나 길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신뢰한다”며 다시금 네 가족이 모여 함께 예배 드릴 날을 그렸다.
<재림마을>과 <재림신문> <아드라코리아>는 박승권 집사와 함미령 집사 가족을 돕기 위한 ‘사랑의 고리를 이어갑니다’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이들에게 기적 같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다시 건강한 웃음을 되찾을 수 있도록 성도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을 보내주십시오.
■ 박승권 집사 가족을 위한 ‘사랑의 고리’ 전용 계좌
우리은행 1005-502-054487(예금주: (사)아드라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