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ILL GO] 1000명선교사 58기 송원영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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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기 1000명선교사로 필리핀 민다나오의 오지에서 봉사하는 송원영 형제가 ‘드림스쿨’ 간판 앞에 섰다.
2020년 어느 안식일이었다. 55기 1000명선교사들이 강릉동부교회를 찾아 홍보활동을 펼쳤다. 방송실에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송원영 군은 ‘나도 1000명선교사에 도전해 볼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하지만 ‘이 나이에 무슨 해외선교사야?’라는 회의적인 마음이 들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사업을 도와드리며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던 때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화요일 저녁예배였다. 설교에서 요나의 이야기를 듣는데, 주변이 갑자기 깜깜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답답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선교사로 부르고 계시는데, 자신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둘러대며 도망만 다니는 듯했다.

예배 후, 담임목사님께 다짜고짜 “1000명선교사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마음이 흔들릴세라 집에 가는 길에 합회 청소년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지원을 신청했다. 그리고는 “지금 아니면 평생 도전하지 못할 것 같다”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사실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도 간간이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있었다. 그때마다 어쩌면 ‘일생에 한 번뿐인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이 밀려들면 ‘이런 나도 하나님께서 쓰시려 한다’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필리핀 민다나오의 리루판에서 만난 송원영 형제. 그의 이름 앞에는 이제 ‘58기 1000명선교사’라는 수식이 붙는다. 다른 사람과 가장 뚜렷하게 구별하는 정체성이기도 하다. 현재 필리핀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한인 1000명선교사다. 선교지는 카가얀데오로 시내에서 자동차로 약 1시간30분 떨어진 오지마을. 열대 우림이 끝없이 펼쳐진 고산지대인데다, 핸드폰 신호도 잡히지 않는다. 아직도 나무 위에 집을 짓거나 상수도 시설이 없어 강물을 길어다 먹는 척박한 곳이다.

한국의 한 독지가가 배움이 고픈 아이들을 위해 세운 ‘드림스쿨 직업학교’에서 현지인 동료 선교사와 함께 짝을 이뤄 봉사한다. 학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운영을 중단하면서 최근에는 건강요양원으로 용도를 변경하려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한글공부방, 건강세미나, 패스파인더캠프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물론 말씀묵상이나 집집방문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다. 때때로 마을의 일손을 돕기도 한다.

그는 1000명선교사에 지원할 즈음을 돌아보며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였다”고 했다. 신학과를 졸업한 후 목회에 지원하든, 사회에 진출하든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한 시기였다. 결정을 앞두고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하나님께서 왜 본인을 이곳으로 보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아마도 나를 더 살리고 싶으셨나 보다”라며 껄껄 웃는다. 세상과 단절된 곳에서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길 바라시지 않으셨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직접 경험한 1000명선교사는 꽤 힘들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무척 외롭다(이 마을은 영어나 타갈로그어가 아닌, 비사야어를 쓴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자주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도 심리적 고단함을 부추긴다. 충분히 의사소통을 나눌 수 없어 가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욕심만큼 전할 수 없을 때면 선교사로서 무력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이곳까지 온 목적을 되새긴다. 그나마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에서 위안을 받는다.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아도 예수님과 성경말씀을 배우려 귀를 쫑긋 세우는 구도자들을 만날 때면 보람차다. 매주 안식일마다 어김없이 교회를 찾는 30여  명의 성도들을 만날 때면 힘이 절로 솟는다. 모두가 고맙고 따뜻하다.

내년 1월이면 리루판을 떠나야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있는 동안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우선 한글공부방에 출석하는 아이들에게 우리 말을 더 잘 가르치고 싶다. 무엇보다 이 마을 50여 가구의 가정을 모두 방문해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야 한다. 집들이 산속 깊은 곳에, 넓게 퍼져 있어 모두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들과 헤어질 때면 “한국인 선교사가 우리 마을에 있어서, 우리 집에 와서 참 좋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마침 오는 11월에는 자신이 출석하던 강릉지구에서 단기봉사대가 오기로 했다. 그동안 한글을 가르쳤던 아이들과 봉사대원을 1:1로 매칭해 전도활동과 연계하려 한다. 아직 다 하지 못한 가정방문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나눠야 한다. 여력이 닿으면 이웃마을까지 사역의 지경을 넓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분이 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지 알려주고 싶다. 남은 기간 동안 이곳에서 이루고 싶은 계획이자, 자신의 마지막 역할이다.

비가 내린 선교지의 비포장도로는 곳곳이 움푹움푹 패이고, 진창이 되어 어디부터 발을 디뎌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그 길을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내려가니 겨우 지푸니가 오가는 룸비아라는 마을이 나왔다. 그제야 핸드폰의 통화가능 시그널이 켜졌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이런 곳에도 복음을 전하는 이가 있다고 생각하니 사뭇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 주인공이 한국인 재림청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