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동물의 피를 제물로 드린 반면, 가인은 자기의 노력으로 얻은 땅의 소산만을 제물로 바침으로 공개적인 불순종을 나타냈다.
가인과 아벨의 차이점은 그들의 성격에만 국한되지 않고 직업에서도 나타났다. 가인은 육체적인 노동을 요구하는 “농사하는 자”(창 4:2)였고, 아벨은 세심함과 동정심을 필요로 하는 “양 치는 자”(창 4:2)였다.
가인은 땅에서 나는 열매를 수확하는 자였고, 아벨은 양을 돌보는 자였다. 이들의 직업은 그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가인은 땅의 소산을 드렸고 아벨은 양을 드렸음)의 성격을 설명할 뿐 아니라, 두 제물과 연관된 심리적 태도와 정신을 나타내 보여 준다. 가인은 땅의 소산을 ‘얻기’ 위해 일했고, 아벨은 그가 받은 양들을 ‘보살폈다.’
창세기 4:1~5과 히브리서 11:4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거절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가인과 아벨)은 가축의 초태생을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 약속된 속죄인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나타내야 할 것이었다. 이것들 외에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감사 제물로 주 앞에 바쳐야 할 것이었다”(부조와 선지자, 71).
아벨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동물로 된 제물에 더해 채소로 된 제물을 드린 반면, 가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희생 제물로 바칠 동물을 가져오지 않고 오직 “땅의 소산”만을 제물로 드렸다. 이것은 그의 동생의 태도와 대조되는 공개적인 불순종이었다. 이 이야기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아벨과 그가 피로 드린 제물)과 행함으로 말미암는 구원(가인과 그가 드린 땅의 소산)의 대표적인 예로 여겨진다.
<묵상>
미가 6:7과 이사야 1:11을 읽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이 성경절들에 나타난 원칙을 우리들의 삶과 예배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이어서) 물론 이 제물들이 가지고 있던 영적 중요성이 있지만, 그 제물 자체에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죄인들의 물리적인 필요를 채우시는 것은 물론 구원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상징과 이미지에 불과했다.
<교훈>
아벨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동물의 피를 제물로 드린 반면, 가인은 자기의 노력으로 얻은 땅의 소산만을 제물로 바침으로 공개적인 불순종을 나타냈다.
<적용>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순종하라고 요구하시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명령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피는 하나님의 어린양에 대한 예표 – “즉 가인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제물만 가지고 왔다. 그는 죄를 고백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자비의 필요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벨은 하나님의 어린양을 예표하는 피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나올 때에 자기 자신이 죄인이며 잃어버린 바 되었다는 것을 자복하였다. 그의 유일한 소망은 공로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었다. 주께서는 아벨의 제물은 돌아보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돌아보지 아니하셨다”(실물교훈, 152).
<기도>
아무리 선한 일처럼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과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단호하게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심하는 하늘 백성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