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참으로 그분의 마음을 바꾸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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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여호와께서 참으로 그분의 마음을 바꾸시는가?

뜻을 돌이키는 하나님의 개념은 창세전에 미리 당신의 뜻을 계획하신(사 51:16), 변함없으시며 영원하신 하나님(말 3:6)의 개념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출애굽기 32:14은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돌이켜 다른 결정을 하는 것을 말하는 여러 본문 중 하나다. 예컨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것(창 6:6)과 사울로 왕 삼은 것(삼상 15:11)을 “후회하”셨고,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후 예루살렘을 파멸하려 했던 생각을 “뉘우치셨”다(삼하 24:16).

금송아지 사건: 출애굽기 32:14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모세가 나눈 대화의 정점을 이룬다. 모세가 예상한 것보다 산에서 오래 지체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들의 지도자를 버리고 금송아지를 숭배함으로써 영적인 의미에서 애굽으로 돌아갔다(32: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고의적으로 언약을 깨뜨리고 조금 전에 하나님께 했던 엄숙한 약속을 잊어버렸다(19:8; 24:3). 산 정상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산발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송아지 숭배에 관한 일련의 장면들(32:7-9)을 보여 주고, 이스라엘을 파멸하겠다는 결정을 선언하셨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는 신실함을 지키고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다(32:10).

중재자 모세: 모세로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하신 이 초청은 아브라함과 부족장들에게 맺은 언약을 반향하며, 그 어구가 거의 동일하다(창 12:2; 17:20; 18:18; 21:18; 46:3). 그 초청은 하나님과 모세 사이의 대화의 결론을 그에 대한 믿음의 시험으로 돌려, 완고한 백성이 아닌 새로운 백성과 함께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라고 그에게 제안했다. 이와 함께 그것은 그가 산발치에서 배도하고 있는 백성들과 자신을 하나로 여기는지를 시험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존속해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을 제시함으로써 대응했으며(출 32:11-13), 결국 백성들을 대신하여 자신이 죄책을 짊어지겠다는 데까지 나아갔고, 이렇게 하여 자신을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메시야의 표상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단언(端言)을 하였다. 따라서 여호와께 그분의 결정을 돌이킬 수 있도록 확신을 준 것(32:14)은 모세의 논리력이 아니라, 그분이 자신의 백성을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놓을 수 있는 진정한 중재자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있었다.

“돌이키다”(repent)라는 말의 의미: 대부분의 현대 번역들은 이 구절에 나오는 중요한 동사 (“돌이키다”)의 언어학적 분석에 치중하여, 그것을 “그의 마음을 바꾸다”(신개정표준역), “마음을 늦추다”(신국제역), “단념하다”(유대인 출판 협회) 등으로 번역한다. 이 구절에서 사용된 이 동사의 문법적 형태를 보면, 히브리어 나함은 “유감스럽다, 동정하다, 슬픔을 겪다 등”을 의미할 수 있다. 이는 개인적인 상실과 관련된 감정을 조정하는 과정을 가리킬 수 있는데, 이것은 자주 하나님(사 40:1; 49:13)이나 인간(창 24:67; 37:35)에게 받은 위로를 통해서 온다. 몇몇 성경 본문에서 이 말은 인간의 회개를 가리키기도 한다(욥 42:6; 렘 31:19).

하나님께서 돌이키시는 이유: 히브리어 동사 나함이 하나님과 관련하여 구약에서 사용된 31번의 용례 중 약 3분의 1이 인간의 행동에 대한 반응으로 하나님이 뜻을 바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불가피하게 자신의 계획을 바꿔 홍수를 불러오게 만든 것(창 6:5)은 사람들의 사악함 때문이었다(창 6:6). 사울이 하나님께 등을 돌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행동을 바꾸실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 결과 사무엘로 새로운 왕을 찾으라고 요청했다(삼상 15:11). 그러나 같은 장에서(15장), 하나님의 불변하심 또한 특별하게 강조된다(29절). 니느웨와 관련된 요나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욘 3:9, 10; 4:2),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회개를 보고 심판의 집행을 보류하시기도 한다. 다윗의 인구 조사로 인해 천사가 예루살렘을 파멸하려는 것을 늦춘 것처럼(삼하 24:25),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바꾸시도록 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인간 편에서의 간구 혹은 중재이다. 이런 경우는 모세가 이스라엘을 위해 간구함으로써 백성들이 용서 받은 것에 나타난다(출 32:14).

하나님의 심판의 조건성: 하나님의 결정이 때때로 인간의 회개에 달려 있다는 개념은 예레미야 18:5-10에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하나님은 인간의 반응을 보고 열국에 대한 그분의 뜻을 바꾸신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회개를 묘사하는 주요 히브리어 단어 슈브(“뉘우치다, 돌아가다, 돌이키다 등”; 참조 겔 14:6)는 이런 종류의 문맥에서는 하나님께 적용된 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인간적 관점 곧 그분이 어떤  실수나 도덕적 허물이 있기 때문에 돌이키시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맘을 돌릴 수도 있고(슈브; 슥 1:3), 그분의 진노를 한 사람으로부터 돌이킬 수도 있다(슈브; 호 14:4)).

인간의 회개와 하나님의 돌이킴의 차이: 성경은 때때로 신인동성동형론적으로 말한다. 다시 말해서, 성경은 인간의 용어를 빌어 하나님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런 용어를 사용할 때는 그런 표현과 하나님의 본질이 반드시 동일하진 않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인간의 회개(“돌이킴”)는 언제나 죄를 지은 후에 오지만,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는 것은 인간의 죄나 인간의 회개 또는 인간의 중재 후에도 올 수 있다. 인간의 회개의 결과는 품성과 삶의 방식이 하나님을 향해 움직여 가는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돌이키심으로써 인간의 요소를 구속에 관한 그분의 전반적인 계획과의 새로운 통합으로 이끈다. “하나님의 후회[돌이킴]와 인간의 후회[회개]는 같지 아니하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삼상 15:29). 인간의 후회는 마음의 변화를 의미하고 하나님의 후회는 환경과 관계의 변화를 의미한다”(부조와 선지자, 630).


  

Martin G. Klingbe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