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공동체를 지키려면 5

101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신 21:6, 7).

번거로운 일

한 사람이 들에서 피살되었는데 살인자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피살된 곳의 가장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다 모입니다. 그 장로들은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물이 항상 흐르는 골짜기로 끌고 가서 목을 꺾습니다(16절). 그리고 그 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7절)라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은 제사장의 지도로 이루어집니다. 한 성읍의 지도자들이 총동원되는 이러한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성읍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죄를 제거하지 못합니다(8, 9절).

이런 것은 한 명의 무죄한 사람의 피살을 지나치지 않게 합니다. 그가 재수 없어서가 아니라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에 죽임을 당했다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공동체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마음대로 하지 말라

이스라엘 사람이 전쟁 포로 중에서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아내로 삼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그 여자가 자기 부모를 위해 한 달 동안 애곡한 다음에야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이 변심해도 그 여자를 종으로 보아서는 안 되었고 자유로이 가게 허락해야만 했습니다.

아내가 둘이 있는데 마음에 안 드는 아내의 아들이 장자이면 그에게서 장자의 권리를 빼앗으면 안 되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자신이 힘이 있다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1017절).

갑자기

그런데 갑자기 신명기 21장 22, 23절은 죽을 죄를 범한 죄인을 죽여서 나무에 다는 규정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23절)이라고 말합니다. 분명 최악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최악의 저주를 읽으며 나무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립니다. 그 순간 저주는 축복이 되고, 마음대로 살다가 죽을 운명인 나라는 이 한 영혼의 생명과 삶의 가치를 예수님이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건강한 신앙공동체는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허구에 불과함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저희도 주님과 주님이 사랑하는 한 영혼을 모두 귀히 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