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일요일 장년 교과] 도망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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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는 당시의 기준으로도 매우 잔혹한 국가였으므로 요나는 그곳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싶지 않았다.

요나는 놀라울 정도로 성공한 선교사였다. 동시에, 그는 억지로 행동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러했다. 요나가 무엇을 하고 있었든지 간에 하나님의 부르심이 그의 삶을 막아섰다. 어깨에 하나님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멍에는 쉽고 그분의 짐은 가볍다는(마 11:30)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 대신, 요나는 자신만의 ‘쉼’을 찾기로 결심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곳과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떠나 어디에서 평안과 쉼을 찾기 원했는가? 그의 계획은 어떻게 되었는가? 요나 1장을 읽어 보라.

요나는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령하신 곳과 반대 방향으로 출발하였다. 그는 성경에 등장하는 다른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사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 했던 것처럼(참조, 출 4:13) 잠시 멈추어 서서 자신의 형편에 대해 하나님께 말씀드리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왕하 14:25에 기록된 것을 보면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부름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앞선 경우에는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역사적 그리고 고고학적 자료들은 주전 8세기에 근동 지방의 패권을 쥐고 있던 신 앗수르(Neo-Assyrian) 제국의 잔인함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때가 바로 요나가 이스라엘에서 활동하고 있던 때였다. 약 75년 후에 신 앗수르 제국의 왕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하였다. 이스라엘과 사마리아는 20여 년 전에 이미 몰락한 상황이었고, 히스기야왕은 주변 국가들 가운데 앗수르를 반대하는 세력과 힘을 합치고 있었다.
바야흐로 앗수르가 모든 것을 정리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성경과(왕하 18, 사 36), 앗수르의 역사를 기록한 문서와 니느웨에 있는 산헤립의 궁전 벽화는 히스기야의 남쪽 국경 지대의 요새 중 가장 중요했던 라기스의 처참한 몰락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어느 비석에 새겨진 글에 의하면, 산헤립은 그가 무너뜨린 46개의 견고한 도시들에서 이십만이 넘는 포로들을 데려갔다고 한다.

<묵상>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던 여러 성경의 인물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각기 다른 경우에서 어떤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예, 모세, 기드온, 이사야, 바울)

(이어서) 앗수르의 왕은 라기스를 함락시킨 후, 수백 혹은 수천 명의 사람을 창으로 찔러 죽였고, 히스기야왕을 끝까지 따르던 자들은 산 채로 몸의 가죽이 벗겨졌으며, 남은 사람들은 앗수르로 끌려가 헐값에 노예로 팔렸다.
앗수르 사람들은 그때 당시 기준으로도 굉장히 잔혹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제국의 중심으로 요나를 보내셨던 것이다. 요나가 그곳으로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교훈>
앗수르는 당시의 기준으로도 매우 잔혹한 국가였으므로 요나는 그곳으로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싶지 않았다.

<적용>
그대도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려고 시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그 결과가 어땠나요? 그 실수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으셨습니까?

<영감의 교훈>
도망하는 선지자 – “선지자는 이 사명이 어렵고 외적으로 볼 때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되어서 부르신 분의 지혜를 의심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인간의 견해로 볼 때에 이 거만한 도시에 가서 이와 같은 기별을 선포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 선지자는 큰 공포에 싸여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였다. 욥바로 가서 거기서 마침 항해하려는 배를 발견하고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욘 1:3)다”(선지자와 왕, 266).

<기도>
요나의 모습 속에서 오늘 저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내 마음에 맞지 않을 때 모른 척 도망치려 했던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하지만 요나를 다시 부르신 하나님께서 오늘 저 또한 부르고 계심을 기억하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