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수요일 장년 교과]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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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는 우리의 행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히브리서 13:9, 2:9, 4:16과 히브리서 6:19, 20을 비교해 보라. 은혜는 어떻게 주어지는가?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굳세어지는가?

히브리서 13:9에서 다루고 있는 다른 교훈과 음식 사이의 관계는 정하고 부정한 음식의 구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왜 그런가?
첫째, 우리는 사도행전 15장을 통해 초기 기독교 교회가 신자들은 은혜로 구원을 받으며(행 15:7~11), 그들이 계속해서 일부 음식 규례들을 지켜야 한다는(행 15:19, 20)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음을 알고 있다.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구분하는 것과 그밖의 다른 성경적 규례들은 은혜와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새 언약이 하나님의 법을 우리 마음속에 기록해 두었다고 이야기한다(히 8:10~12). 그러나 저자가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은 동물의 제사와 성소에서의 레위 계통 제사장의 중보는 예수님의 더 나은 제사와 제사장의 중보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히 8:4, 5, 10:1~18).
둘째, 주어진 문맥에서 볼 때, 바울은 독자들이 특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혜택을 얻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히 13:9). 바울은 영적인 혜택 또는 은혜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성전에서 동물을 제물로 바치던 것의 연장선에서 진행되는 유대교 의식 또는 의식적 식사에 참여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은혜는 이와 같은 식사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제사장으로서의 중보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다. 믿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먹을 수 있는(요 6:47~58)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제단이 있”다(히 13:10).
히브리서에서 “은혜”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온다(히 4:16).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이 은혜는 하나님의 보좌에 단단히 매인 “튼튼하고 견고한” “닻”이다(히 6:19, 20, 비교, 히 4:16).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받는 이 은혜가 우리의 마음에 평안과 확신을 준다.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굳게” 되면, 다른 교훈에 “끌리”거나(히 13:9) 하나님으로부터 “떠내려가지” 않을 것이다(히 2:1).

<묵상>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을 묵상해 보십시오. 우리의 행위를 통해 그 희생에 무언가를 더하려고 하는 것이 왜 복음과 예수님 안에서 발견되는 은혜에 반대되는 것일까요?

우리의 구원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의 노력이 그 크신 은혜에 아무것도 더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11:5, 6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의 온전한 희생으로 얻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순종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훈>
은혜는 우리의 행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적용>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었을 때 어떻게 하시나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는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영감의 교훈>
은혜의 보좌로부터 도움을 구하라 – “신자들이 은혜의 보좌로부터 도움을 구하여 멸망의 문턱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큰 사업에 협력하는 한, 교회는 퇴보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살아 있고 활동적인 교회의 신자들은 저들이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있으며 주님과 함께 힘을 합하여 끌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17).

<기도>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합니다. 저의 행위로써 그 은혜에 무언가를 더하려는 어리석음을 멈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경험한 자로서 기쁨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