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은 누구인가?

8098


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은 누구인가?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계 11:3, 4).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구약의 배경을 적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계시 속의 다른 많은 상징들과 마찬가지로 11장의 두 증인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위의 본문이 나온 구약의 배경은 스가랴 4장으로, 선지자가 꼭대기에 주발과 일곱 등잔이 있는 순금등대를 보았는데 일곱 관이 주발에서부터 등잔으로 연결돼 있다. 두 감람나무가 등대의 좌우에 서 있는데, 이 나무들이 중앙의 주발에 기름을 공급하고 다시 주발에서 일곱 등잔으로 기름이 공급된다.


스가랴에 나온 등대:

스가랴의 이상은 요한계시록 11장에 몇 가지 방법으로 조정되어 사용되었다. 스가랴 4:2에는 등대가 하나 있는 대신 요한계시록 11:4에는 두 개가 있고, 두 등대와 두 감람나무는 모두 두 증인을 나타낸다. 스가랴 4장에서 선지자는 수행하는 천사에게 두 감람나무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물었고, 천사는 “기름 발린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라고 대답했다(14절). “기름 발린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기름의 아들들”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 곧 특별한 기능을 위해 성별된 자들을 의미한다. 이 특별한 기능이 무엇인지는, 선지자가 등대와 두 감람나무가 누구를 나타내는지 물었을 때 천사가 준 첫 번째 대답(4절)에 비추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6절)는 말을 들었다. 다시 말하면, 두 감람나무에서 나오는 기름에 의하여 빛을 발하는 등대는 인간의 힘이나 능력에 반대되는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통해 위탁 받은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종들을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은 그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곧 선지자의 계시를 통해 그에게 전달된 능력 곧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에 의지하였다.


요한계시록의 두 증인은 구약과 신약임:

스가랴의 이상에는 하나의 등대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냈다. 그러나 요한이 이상을 받은 시대에는 두 개의 등대가 나타난다. 등대가 하나가 아니고 둘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등대는 기름을 공급하는 두 감람나무와 동일하게 여겨지므로 이 둘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이런 흥미 있는 특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푸는 열쇠는 상당 부분 넓은 문맥 곧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두 증인에 관한 요한의 신학과 연관돼 있다. 요한은 신명기 19:15에 표현된 성경적 원칙을 따르고 있다.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이 원칙은 바울(고후 13:1; 딤전 5:19; 히 10:28)뿐 아니라 예수님(마 18:16)에 의해서도 적용되었다. 요한계시록 전반을 통하여 요한이 인용하는 두 증인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이다. 이 두 증인은 요한이 받은 계시의 내용으로 요한계시록 1:2에 처음 나온다. 1:9에서 요한이 “형제요 예수의[예수 안에 있는]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로서 밧모 섬에 있게 된 것
이 두 증인 때문이었다고 진술하는데, 이는 이 두 증인이 예수와 관계된 것이므로 그가 이 둘을 위해 기꺼이 환란을 당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전달된 계시를 나타내고, 예수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비추어 구약의 계시를 보충하고 확실하게 밝히는 예수님 및 신약의 사도와 선지자들을 나타낸다. 진리를 증거하는 이 두 증인은 요한계시록 11장에서 하나의 단위로 함께 나온다. 이들이 죽임을 당한 것을 말할 때(8절), 본문이 9절 하단에서 헬라어로 복수인 “시체들”로 되돌아가기 전에 8절과 9절 상단에서 단수인 “시체”를 사용했는데, 이는 이 두 증인이 하나의 단위로 여겨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두 증인의 활동:

한 쪽 증인의 모든 특징은 다른 쪽 증인과 같고, 한쪽 증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다른 쪽 증인에게도 일어난다. 이들은 베옷을 입고 1,260일 동안 예언한 선지자(11:3, 6, 10)로, 여기서 베옷은 어둠(계 6:12; 사 50:3), 애통과 슬픔(겔 27:31; 욜 1:8, 13), 곤란과 책벌과 능욕(왕하 19:1, 2), 겸비와 회개(대하 21:16, 17; 마 11:21) 등을 상징한다. 앞 절(11:2)과의 시간상의 평행은 같은 시기 동안에 거룩한 성이 짓밟힌 것에 대한 애곡과 슬픔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게다가, 이 두 증인이 빛을 내는 기능을 가진 두 등대이므로(참조 시 119:130; 요 1:9), 베옷은 베옷으로 가리는 것처럼 빛을 어둡게 하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 그들이 예언한 것에 대한 반응 곧 그들이 죽임을 당하고 그들이 죽은 것을 기뻐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베옷은 그들의 기별이 거절당함으로써 곤란과 책벌과 능욕을 겪고 있었음을 나타낼 수 있다. 이런 묘사는 예언의 말씀이 효과적이고 힘 있게 전파되지 못한 때를 말하고 있다. 이는 흔히 종교암흑시대 곧 1,260일 또는 42달이라는 예언적 기간으로 대표되는 시기의 특징이었다(계 11:2, 3; 참조 12:6, 14; 13:5; 단 7:25; 12!
:7).[1]


두 증인을 이해함:

요한계시록 11:5∼8에 주어진 단서들을 살펴보면 두 증인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누구든지 두 증인에게 해를 끼치려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대적들을 삼킨다고 5절은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선지자 엘리야를 가리킨다고 보지만, 예레미야 5:14을 언급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그들의 입에서 대적들을 삼키는 불처럼 나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과 평행을 이루는 요한계시록의 상징에서 예수님이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는데(1:16), 그분이 그 검으로 만국을 칠 것이다(19:15, 21). 이 검은 하나님의 말씀(히 4:2), 곧 그분의 입에 있는 예수의 증거(계 19:13에서 그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림)를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입에 있는 이 검 곧 말씀이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


