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열두 가지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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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26).

저주가 열두 번이나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저주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일까요?

왜 저주가 먼저인가?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넌 후에 세겜에 터를 잡고 그 북쪽과 남쪽에 있는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올라갑니다. 여섯 지파는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다른 여섯 지파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섭니다(12, 13절).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모두에게 열두 번의 저주를 말씀하십니다(1526절).

그러나 하나님은 무조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는 않으십니다. 정확히 말해서 축복과 저주는 모두 조건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말씀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를 보내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저주의 경고를 잘 기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면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주를 먼저 말씀하신 이유는 당신의 백성을 경고하심으로 축복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할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저주를 먼저 받으심으로 우리를 축복의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먼저 기억하면, 우리는 바로 축복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은밀히

하나님은 당신이 보시기에 가증한 우상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5절).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저주들도 은밀함과 연관을 가집니다. 부모를 무시하는 일, 토지의 경계표를 옮기는 일, 재판을 조작하는 일, 잘못된 성관계, 암살하는 일, 뇌물을 받는 일 등도 모두 은밀하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을 베풀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갚으실 것입니다(마 6:16). 그런데 우리는 선한 일은 자랑하고 싶고 악한 일은 은밀하게 하고자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하나님은 선한 일이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일이든, 은밀하게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다 보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축복이든지 저주이든지 그것은 우리에게 반드시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주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봄으로 저주가 임하지 않게 하소서.