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목요일 장년 교과] 하늘 도성을 정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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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바탕으로 약속된 최종적인 안식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난 일곱째 날 안식일을 대체하지 않는다.

히브리서 4장에 나타나는 핵심적인 내용의 논리적 전개는 특히 히 4:8~11을 읽어 보면 분명하게 나타난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지 못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시는 분이 아니시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남아 있는 “안식”이 분명 있다. 그 안식에 들어갈 사람들은 유대인 신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다. 그 속에는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모든 사람이 포함된다.

갈 3:26~29을 읽고 십자가 사건 이후에 등장하는 언약의 백성들의 특징들을 확인해 보라. 바울이 기록한 문맥 속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이가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히브리서 4장이 일곱째 날 안식일 준수를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종말에 또 다른 쉼이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이 말씀을 안식일의 쉼의 정당성을 반박하는 데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성경 본문의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하기에는 부족하다. 성경 본문은 하나님의 특별한 안식에 대한 종말적 초점이 창조의 때부터 이미 존재했으며 안식일의 쉼을 기념하는 것은 미래에 경험할 최종적인 안식을 작은 범위 안에서 매주 미리 맛보는 것임을 암시한다. 실제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다가올 세상(olam haba)에 대한 작은 전조로 여겨졌다.
지구 역사의 첫 번째 안식일에서부터 약속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남아 있는 안식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모든 일을 멈추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본문의 문맥은 안식일 계명이 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원의 쉼 속에서 완성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그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바탕으로 약속된 최종적인 안식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난 일곱째 날 안식일을 대체하지 않는다. 그 약속은 오히려 일곱째 날 안식일을 더 강화한다.

<묵상>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재림을 사모하는 우리들의 삶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그대는 그런 삶을 실천하고 있습니까?

(이어서) 세상은 근면함과 성공을 위해 애쓰는 것을 매우 가치 있게 여긴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며, 우리를 구원하고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사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긴다. 이것은 세상의 문화에 역행하는 삶의 방식이다.

<교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바탕으로 약속된 최종적인 안식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난 일곱째 날 안식일을 대체하지 않는다.

<적용>
자신들의 죄가 너무 크고 깊어서 자신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예수님 안에서 쉼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영원히 남아 있을 안식일 – “하늘과 땅이 존속하는 한 안식일은 창조주의 능력의 표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에덴이 다시 지상에 회복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의 날은 해 아래 있는 모든 사람에 의해 존귀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매 안식일에’ 영화롭게 된 새 땅의 주민들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마 5:18; 사 66:23)”(시대의 소망, 283).

<기도>
이 땅에서 경험하는 안식일의 쉼을 통하여 하늘에서 경험하게 될 최종적인 쉼을 미리 맛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쉼은 얼마나 좋을까요? 그 자리에 제가 꼭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