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내 백성이 멸망할 때에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애 4:10).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예레미야 애가 4장은 1장과 2장처럼 ‘슬프다’로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이스라엘에게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성소의 돌들과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 곧 하나님의 성소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순금에 비교되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의 집인 성소는 무너질 수 없었고,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신분과 지위는 취소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소가 무너져 돌들이 거리 어귀에서 굴러다니며 순금 같았던 하나님의 자녀들은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처럼 되는 가치 하락이 일어났다고 말씀하십니다(1, 2절).
소돔은 고모라와 함께 노아 홍수 이후 처음으로 도시 전체가 하나님의 심판으로 지상에서 사라질 만큼 범죄한 도시였습니다. 소돔과 하나님의 백성은 대조의 대상이라면 몰라도 같은 부류로 묶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악보다 무겁도다”(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이렇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이유는 하나님 쪽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 일을 주동한 자들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 즉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기에 백성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우상 숭배와 같은, 백성들이 원하는 일을 하며 이 일을 반대하는 의인들의 피를 흘렸습니다(13절). 백성들도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기에 하나님을 따르는 의인들을 죽이는 일에 동참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지도자들을 따랐습니다.
지도자와 백성은 서로 영향을 미치는 존재들입니다. 목회자들은 그릇된 신학으로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해 성도와 교회를 타락시킬 수 있습니다. 교인들도 잘못된 영적 욕구를 가지고 목회자를 타락시킬 수 있습니다. 지도자와 백성, 목회자와 교인들은 한 방향, 곧 우리 주님을 먼저 바라보고 그런 다음에 서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순서가 반대로 되면 우리는 주님을 우리의 욕망을 실현해 줄 하나의 종교적 산물로만 여기고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종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18절).
기도)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