두 증인의 권세:

요한계시록 11:6은 두 증인이 구약 선지자들 중에 가장 큰 자인 모세 및 엘리야와 같은 권세를 가진 것으로 묘사한다. 이들도 엘리야처럼 하늘을 막아 자신들이 예언하는 동안에 비가 내리지 않도록 하는 권세가 있으며, 모세처럼 강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그들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온갖 재앙으로 땅을 칠 수 있는 권세가 있다. 이런 상징적 언어의 사용은 이 두 증인이 실제 모세나 엘리야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들이 고대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과 같은 권세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이 베옷을 입고 예언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권세가 약함을 비추는 말은 전혀 없다. 외적 환경이 이 예언의 말씀의 성격이나 권위를 바꾸지 못했다.


두 증인의 죽음:

요한계시록 11:7에 의하면, 두 증인이 그들의 증거를 마쳤을 때, 다시 말해서 그들이 예언한 1,260년 기간이 다해갈 때 무저갱으로부터 나온 짐승(참조 17:8)이 그들을 공격하여 짓밟고 죽였다. 5절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놀라운 사건이다. 왜냐하면 5절은 두 증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든지 그들의 입에서 나온 불로 죽임을 당할 것(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받음)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운명은 요한계시록 20:7∼15이 계속하여 말하는 대로 두 증인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에게 닥칠 일이다. 사단과 모든 악인들은 흰 보좌 앞 심판대에 선 후에 불 못에서 태워질 것이다.

1일=1년 원칙에 따르면,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해 큰 성의 거리에 놓여 있던 기간인 3일 반(계 11:9)은 3년 반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7절의 짐승이 특히 반종교적 편견을 가졌다는 점에서 프랑스 제1 공화국 정부(1792∼1804년)를 나타낸다고 이해하는 재림교인들은 무신론이 극에 달했던 프랑스 혁명 역사 중에서 짧은 기간 동안에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본다. 이 기간은 파리에서 종교를 폐지하라는 법령이 발령된 1793년 11월 10일부터 프랑스 정부가 종교행위에 대한 금령을 해제한 것으로 여겨지는 1797년 6월 17일까지로 산정될 수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7권, 803).

요한계시록 11:8은 상징적으로 소돔과 애굽으로 불린 큰 성 곧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곳의 거리에 두 증인의 시체(헬라어로 단수)가 놓여 있다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에는 두 개의 성 곧 큰 성과 거룩한 성이 있다. 큰 성은 큰 음녀라고 묘사돼 있고, 거룩한 성은 어린 양의 신부라 불린다. 앞의 성은 보통 바벨론이라 불리고, 뒤의 성은 새 예루살렘이라 불린다. 요한계시록의 여기서 처음으로 언급되는 큰 성은 상징적으로 소돔과 애굽으로 불린다. 소돔은 번영, 방종, 오만방자, 사악, 부도덕, 영적 무관심, 불친절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겔 16:49, 50; 벧후 2:6∼8; 유 7절). 애굽은 우월감, 오만방자, 압제, 하늘의 하나님을 거절함, 바로를 포함한 많은 피조물 숭배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출 5:2; 렘 43:12, 13; 46:8, 25; 겔 20:7; 23:3, 8, 27; 29:3; 30:13; 32:12; 욜 3:19; 미 6:4). 큰 성은 하나님께 반역을 자행하고 그분의 증인들을 압제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고 멸시를 당한다.


두 증인의 부활:

본문은 큰 성이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계 11:8)이라고 말함으로써 두 증인이 살아 있을 때처럼 죽을 때도 저들의 주님을 따른다고 말한다. 두 증인이 충성되고 진실한 증인이신 저들의 주님의 발자국을 따른 다른 길들을 언급하는 나머지 구절에서 이런 사실이 강화된다. 그들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을 때도 세상에 의해 멸시를 당한다(계 11:9, 10). 그들은 3일 반 후에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받는데, 세상은 놀라서 구경한다(11절). 그들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대적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된다(12절). 그들의 부활 후에 큰 지진이 뒤따르므로 대적들이 놀라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13절). 역사적으로 말해서, 두 증인의 죽음 및 부활은 프랑스 대혁명 때 무신론이 극에 달하고 종교가 폐지되었을 때(1793년 11월 10일), 그리고 3년 반 후에(1797년 6월 17일) 프랑스 정부가 종교 행위에 대한 금령을 해제하고 19세기 초 여러 나라에서 성서공회가 설립되었을 때 성취되었다.


결론:

두 증인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과 예수의 증거 곧 구약과 신약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성령을 통하여 남겨두신 증인들이다. 이들은 마치 예수님처럼 곧은 증거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만, 부활하여 구름을 타고 승천함으로써 그들의 대적 앞에서 영광스럽게 된 그분의 발자국을 따른 선지자들로 묘사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요한과 그의 형제들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증인이 된 자들은 모두 예수의 경험 곧 부활, 승천 그리고 대적들 앞에서 받는 영광뿐 아니라 증거로 인하여 당하는 순교의 경험에도 동참할 각오를 해야 함을 뜻한다(계 1:2, 9; 6:9; 12:11, 17; 14:12; 17:6; 19:10; 20:4; 22:8).

Edwin Reynolds


<미주>

[1] 묵시적 예언에서 하루는 1년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