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비결,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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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대화가 되지 않아요!”, “왜 우리 집 아이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요?”, “우리 엄마, 아빠는 말이 잘 안 통해요!”, “집에 오면 답답한 감옥에 들어온 것 같아요!” 상담실에 오는 분들이 자주 하는 단골 멘트입니다. 어떤 사람과는 대화할 때에 내가 말하지 않은 부분까지도 캐치 해서 속이 후련하면서 답답한 게 뻥 뚫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과 대화할 때는 오히려 자기가 듣고 싶은 부분만 골라 듣고 자기 방식대로만 생각해서 오해가 증폭되기 때문에 속이 더 답답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며, 내 마음을 잘 전달하면서 사는 것은 우리에게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은 병에 걸릴 확률이 35%나 높고 수명이 4년 단축되었습니다. 반대로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하는 사람은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더 오래 살고 병에 걸릴 확률도 낮았습니다. 가트맨 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스포츠센터에서 체력 증진을 위해 보내는 시간 중 10%를 결혼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데 쏟아부으면 운동하는 것보다 세 배의 면역력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좋은 대화가 좋은 관계를 만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가족끼리 좋은 대화를 하지 못하고 사는 걸까요? 데이트하던 시절 긴 대화를 했음에도 헤어지는 시간이 안타까워 집에 와서도 전화기를 붙들고 별것 아닌 대화로 밤을 지새우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과 결혼해서 공통된 경험과 추억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기간이 오래될수록 대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왜 그럴까요? 왜 서로 대화를 안 하고 사시냐고 물으면 말 안 해도 서로 다 안다고 하십니다. 정말 우리가 서로를 잘 알고 있을까요?

공감 정확도
오랜 기간 함께 생활해 온 부부들은 함께 공유하는 정보가 많으니 더 깊이 서로에게 공감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얼마나 정확하게 추측하는지를 나타내는 정도를 공감 정확도(empathic accuracy)라고 합니다. 공감 정확도는 낯선 사람과 있을 때보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 당연히 높게 나옵니다. 오래 산 부부는 어떨까요? 뉴질랜드의 심리학자 지오프 토머스와 그의 동료들은 캔터베리 지역에 살고 있는 80쌍이 넘는 부부를 초청해 인간관계 문제를 토론하게 하고 그 과정을 녹화하였습니다. 부부는 각기 다른 방에서 녹화된 영상을 보며 자신이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영상을 본 후 상대방이 느꼈을 감정과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비교했습니다. 내가 토론 상황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이 배우자가 추측한 것과 얼마나 잘 맞는지를 확인한 것입니다. 오래 산 만큼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꽤 정확하게 맞췄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결혼 지속 기간이 길수록 공감 정확도가 오히려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공감도가 약해지는 이유
사실 우리는 서로를 잘 안다고 철석같이 믿었지만 착각 속에서 살아온 것입니다. 사회심리학자 클리퍼스 스웬슨과 그 동료들은 발표한 논문을 통해 미국인 부부들도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일수록 서로를 더 모르며, 서로의 감정과 태도 그리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예측하는 정도가 더 떨어진다고 보고했습니다. 더욱 서글픈 사실은 결혼한 지 오래된 부부들은 서로에 대한 공감 정확도가 감소된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상대방을 잘 알고 있다고 믿고서 습관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오래된 부부들은 친밀한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진정으로 나누기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고정 관념과 선입견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서 계속 변하는 존재인데 결혼 초기에 형성된 배우자에 대한 고정 관념을 버리지 못한 채 상대방을 더 이상 알려고 노력하지 않기에 친밀한 의사소통은 점차 줄어듭니다. 이로 인해 서로에 대한 이해는 점점 더 부정확해지고, 오해는 더 쌓여 가며 결국 답답한 마음으로 속으로는 포기한 채 그저 살아가는 삶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결혼 초기에는 부부들이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읽으려고 각별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를 이미 잘 안다는 생각 때문에 상대방을 알려고 하는 노력이 더 이상 불필요한 것이라 여기게 되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 속에 담긴 진짜 속마음은 무엇일지 찾고자 하는 노력과 적극적 관찰을 시도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반사적인 반응이 많아집니다. 상대방이 보이는 반사적인 반응에 지친 부부들은 “내가 저 사람하고 이야기하느니 차라리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게 낫지!”라고들 합니다. 대화가 끊어진 사람과 가까이 있는 것보다 더 큰 고독은 없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날 때 일어나는 일
갈등 없는 부부와 가족은 없습니다. 그러나 갈등 상황을 대화로 잘 풀어내는 가족은 그 갈등이 오히려 부부 사이를 더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지만, 갈등을 대화로 잘 풀어내지 못하는 가족은 더 깊은 문제 속에 갇히게 됩니다. 소통이 안되는 이유는 서로 듣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혼자만의 생각과 감정을 일방적으로 쏟아 놓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입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니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겠거니 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우리 문화는 가족 동일체 의식이 팽배해서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아는 것이 화목한 가정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는 환상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자기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의 증인이 되어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가족 치료자 니콜스는 “오늘날 우리는 경청을 잃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대화할 때는 상대방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생각을 주입하려 하지 말고 상대방의 생각을 알아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상대방과 나는 다른 독립체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가족이니까 넌 내 생각을 따라야 해!”라는 마음으로 강요하게 되면 상대방에게 조언과 비판과 비난을 서슴지 않게 됩니다. 그러한 말은 가족에게 비수처럼 꽂힙니다. 가족은 어느 조직보다 흉허물이 없는 사이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보기 싫다고 안 볼 수도 없는 것이 또한 가족입니다. 그래서 가정은 천국도, 동시에 지옥도 될 수가 있습니다. 가정에서 맛본 천국과 지옥은 다른 인간관계에도 전이가 됩니다.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잘 이해하려 노력하고 애쓰는 부부일수록 더욱 행복하고, 결혼 생활에 만족한 부부일수록 자녀들의 생각과 감정도 정확하게 헤아리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자녀들은 그렇지 못한 자녀들보다 자아 존중감이 훨씬 더 높았습니다. 공감은 부부 관계뿐 아니라 자녀들과의 관계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오늘 가족을 향해 사랑의 눈길과 마음의 귀를 열고 관찰하면서 “너의 동기는 이것이었구나!”, “당신에게 이런 마음이 있었네!”라고 상대방의 마음과 생각을 읽어 주세요! 상대방은 곧바로 작은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국은 바로 가족인 여러분 자신의 천국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은 생명나무와 같아도 잔인한 말은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언 15장 4절).

전영숙
서중한합회 가정봉사부장, 부모 역할 훈련 전문가

가정과 건강 10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