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두려워하지 않다
이 시는 다윗이 “추적을 받고 도망하는 신세가 되어 들의 바위틈과 굴 속에서 피난처를 찾을 때에” 쓴 시입니다(교육, 164). 그런데 도망자 다윗은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빛과 구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1절).
특히 그는 하나님을 빛으로 말하는데, 구약에서 이렇게 말하는 구절은 이곳이 거의 유일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하셨고, “나의 평안”을 줄 것이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그 빛이신 분을 알았기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빛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그를 매사에 구원하셨음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4절).
히브리 원문은 “한 가지 일”을 문장 맨 앞에 두어 그 의미를 강조하였습니다. 또 “바라는”이라는 말은 완료시제로서 다윗이 이 “한 가지 일”을 과거로부터 계속 바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구하리니”는 미완료 시제인데, “바라는”과 “구하리니”를 연결해 해석해보면, 다윗은 ‘한 가지 일’을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 구하여 왔으며 앞으로도 이를 계속해서 구할 것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로 보아서 다윗이 원하는 과거, 현재, 미래의 ‘한 가지 일’은 평생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그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학자들은 “아름다움”을 성소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이해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도망자 다윗이 하나님을 빛이라고 말한 연유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는 성소에서 영광으로 빛나는 하나님이 도망하는 자신과 함께하며 구원하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평생의 소원은 그 아름다운 영광의 하나님을 성소에서 매일 보는 것이 되었습니다.
또,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세상의 빛으로 소개할 때, 그 빛은 하늘 성소의 영광이었습니다. 그 빛을 보고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바라는 한 가지 일”은 하늘 성전에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매일 바라보는 것이 될 것입니다.
기도) 주님의 아름다움을 매일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